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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의 풍류와 멋

자연에 살고픈 드라마틱한 정자, 거연정



 

자연에 살고픈 드라마틱한 정자, 거연정

호남을 대표하는 정자문화가 담양에 있다면 영남을 대표하는 정자문화는 함양의 화림동이다. 함양은 예부터 ‘좌 안동 우 함양’이라 하여 안동에 견줄 만큼 학문과 문벌이 번성했던 양반의 고장이다.

 

화적떼가 밤낮으로 들끓어 육십 명이 모여야 안심하고 넘을 수 있었다는 육십령을 지나 서하면에 이르면 화림동 계곡에 이르게 된다. 이곳은 골이 넓고 물의 흐름이 완만하며, 물줄기가 때론 못을 이루고, 때론 너럭바위를 타고 흘러 선경을 자아낸다.

 

남계천(남강천)의 경치 좋은 골짜기인 화림동 계곡은 예로부터 ‘팔담팔정’이라 불리며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였다. 자연과 더불어 사색과 음풍농월을 즐겼던 옛 선비들은 이 빼어난 경관의 화림동에 여덟 정자를 세웠다. 그러나 농월정마저 불타 버린 지금은 거연정, 군자정, 동호정만 남아 있다.

 

그중 육십령에서 내려오면 처음에, 안의면에서 올라가면 마지막에, 거연정이라는 멋스러운 정자를 만나게 된다. 대개의 정자가 계곡을 바라보는 계곡 가에 있는 것에 비해 거연정은 계곡 가운데의 바위섬에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무지개다리인 화림교를 건너면 바위를 비집고 잘 자란 노송 몇 그루를 내려다보며 거연정이 맵시 좋게 자리하고 있다. 정자 왼편으로는 깊은 소가 있고 오른편으로는 폭포수가 기암괴석 사이를 미끄러지듯 유연하게 타고 넘는다.

 

특히 놀라운 것은 거연정이 놓인 자리이다. 바닥이 고르지 않는 들쭉날쭉한 암반 위에 주초석을 놓고 기둥의 높낮이를 자연스럽게 맞추어 안정된 정자를 지었다. 오늘날이라면 암반을 깎아내어 바닥을 고른 후 그 위에 건물을 올렸을 것이다. 옛 사람들의 지혜는 늘 놀랍고 감탄스럽다.



 

정자 내부에는 한 칸짜리 방이 하나 있다. 불을 땔 수 있는 아궁이구조는 아니지만 판벽을 둘러 쉴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필요에 따라 방문을 떼어 마루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지금은 문짝이 없어 짐작만 할 뿐이다. 보기에는 좁게 보이나 어른 두 명은 족히 누울만했다.

 

정자 난간에 기대어 한참동안 바람을 쐬었다. 한 차례 소나기가 내리더니 등짝이 오싹할 정도로 선선한 바람이 몰아쳤다. 은둔한 선비의 그윽한 정자에 잠시 세상일을 잊어버렸다. “자연에 내가 거하고, 내가 자연에 거하니”

 

거연정은 고려시대 말기 전오륜의 7대손인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화림재 전시서 선생이 1640년경 서산서원을 짓고 그 곁인 지금의 거연정 자리에 억새로 만든 정자를 처음으로 건립하였다고 한다.

 

1853년 화재로 서원이 불타고 이듬해 복구하였으나 1868년 서원철폐령에 따라 서원이 훼철되자 1872년 전시서의 7대손인 전재학, 전민진 등이 억새로 된 정자를 철거하고 훼철된 서산서원의 재목으로 다시 지었으며 1901년 중수하였다.

 

예부터 화림동계곡은 용추폭포가 있는 용추계곡의 심진동, 수승대가 있는 거창 원학동과 더불어 ‘안의삼동’으로 불리었다. 거연정은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 2006번지에 있다. 경남유형문화재 제433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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