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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에 머물다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헤쳐 찾아간 불회사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헤쳐 찾아간 산사, 불회사

눈은 급기야 길을 덮었다. 산포수목원에서 온천을 갈 요량이었으나 불회사가 지척에 있어 산사를 먼저 찾기로 했다. 길에는 오가는 이 없고 차는 푹푹 빠졌다. 최근에 지은 듯한 일주문도 눈을 머리에 이고 서 있었다.


나주시 다도면 덕룡산 기슭에 있는 불회사는 백양사의 말사이다. 백제 침류왕 원년인 384년에 인도의 승려 마라난타가 이 절을 세웠다고 한다. 혹은 근초고왕 22년인 367년에 절을 세웠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창건 시기는 다르나 신라 말에 도선국사가 중건했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동일하다. 원래는 ‘불호사’라 불리다가 1808년경에 ‘불회사’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해남의 미황사와 영광의 불갑사처럼 전라남도 해안 부근에는 바다를 통해 불교가 전해졌다는 이야기가 많이 전해진다. 마라난타가 동진을 거쳐 서해를 건너 영광 법성포에 들어와 불갑사를 짓고 이곳 나주에 불회사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를 입증할만한 유물이나 유적은 아직 없는 상태다.


산사 초입의 부도는 고요하다. 차가 지나간 듯한 흔적이 있으나 길은 여전히 눈길이다. 그 흔적 아래로 발목이 푹푹 빠진다. 절까지는 1km, 아이는 무척 지친 표정이었다. 그래도 군소리 하나 없이 묵묵히 눈길을 걸어간다. 대견스럽다.


길은 한적하다. 폭설도 줄지어 서 있는 측백나무는 덮지 못했다. 가지마다 하얀 눈을 인 측백나무는 여전히 푸르렀다. 아이가 걸음을 멈췄다.


돌장승이 있었다. 돌장승도 눈을 피하지 못해 머리에 두터운 눈뭉치를 이고 있었다. 평소라면 웃고 있었을 할머니 장승도 조금은 지쳐 보인다. 그래도 표정은 다정하다. ‘주장군’이라고 새긴 글씨마저 눈 속에 파묻혀 희미하다.


‘하원당장군’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할아버지 장승은 조금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툭 튀어나온 눈망울은 금방 빠질 듯하고, 큼직한 코가 도드라졌으며 송곳니가 삐져나와 있다. 구부러진 수염은 쫑쫑 닿은 머리처럼 늘어져 있다. 우리나라 돌장승의 진수를 보는 듯하다. 중요민속자료 제11호로 지정되었다.


눈길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아빠, 절은 왜 이리 안 보여.” 아이의 한마디에 괜스레 미안해진다. 양말이 젖어 발이 시리다고 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타이르기를 몇 번 하얀 세상 사이로 산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절마당에는 연인인 듯한 두 사람밖에 없었다. 법당에서 예불을 올리던 스님도 이내 방으로 사라졌다. 대웅전 주위는 금줄을 쳐 놓았다. 높다란 자연석 기단 위에 지어진 대웅전은 부안 내소사의 그것처럼 화려하면서도 날렵하다.



대웅전(보물 제1310호) 안에는 비로자나불을 주존으로 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건칠불인 비로자나불좌상은 보물 제1545호로 지정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건칠불’이라 함은 종이나 베로 만든 후 옻칠을 하고 다시 금물을 입힌 불상을 말한다.



잠시 합장을 한 후 절마당을 거닐었다. 스님의 부지런한 비질로 전각으로 가는 길은 말끔했다. 산사의 겨울은 일찍 저물었다. 해가 산에 걸리는가 싶더니 눈길이 재촉한다.




트랙터가 눈길을 헤치고 달려왔다. 두터운 눈을 밀어내기에는 트랙터도 힘에 부치는 모양이다. 몇 번을 왔다 갔다 해야 길이 제 모습을 보여줄 듯하다. 눈 위를 뛰는 고양이를 보다 문득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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