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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에 머물다

두고두고 곱씹는 백제의 맛, 정림사지 오층석탑




두고두고 곱씹는 백제의 맛, 정림사지 오층석탑

정림사지는 여행자에게 있어 일종의 순례지 같은 곳이다. 부여에 오면 늘 들르는 곳, 새로운 여행지를 찾더라도 이곳을 먼저 들른 후 여행지로 늘 길을 떠난다.


네비는 분명히 정림사지라고 했다. 건데 내린 곳은 왠지 낯설었다. 허허로움으로 기억되던 정림사지에는 번듯한 주차장과 함께 박물관이 새로이 생겼다. 그제야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입장료는 1,500원. 탑만 봐도 아무 거리낌 없이 낼 입장료이지만 박물관 관람도 곁들일 수 있으니 일단 긍정이다. 박물관은 불교의 상징인 卍자 모양이다. 전시실내에는 정림사지처럼 연지가 있고 아늑한 공간을 연출하여 관람객들이 쉬어가기에 좋다.


전시관 내에는 정림사지를 1/12로 축소·복원하여 옛 사찰의 형태를 가늠할 수 있다. 석탑으로 많이 알려진 탓에 정작 정림사지에 대해서는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정림사지는 백제시대의 다른 절들처럼 남북 일직선상에 중문, 탑, 금당, 강당이 차례대로 놓인 일탑식 가람 배치를 하고 있다. 그리고 회랑이 절 구역을 빙 둘러싸고 있다.


1942년 절터를 발굴할 때 발견된 기와조각에서 고려시대(1028)의 명문이 드러나 당시 절 이름이 정림사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나 백제 때의 절 이름이 무엇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지금은 오층석탑과 석불좌상, 연지가 있어 옛 정림사를 상상할 수 있다.


박물관을 나와 정림사지로 향했다. 해는 이미 졌고 하늘은 푸른빛만 가득했다. 폐사지는 해질녘에 가장 좋다지만 더러 해가 지고 난 후에도 그 스산함이 좋아 찾게 된다. 절터 한가운데에 의젓하게 자리한 오층석탑은 늘 봐도 감동 그 자체이다. 어떤 미사어구를 갖다 붙인들 제대로 표현이나 할 수 있을까. 아무리 뛰어난 글쟁이라도 이 탑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


멀리서 보면 아름답지만 그다지 크게 보이지 않는 탑, 그러나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장중함에 보는 이들은 숨을 멈추게 된다.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고개를 한껏 쳐들고 탑 주위를 빙글빙글 한 바퀴 돌고 나서야 멈춘 숨을 '하아'하고 길게 뱉어내게 된다.


백제가 멸망해간 아픈 사연을 1,400년 채 끌어안고 온 이 석탑에는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새긴 글씨가 있다. 백제를 멸망시키고 난 소정방이 그것을 기념하여 탑에다 새긴 글씨이다. 한동안 이로 인해 이 탑이 소정방이 세운 것이라는 오해가 있기도 했다. 그가 새긴 글씨는 희미하지만 아직도 남아 있다. '大唐平濟國碑銘'


중국 역사서에는 백제에 탑이 매우 많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럼에도 백제의 탑이 남아 있는 것은 미륵사지 탑과 이곳 정림사지 오층석탑뿐이다. 미륵사지 석탑에 목탑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것에 비해,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훨씬 세련되고 원숙한 석탑으로서의 완성미를 보여준다.


장중하면서도 세련되고, 날렵하면서도 정돈되고, 육중하면서도 경쾌하고, 위엄이 있으면서도 왠지 살가운 석탑이 정림사지 석탑이다. 누군가는 그랬다. '이 탑을 보면 단번에 정면승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두고두고 곱씹는 맛을 느끼게 하는 백제의 맛'이라고...



오층석탑에 빼앗긴 정신을 잠시 가다듬으니 강당 자리에 새로이 지은 전각 안에 석불좌상 한 기가 보였다. 얼굴이나 몸체가 심하게 마모되었지만 아래쪽 대좌는 비교적 잘 남아 있다. 고려 현종 때인 1028년에 절을 크게 중수할 때 모신 석불로 11세기 불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높이 8.3m에 국보 제9호이고, 석불좌상은 5.6m에 보물 제108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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