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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담다

황금빛으로 물든 지리산 산간마을



지리산 산간마을,
황금빛에 물들다.

-구례 산동면 계척마을과 상위마을의 산수유

 

오랜만에 먼 길을 떠났다. 실상 먼 길이 아님에도 그렇게 느껴졌다. 한동안 이래저래 일에 미쳐 본업(?)인 여행을 망각하고 있었다. 가슴 한 구석이 답답해질 때면 인근에 있는 마을이나 한 바퀴 돌면 그뿐. 아내가 한마디 하지 않았다면 길에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지리산 골짜기로 갔다. 섬진강은 이미 봄빛이 완연했고, 상춘객으로 길은 숨마저 가팠다. 문득 구례 화엄사의 홍매화가 궁금했다. 아내는 직진을 원했다. 괜스레 입장료를 낼 이유도 없거니와 흐드러진 봄꽃을 보고 싶어 했다.


봄이면 어딘들 꽃이 만발하겠지만 사람이 붐비는 곳은 피하고 싶었다. 어디를 갈까. 지리산 온천 일대는 일단 피하고 싶었다. 사람이 붐빌 것이라는 선입견과 예전에 몇 번 다녀온 곳이라 내키지 않았다.

 

길을 달리다 차창 밖으로 깊숙한 산골마을이 보였다. ‘산수유 시목始木’이라는 표지판에 이끌려 마을로 들어갔다. 계척마을이었다. 얼핏 보기에 조용한 산골마을인 줄 알았는데 시목 주위로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다소 생경하였다.


계척. 구례군의 제일 북쪽에 있어 남원과 경계가 된다. 다소 특이한 이 산골마을의 유래가 궁금했다. 원래는 계천
溪川으로 불리다 마을 가운데를 흐르는 냇물이 계수나무처럼 생겼다 하여 계수나무 계자와, 임진왜란 당시에 난을 피하여 베틀바위에서 베를 짜서 자로 재었다 하여 자 척자를 써서 ‘계척’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계척마을의 산수유시목

시목 주위에 몇몇 사람들이 있었다. 아직 산수유꽃은 활짝 피지 않았다. 황금빛으로 가득했을 시목을 상상했지만 서운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듬성듬성 피어난 꽃 사이로 보이는 나무밑동에서 오랜 세월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 산수유 시목은 중국 산동山東성의 처녀가 지리산 산골로 시집오면서 가져와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심은 산수유나무라고 한다. 산동山洞이라는 지명도 여기에서 연유했다고 하나 왠지 근거가 빈약하다는 생각이 든다.

 

안내문에는 인근 달전마을의 할아버지 나무와 더불어 할머니나무라고 불린다고 적혀 있다. 수령이 1,000년 쯤 되었다고 하는데 나무 자신이 말하지 않는 이상 알 도리는 없다. 최근에 조사한 기록에는 이 나무보다 달전마을의 산수유나무가 더 오래된 걸로 추정하고 있다.


아무렴 어떠한가. 비록 오랜 세월을 견디다 못해 지지대에 몸을 의지하고 있을지언정 봄이면 잊지 않고 가지마다 몽실몽실 노란 꽃을 피우니 비록 300년이라고 한들 고맙지 않겠는가.


시목의 매력에 빠져 나무 주위를 몇 번이나 돌았다. 바람이 쌀쌀했다. 마을로 접어들었다.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마을은 온통 황금빛이다. 여행자의 눈에만 황금빛으로 보였을까. 햇살이 그렇게 보여주는 것일까. 마을 가운데를 흘러내리는 물빛도 노랗다. 낯선 이들의 뜬금없는 방문에 동네 개는 짖어댄다. 의심 반 두려움 반으로 짖어대는 개에게 여행자도 같이 짖는다. 희한하게도 이쯤 되면 개는 꼬리를 한 번 흔들고 짖기를 멈춘다.


할아버지가 작은 전동차에 몸을 싣고 노란 산수유 사이로 들어왔다. 보행이 힘든 촌로들에게는 이 전동차가 무척 요긴하게 쓰인다. 사진이라도 부탁할 겸 인사를 건네려하는데 이내 사라지신다. 몇 해 전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괜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염소 한 마리가 황금밭에서 노닐다 인기척에 놀란다. 괜히 미안해진다. 졸졸졸 흐르는 냇물이 산촌에 봄이 왔음을 알린다. 더 이상 여행자가 설 자리는 없었다. 이때 전화가 왔다.


벗이었다. 그도 아내와 오랜만에 길을 떠났다고 했다. 인근에 온 것 같은데 어디가 산수유마을이냐고 전화기 너머로 물었다. 지천에 산수유가 아니냐고 답하려다 정나미 떨어진다고 할까봐 상위마을을 추천해 주었다. 잠시 후에 보자고 하면서.


다행히 상위마을 가는 길은 붐비지 않았다. 길이 주는 한산함에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이곳에 오면 늘 가슴 한 구석에 애잔한 노래 한 자락을 품고 돌아간다. 바로 ‘산동애가’다.

 

잘 있거라 산동아 너를 두고 나는 간다

열아홉 꽃봉오리 피워보지 못하고

까마귀 우는곳을 병든다리 절어절어

달비머리 풀어얹고 원한의 넋이되어

노고단 골짝에서 이름 없이 스러졌네

 

잘 있거라 산동아 산을 안고 나는 간다

산수유 꽃잎마다 설운정을 맺어놓고

회오리 찬바람에 부모효성 다못하고

갈 길마다 눈물지며 꽃처럼 떨어져서

노고단 골짝에서 이름 없이 스러졌네


여순사건 당시 백부전(백순례)이라는 열아홉 살 처녀가 토벌대에게 끌려가며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녀는 부역혐의로 쫓기는 셋째 오빠를 대신하여 19살의 꽃다운 나이에 처형을 당하였다. 영문도 모른 채,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지리산처럼 말없이 사라졌다.


그래서일까. 이곳의 산수유는 유달리 아름답다. 돌담 위에 노랗게 늘어진 꽃들이 처연하다.


상위마을은 산수유마을 중에서도 만복대 아래 높은 곳에 있다. 이곳의 산수유는 돌담길과 퍽이나 어울린다. 꽃은 아직 활짝 피지 않았지만 삼삼오오 무리지어 있는 상춘객들은 저마다 엷은 미소를 띠고 있다. 봄에는 노란 황금빛을, 가을이면 이곳 상위마을은 온통 붉은빛이다.


산수유 세 그루만 있어도 자식을 대학에 보낼 수 있어 ‘대학나무’라고도 불렸던 산수유. 그 화려한 꽃의 이면에는 씨앗을 발라내느라 이가 닳고 입술이 부르트는 농민의 수고로움이 있었다.


전국 산수유 생산량의 70%를 차지한다는 산동면에는 산수유꽃이 피는 마을이 30여 곳이나 된다. 상위 마을을 비롯해 반곡, 계천, 사진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현천마을 등이 그것이다. 이 봄, 지리산에 가서 산수유꽃의 처연한 아름다움에 취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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