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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여행/길 위의 사람들

76세 할머니가 감나무에 오른 이유



76세 할머니가 감나무에 오른 이유

누구나 감나무에 얽힌 아련한 추억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시골에 태어난 사람치고 감나무에 올라보지 않은 이가 없을 것이고, 잘 익은 감을 따다가 머리에 홍시가 터져 붉은 염색을 했던 기억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감똘개’라고 부르던 감꽃도 기억하리라. 실에 꿰어 여자아이에게 목걸이와 팔찌를 선물했을 것이다. 배가 고프면 채 익지도 않은 생감을 따서 물을 가득 채운 장독에 며칠씩 묵혀 두면 떫은맛이 사라져 제법 단맛 나는 ‘삭감’의 변신에 놀라기도 했을 것이다. 서리가 내리기 전에 따서 시렁에 올려놓은 빨간 홍시를 겨울이면 하나씩 꺼내먹는 재미는 또 어떠했는가. 살짝 언 감 속살의 달콤함은 아직도 입안에 맴돌 것이다.

이처럼 감나무는 인간이 마을을 이루며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유실수이자 친구였다. 말뚝 박기놀이를 할 때도 감나무가 긴요했고 숨바꼭질에는 감나무가 늘 중심이었다. 여름이면 감나무 그늘 아래서 더위를 식히기도 했고 여자애들은 ‘깔래’라고 부르던 공기 줍기 놀이를 하곤 했다. 김을 매던 아버지가 잠시 허리를 펴며 막걸리 한 잔을 들이키던 곳도 역시 감나무였다. 가을이 끝나고 겨울이 와도 감나무에는 늘 감 하나는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아무리 없이 살던 때여도 주변 뭇짐승들의 간식거리는 남겨두는 여유가 있었다. 그것을 ‘까치밥’이라고 불렀다. 그러면 까치는 홍시 하나 입에 물고 날아갔다가 반가운 손님이 왔다며 울어주곤 했었다.


전형적인 산골마을인 함양군 서하면 운곡리에는 이런 추억을 가진 감나무가 온 동네에 빼곡하다. 천년의 은행나무가 있어 행정 또는 은행마을로도 불리던 마을이다. 운곡리에는 유독 감나무가 많다. 집집마다 감나무가 없는 집이 없을 정도로 마을은 이맘때쯤이면 온통 붉은 감이 주렁주렁 매달린 풍경을 연출한다. 수십 그루의 감나무마다 빼곡히 열린 감나무는 붉은 물감을 쏟아 붓질을 한 것처럼 그 자체로 작품이다.


이곳의 감나무가 운치 있는 건 과수원에서 재배하는 일률적인 감나무의 모습이 아니라 제멋대로 자란 자연스러운 감나무이기 때문이다. 시쳇말로 ‘성형미인’이 아니라 ‘자연미인’인 셈이다. 그만큼 정겨운 추억의 풍경이다.


노랗게 물든 천년의 은행나무 주위를 가만가만 돌고 있는데 감나무에 노인 한 분이 올라 힘겹게 감을 따고 있는 장면이 보였다. 처음에는 예사로 생각하고 그냥 지나쳤다가 마음 한구석에 무언지 모를 죄스러움이 생겨 다시 발길을 돌렸다.


감나무 아래로 다가가서 보니 할머니였다. 감나무의 굵은 가지에 등을 기대어 긴 대나무장대로 감을 따는 모습이 위태위태해 보였다. 감나무의 절반 정도는 이미 감을 딴 상태였고 가지 끝에 두어 개 정도 매달려 있었다. 감나무 아래에는 이미 따 놓은 감이 두 상자나 있었다. 장대로 딴 감을 일시적으로 담아두는 가지에 매단 자루에도 감이 가득 차 있었다.



가지 끝에 매달린 감 두어 개를 따느라 할머니는 안간힘을 썼다. 경험에 의하면 이때는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긴 장대를 이용하더라도 장대의 벌어진 틈에 감이 달린 작은 가지를 끼워 부러뜨려야 하는 일이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젊은 사람이 하더라도 손발이 저리고 목이 뻐근할 것이다.


“할머니, 힘들지 않으세요?”
“와 안 힘들것소. 허리가 분질러 질 것 같아.”
“제가 따 드릴까요.”
“아니요. 이제 다 땄어.”

가지 끝에 남아 있던 감을 마저 따고서는 사다리로 내려오신다.

“조심하세요.”
사다리를 잡고 있는 손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간다.


“할머니, 나무에 올라서 감을 따시면 위험한데 다음부터는 따지 마시지요. 자제분들이 알면 할머니 혼나실 텐데요?”
“자식들이 알면 큰일 나지. 올 여름에 내가 허리 수술을 했거든. 돈도 수월찮게 깨먹었어. 600만원이나. 아이고 허리야.”


그러시곤 허리를 한 번 쭉 펴신다.

“힘들어 이제 감도 못 따겠어. 홍시도 하고 곶감도 해서 손주들 줄려고 감을 따는데 힘들어서 인자 못하겄어. 그래도 가만히 있으면 오히려 병이 나. 이렇게라도 움직여야 건강하지.”


할머니는 연신 힘들다하면서도 주위에 떨어진 감을 부지런히 주워 자루에 담는다. 문득 시골에 계신 팔순 노모가 떠올랐다. 수술을 할 정도로 무릎이 좋지 않으면서도 집 앞 텃밭에 나가 갖은 채소를 가꾸신다. 자식들에게 싸 줄려고.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는다. 자식들이 보는 앞에서는 절대 일을 하지 않고 전화를 드리면 그냥 집에서 놀고 있다고 매번 그런다. 그런데 막상 시골에 가보면 논밭에는 땀 흘려 일한 흔적이 너무나도 또렷하게 남아 있곤 했었다.


할머니의 집은 가파른 언덕을 지나야 있었다. 옆에 있던 아주머니 한 분이 비탈길 너머까지만 감 자루를 옮겨 달라고 했다. 서너 번 왔다 갔다 하면서 자루를 다 옮겼더니 할머니가 미안해하신다.
“아이고, 이리 고마울 때가....”


천년의 은행나무가 있는 운곡리에는 오늘도 우리 어머니·할머니 같은 이금순(76) 할머니가 감을 따고 계신다. 손주들 손에 꼭 쥐어줄 빨간 홍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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