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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구 기행

거제의 숨은 매력 공곶이, 그 한가함이여!



거제의 숨은 매력 공곶이, 그 한가함이여!

하늘은 바다 빛으로 그리고, 바다는 하늘빛을 담습니다. 모처럼 쾌청한 날이었습니다. 바람마저 상쾌한 어느 초가을의 하늘처럼 마냥 푸르렀습니다. 눈이 시리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그런 날입니다. 애써 미사어구를 쓰지 않아도 딱 그만큼만 그려내도 충분히 아름다운 날이었습니다.

예구 포구

거제도의 동쪽 끝자락에는 한적한 포구인 예구마을이 있습니다. 최근 들어 생긴 몇몇 펜션이 없었다면 이곳은 여느 포구마을과 같이 이름 없는 한적한 어촌이었을 것입니다.


그 포구 너머에 공곶이가 있습니다. 흔히
거제도의 마지막 낙원이라고 합니다. 거제팔경 중의 한 곳인 공곶이는 땅이 바다로 툭 튀어 나온 곳을 말합니다. 거룻배 ‘공舼’자와 궁둥이 ‘곶串’자를 써서 공곶이라 하였다고 합니다. 땅의 생김새가 궁둥이처럼 툭 튀어나온 모양이라는 뜻이겠지요.


이 생경한 장소는 이제 거제를 대표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아름아름 하나둘 알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저 먼 바다골짜기에 꼭꼭 숨은 비경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이는 그럽니다. 화려하지 않고 그저 밋밋하다고. 딱히 무어라 내세울 것도 없는 곳이라고.


사실 그렇습니다. 그저 해안가 산비탈에 노부부가 일군 농장이 전부이지요. 나무를 심고 꽃을 키웠다 해도 파도소리에 쉬이 묻혀버리는 그런 곳입니다. 길게 늘어진 돌담은 바다의 몽돌을 그대로 옮겼습니다. 시선을 확 끌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이곳에 오면 누구나 가만히 걷습니다. 333개나 된다는 동백나무 터널 아래의 계단에서 잠시 탄성을 지를 뿐 그저 말없이 걷기만 합니다. 그러다 바다에 이르면 몽돌해변에 퍼질러 앉습니다. 감성이 풍부한 이는 아예 드러눕습니다. 행여 숨소리마저 들킬세라 가슴을 두 팔로 안습니다. 꼭 말입니다. 그러곤 스르르 잠이 듭니다.

내도

내도와 해금강 칡섬


햇살이 무척 따가웠습니다. 이방인 뫼르소의 살기는 아니었지만 손바닥으로 해를 가려야만 했습니다. 바닷가 작은 포구마을에 썩 잘 어울리는 예구마을에서 공곶이로 향했습니다. 큰 길 대신 옛 민가들이 있는 좁은 산길을 따라 올랐습니다.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힐 즈음 짙은 솔숲이 나오더니 한 차례의 바람을 몰고 옵니다. 고갯길에서 잠시 바람으로 땀을 훔쳤습니다.


풀로 덮인 무덤들을 지나면 어둡고 긴 동백길이 나타납니다. 동백은 진지 오래지만 그 여운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굳이 꽃이 피지 않았더라도 동백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잠시 침침한 계단을 벗어나면 내도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외도는 내도에 가려 보이지 않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화려한 외도는 수수한 내도와 공곶이와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외도는 바깥으로 겉돌고 내도는 안으로 점점 들어와 공고해집니다.

서이말 등대

하늘 끝으로 종려나무가 보입니다. 이곳을 일군 강명식 할아버지가 심은 것으로 일만 그루 정도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밀감나무 이천 주를 심었으나 한파로 얼어 죽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그 오랜 세월동안 피땀을 들여 노부부의 낙원을 만들었습니다. 오늘 할아버지는 보이지 않고 할머니만 보입니다. 아드님으로 보이는 분과 무언가 열심히 말씀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냥 인사만 하고 지나쳤습니다.


노부부의 집은 높은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덩치 큰 개는 여전합니다. 구불구불한 길을 빠져나오면 드넓은 몽돌해변 앞으로 푸르디푸른 바다가 펼쳐집니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탄성을 지릅니다.



이제는 이곳도 외지인들에게 많이 알려졌나 봅니다. 나들이 온 가족도 보이고 연인들도 해변을 거닐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그 한적한 여유를 이곳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앞서 갔던 일행들은 나무 그늘 아래서 쉬고 있었습니다. 여행자도 슬쩍 그들 무리에 같이 끼였습니다. 일행 중 한 분이 명사에서 사온 저구막걸리를 권하였습니다. 점심 때 잠시 맛본 그 맛을 잊지 못해 사양 않고 대번에 마셨습니다. 어디서 오이 냄새가 나 길래 슬쩍 베어 물었습니다.


멀리 서이말 등대가 보입니다. 일반인 출입금지 구역으로 허가를 받고 들어가야 합니다. 등대에 서면 갈매기 서식지인 홍도와 일본 대마도, 부산까지 훤히 보입니다. 작년에 인근 봉수대에 올랐다가 멧돼지에 쫓겨 혼쭐이 났던 생각이 나 혼자 배시시 웃었습니다.


어선이 내도에서 나오고 들어가기를 반복합니다. 햇살이 따가워서 그런지 몸과 마음이 게을러집니다. 아니 나른하니 느긋해집니다. 일행들을 재촉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그저 몽돌에 부셔지는 파도만이 부지런합니다.


바닷가 오래된 고목에 매달린 종이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습니다.

<-공구지(공고지)-
공구지는 윤경문 베드로의 처가인 주관옥의 거처였다. 윤 베드로는 서이말에서 은둔생활하다가 주관옥의 딸 주아델라를 아내로 맞아 공구지에서 처가살이를 하게 된다. 이곳에서 베드로는 주일 파공을 지키기 위해서 주일만 되면 꾀병을 부렸다고 한다. 이것을 이상하게 여긴 장인이 뒤에 신부쟁이(천주교인) 인줄 알고 유심히 교리를 들어 후에 신자가 된다.

이후 윤봉문 순교자가 체포되어 포졸들이 예구리 일대를 덮쳤을 때, 윤 베드로의 동서 이석현 다니슬라오와 처제 내외가 박해를 피해 배를 탄 곳 역시 이곳 공구지이다.>

공곶이는 조선 말기 천주교 박해사건 때 윤봉문(요셉) 형제가 숨어 살면서 복음을 전도했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공곶이는 영화 <종려나무숲> 촬영지입니다. 333계단의 동백나무숲 좌우로 일만 그루에 달하는 종려나무숲이 있습니다. 겨울에는 동백, 봄에는 수선화, 여름에는 물봉선화로 철따라 꽃이 피는 화원입니다.


몽돌해안의 파도소리와 고즈넉한 돌담, 아름다운 관상수와 꽃들이 있는 이곳은 분명 거제도의 마지막 낙원입니다. 공곶이는 경남 거제시 일운면 와현리에 있습니다.


☞ 이번 거제 여행(여차홍포해안길, 공곶이)은 <경남의 길, 소셜미디어와 만나다>라는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경상남도에서 지원하고 경남정보사회연구소가 주최한 프로그램입니다. 저는 여행 강의와 답사 2회(거제군, 함양군)의 강사를 맡았습니다. 다음은 6월 26일(일요일)에 함양 선비문화탐방로(화림동 계곡 정자-거연정, 군자정, 동호정, 농월정-문화, 정여창 고택, 남계서원 등) 도보여행을 안내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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