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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구 기행

사람마저 풍경이 되는 몽산포에서




사람마저 

             풍경이 되는 

                            몽산포에서


사람마저 풍경이 되는 몽산포에서

바다를 옆구리에 끼고 끼적끼적 서해를 달린다. 차는 여태 제자리걸음이고 안개는 진즉부터 바다와 뭍의 경계를 허물어 버렸다. 신두리 사구에서 만리포까지 바다로만 달렸다. 바다를 막던 해무가 뭍까지 올라와 길을 삼켰다. 간혹 햇빛이 침범하면 안개는 잠시 놀란 듯 허공으로 도망치다 다시 땅으로 내려오기를 반복했다.


만리포 가는 길은 온통 해무였다. 그동안 섬이나 바닷가에서 안개를 본 적은 더러 있지만 이렇게 지독한 안개는 낯설었다. 모내기를 끝낸 무논에도 해무가 피어올랐다. 여행자는 그 아찔함에 놀랐지만 농부는 태연히 논길을 걸어갔다.


안개 속에서 번잡한 만리포가 나타났다. 아니 만리포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온갖 소리들만 안개를 뚫고 흘러왔다.

‘똑딱선 기적소리 젊은 꿈들 싣고서 갈매기 노래하는 만리포라 내 사랑 그립고 안타까워 울던 밤이 안녕히 희망에 꽃구름도 둥실 둥실 춤춘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노래가 들려온다.


만리포 사랑 노래비 옆에는 각종 비들이 서 있다. 2007년 태안 일대에 일어난 기름 유출사고의 아픔과 희망을 시로 새긴 비들이다. ‘검은 바다를 손잡고 마주 서서 생명을 살린’ 주민들과 123만 명 자원봉사자들의 노고를 노래하고 있다.


해안을 내쳐 달려 주꾸미로 유명한 몽산포로 향했다. 태안 8경으로 알려진 몽산포는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에 울창한 송림으로 유명하다. 솔숲의 캠핑장은 피서객들이 이미 점령한 뒤였다.


솔숲을 가로 질러 좁은 길로 빠져 나오니 몽산포다. 이름처럼 포구는 낭만이 있었다. 작은 포구임에도 사람들로 북적댔다. 어부 부부는 뙤약볕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물을 손질하느라 분주하다.



부두에 수북이 쌓인 소라들이 보인다. 한 두 개도 아니고 산더미처럼 무더기로 쌓여 있다. 주꾸미를 잡는 방법이다. 밤에 주로 활동하는 주꾸미는 그물로 잡거나 소라나 고둥의 빈껍데기를 이용한 전통적인 방식으로 잡는다. 소라, 고둥 등의 껍데기를 몇 개씩 줄에 묶어서 바다 밑에 가라앉혀 놓으면 밤에 활동하던 주꾸미가 이 속에 들어간다. 주꾸미는 산란기를 앞두고 알이 꽉 들어차는 봄철에 맛이 좋다.


몽산포에는 어시장이 있었다. 어선에서 갓 잡아 온 싱싱한 활어들을 이곳에서 판다. 가격도 저렴하다. 꽃게만 해도 인근식당의 반값 정도밖에 하지 않았다. 가격이 싸서 그런지 흥정하는 이들은 거의 없고 주문하는 손님들과 부지런히 활어를 잡아내는 주인의 손길만 바쁘다.




인근에 있는 식당으로 갔다. 바다가 훤히 보이는 식당은 사람들로 이미 만원이었다. 겨우 자리를 잡아 주꾸미를 주문했다. 식당 일을 하는 아주머니는 온몸이 땀범벅이다.

“아이구, 죽거시유.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어.”

연신 구시렁댄다. 그 모습이 하도 안쓰러워 주꾸미만 주문한 채 한없이 기다리기만 했다.


주꾸미 샤브샤브가 나왔는데 정말 대박이다. 흔히 ‘쌀밥’에 비유하는 하얀 알들이 가득 차 있었다. 가위로 자르자 하얀 쌀밥이 후두두 쏟아져 나왔다. 주꾸미는 다양하게 요리해 먹는다. 살아 있는 싱싱한 것은 회로 먹고, 고추장 양념을 하여 구워먹기도 하고, 끓는 물에 데쳐 먹기도 하고, 볶아서 먹기도 하고, 전골로도 먹는다.






배가 부르니 포구가 한층 여유로워 보였다. 갈매기들이 무리지어 항구를 날아다닌다. 그들의 비행을 따라 렌즈를 움직였다. 그중 한 놈이 카메라로 바짝 다가왔다. 그 우아한 날갯짓에 급히 셔터를 눌렀다.





연인들은 역시 아름답다. 부두를 따라 바다 끝까지 걷는 모습이 몽산포와 퍽이나 어울린다. 이곳에서는 사람마저 포구의 한 풍경이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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