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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기행

아차, 유홍준 교수 집을 그냥 지나쳤네




그냥 타박타박 걷기만 해도 좋은 반교마을 돌담길

무량사에서 나와 부여로 돌아오던 중 낯익은 마을 이름을 보게 되었다. 반교마을이었다. 이곳은 돌담길이 등록문화재 제280호로 등록된 마을이어서 예전부터 한 번 와보고 싶은 곳이었다. 부여에 와서 며칠을 머물면서도 이 마을을 잊고 지내다 그날 우연히 반교마을에 들르게 되었다.


작은 다리를 건너니 ‘반교마을 돌담길’ 표석이 있었다. 어느 시골집 흙벽 아래에 놓인 반듯한 화강암이 부자연스러운 듯 묘하게 어울린다. 2006년 12월 4일에 문화재로 등록되었다고 적혀 있다.



마을길은 아스팔트로 반듯하게 포장되어 있었다. 길 양옆에 열 지어 있는 집들 앞으로 돌담을 쌓아 경계를 만들었다. 돌담 아래는 울긋불긋한 봉숭아가 화사한 기운을 내뿜고 노란 꽃을 피운 호박넝쿨이 돌담을 넘나들었다.


돌담길을 따라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돌담은 끝이 없었다. 비가 간간히 내려서인지 길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냥 타박타박 걸었다. 길 중간쯤에 전나무 한 그루가 있고 그 아래에 공중변소로 썼을 법한 건물이 나왔다. 지금은 이것저것 모아두는 창고로 보이지만 세월의 때가 켜켜이 묻어 그것마저 풍경이 된다.


문패 대신 대문 쇠말뚝에 이름을 써 놓은 어느 농부의 집은 바지런하다. 처마 끝에 양파며, 마늘 등을 주렁주렁 매달아 놓았다. 헛기침으로 주인을 불렀으나 인기척이 없다. 다시 타박타박 걸었다.


이곳 돌담길은 마을의 밭이나 개울가에 있는 강돌을 그대로 쌓았다. 우리네 조상들은 주위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집을 짓고 담을 쌓곤 했다. 바깥과 경계를 지으면서도 그 자체가 자연의 일부이기도 한 것이 우리네 옛집이었다. 그만큼 서정이 깊은 집들이다.


이곳 반교리 돌담길은 마을주민들이 돌담길보존회를 만들어 옛 방식 그대로 돌을 쌓아 올렸다고 한다. 돌만을 쌓는 이런 방식을 ‘메쌓기’ 혹은 ‘건성쌓기’라 하고 그런 돌담을 ‘강담’이라 한다.


옛 담장이 등록문화재인 곳은 경남에는 거창 황산마을, 산청 단계마을, 산청 남사마을, 경북에는 성주 한개마을, 대구에는 옻골마을, 전남에는 강진 병영마을, 담양 창평 삼지천마을, 완도군 청산도 상서마을, 흑산도 사리마을, 신안 비금도, 영암 죽정마을, 전북에는 무주 지전마을, 익산 함라마을, 충남에는 부여 반교마을 등이 있다. 등록된 돌담길의 대부분이 전라도와 경상도에 있고 충청도에는 이곳이 유일하다.
 

마을을 돌다 어느 집 뜰에서 걸음이 멈췄다. 인사라도 건넬 요량이었으나 사람이 집을 비운 지 오래된 집이었다. 한껏 열린 부엌문 아래의 장작더미와 녹이 슨 풍로가, 예전 이곳에 사람이 살았음을 말해 줄 뿐이었다.


빈집은 늘 애잔하다. 발길을 돌려 마을 가운데에 있는 정자에서 잠시 쉬었다. 돌담김을 복원하면서 만든 정자인 듯하다. 제법 번듯한 마을 회관에는 확성기가 사방으로 달려 있다. 마을의 집들은 대개 슬레이트지붕이어서 예스런 맛은 없다. 그럼에도 돌담이 있기에 풋풋한 정취가 있는 것이다.


장작을 잘 갈무리한 어느 농가를 보며 혼자 박수를 보냈다. 장작을 참 예쁘게도 쌓았다. 이런 시골에서는 장작더미 자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이 된다는 걸 매번 느끼게 된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니 겨우내 땔감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


낡은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새로운 것이 모두 편리한 것도 아니다. 어떤 이는 초가에 돌담을 둘러친 풍경이 예스러운 것이라며 그리워하겠지만, 돌담길에 슬레이트 지붕을 인 집들도 시간이 흘러 세월의 때가 묻으면 나름의 풍경이 되는 것이다. 다만 하늘로 솟은 전봇대와 시야를 어지럽히는 전선줄이 아쉬울 따름이다.



며칠 후, 집에 돌아온 나는 TV를 보다 놀랐다. 모 방송사의 오락프로그램인 ‘무르팍도사’에 유홍준 교수가 나왔다. 그가 오락프로에 나와서 놀란 것이 아니라 며칠 전 여행자가 다녀온 부여 반교마을에 그가 살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반교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휴휴당’이라는 집을 지어 살고 있단다. 미리 알았다면 그의 집을 찾아갔을 것이다. 그가 지은 삼 칸 집을 보고 오지 못한 게 내내 아쉬웠다. 남다른 그의 안목이 집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가 무척 궁금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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