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무의 천년

황금빛 그림으로 내게 다가오다



황금빛 그림으로 내게 다가오다
함양군 서하면 운곡리 은행나무

오랜만에 길을 나섰다. 한 달 동안 정신없이 보내느라 가을이 온 줄도 모르고 있었다. 일상에 쫓겨 숨이 턱에까지 찼을 무렵 아내가 길을 나서자고 했다. 한 달만의 나들이라면 남들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지만 여행자에게는 분명 아주 심각한 일이었다. 이 정도면 병이 생기다는 걸 아내는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뚜렷한 목적지는 없었다. 오랜만의 휴식. 그렇다고 사람으로 북적대는 가을 단풍산을 찾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한적한 곳을 찾아 온종일 가을 햇볕을 쬐고 싶었다. 함양에 가면 늘 들르는 ‘조샌집’에서 어탕국수 한 그릇을 먹고 서하면으로 향했다. 식당에서 지도를 보며 고른 곳이 운곡리였다.


함양읍에서 서하면 운곡리를 가려면 37번 지방도를 따라 병곡면․백전면을 지나 구불구불 빼빼재를 넘어야 한다. 이 길은 예전 백운산 상연대를 가면서 자주 가던 길이었다. 그 한갓진 길은 하루 종일 있어도 차 몇 대 겨우 지나는 길이다. 봄이면 벚꽃길로 아름아름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드라이브코스로는 아직도 여유로움이 넘치는 길이다. 가파른 빼빼재는 온 산이 울긋불긋 물들기 시작했다. 고갯마루에 걸터앉아 느긋하게 가을 단풍을 완상했다. 이 멋진 풍경을 우리 가족이 전세 낸 셈이었다.


연수원이 된 폐교에 차를 세우고 마을로 향했다. 알알이 맺힌 붉은 산수유 열매가 인상적이다. 야트막하게 쌓인 돌담길을 따라가니 어느새 눈앞에 거대한 은행나무가 나타났다. ‘이야!’ 뒤따르던 딸애가 저도 모르게 소리를 친다.


예상대로 은행나무는 거대했다. 높이가 38m, 둘레가 9m가 넘는다는 이 나무는 수령 800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가지가 뻗은 길이만 해도 동서로 28m, 남북으로 31m 정도이니 웬만한 운동장은 덮고도 남을 만하다.


운곡리 은행나무는 마을이 생기면서 심은 것으로 전해지며 이 은행나무로 마을 이름도 은행정 또는 은행나무마을로 불린다.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마을이 배의 형국이고 은행나무가 돛대의 역할을 하여 마을을 지킨다고 한다.


예전에 나무 옆에 우물을 팠더니 송아지가 빠져 죽는 사고가 일어났다. 마을사람들은 배 밑에 구멍을 뚫었기 때문이라고 여겨 곧 다시 우물을 메웠다고 한다. 또 일제강점기에 몇몇 마을사람들이 나무를 베려 하자 밤마다 상여소리가 나는 등 마을에 흉사가 그치지 않아 나무에 당제를 지낸 다음에야 평온을 찾았다고 한다. 나무 앞을 지날 때 예를 갖추지 않으면 그 집안에 재앙이 든다는 속설도 있으니 이 나무의 영험함은 이를 데 없다.


“어, 나무 사이가 서로 통하네.” 은행나무 주위를 맴돌던 아내가 여행자를 부르며 말했다. 아내의 말대로 나무는 마치 두 그루가 하나로 붙은 모양이었다.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보니 하나의 나무에서 나온 줄기가 지상 1m 지점에서 두 갈래로 나누어 졌다가 3m되는 지점에서 다시 합쳐져 있었다. 얼핏 보면 연리목으로 보이기도 해 나무가 더욱 신비로워 보였다.


마을 주민들은 이 나무를 신성하게 여겨 매년 정월 정일에 당제를 지낸다고 한다. “이 은행나무는 신목이제, 마을에 이 나무뿌리가 없는 집이 없어. 그만큼 나무가 크고 신령스럽지예.” 은행나무 밑을 지나던 할머니 한 분이 여행자에게 말했다.


완연한 황금빛은 아니었으나 거대한 은행나무는 그 자체로 그림이었다. 한 번에 물들지 않고 천천히, 아직 푸름을 남겨둔 천년의 여유를 나무는 말없이 가르치고 있었다. 은행잎이 온통 노랗게 물들고 나서야 사람들은 뒤늦게 환희에 젖겠지만 말이다.

운곡리 은행나무와 마을 전경

운곡리 은행나무는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운곡리 779에 있으며 천연기념물 제406호로 지정되었다.



김천령의 여행이야기에 공감하시면 구독+해 주세요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김천령의 풍경이 있는 한국기행]에 링크 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