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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역, 타임슬립

빛바랜 시간의 기억들, 경암동철길마을


 

빛바랜 시간의 기억들, 경암동철길마을

옛 기억을 더듬어 군산을 찾았다. 흑백 필름속의 아련한 기억처럼 군산은 옛 모습을 여행자에게 하나둘 드러내었다. 이곳에서 여행자는 잃어버린 시간의 빛바랜 기억들을 찾을 수 있었다.

 

개발과 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옛 기억들은 막무가내로 사라져버린 지금. 그럼에도 군산에는 그것이 과거의 아픔이던, 청산되어야 할 잔재이던 그 기억들이 더러 남아 있다. 과거를 쫓고, 과거에서 현재를 비추어보려는 이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군산은 개항과 더불어 한반도에서 번잡한 도시 중의 하나로 성장하였다. 일제가 조선의 쌀과 자원을 수탈해가는 창구로 군산은 선택되었고 이에 따라 항만과 철도 등이 건설되었다.

 

그 철길을 따라 마을이 형성된 곳이 경암동철길마을이다. 이곳은 원래 갯벌이었는데 일제가 간척사업을 벌여 방직공장을 만들려 했다. 그리고는 군산역에서 방직공장 부지까지 2.5km 구간에 철길을 놓았다.

 

그 터에 방직공장 대신 북선제지가 들어섰고 해방 이후는 고려제지, 세풍제지 등 종이회사가 차례로 들어왔다. 종이회사의 원자재를 실어 나르던 철도라 흔히 ‘제지선’ 혹은 ‘종이철도’라 불렸다고 한다.

 

갯벌을 메운 땅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팔도에서 온 사람들이 철로 변에 오막살이를 짓고 살기 시작하면서 철길에 마을이 형성되었다. 허허벌판이었던 곳에 집은 하나 둘씩 늘어갔고 기차가 겨우 다닐 만한 공간을 빼고는 마을이 들어섰다.

 

열차가 다니던 시절 마을 사람들은 열차가 다닐 때면 법석을 떨었다. 아침엔 원료를 싣고 제지회사로 들어가는 열차가 다녔고, 오후에는 종이 완제품이 실려 나왔다. 철로 변에 물건을 두면 박살이 나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늘 조심해야 했다고 한다. 기차가 마을 앞을 지날 때면 안전요원들이 기차에 매달린 채 철길에 있는 마을 사람들에게 경적을 울리고 주의를 줬다고 한다.


 

2008년 6월까지만 해도 하루 두 차례 기차가 다녔다는 경암동. 지금은 녹슨 철도와 잡풀들이 선로를 차지하고 있다. 철로를 따라 다닥다닥 붙어 있는 마을은 깊은 정적 속에 갇혀 있었다. 간혹 철길을 따라 오가는 마을사람들만 있을 뿐 사람들의 흔적은 찾기 어려웠다.

 

철길과 함께 오랜 시간을 달려온 집들은 허름하였다. 새 단장을 하는 집들로 인해 철길에는 각종 공사자재가 너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예전 기찻길 옆 오막살이의 짙은 향수를 간직한 채 경암동은 새로이 단장을 하고 있었다.

 

몇 해 전부터 사진작가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철길마을은 잊히진 과거로의 시간여행지이다. 이곳을 찾는 외지인들에게는 향수를 일으키는 장소이겠지만 사는 이들에게는 삶의 현장일 뿐이다. 이따금 낡은 창문 밖으로 사람들의 삶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의 삶의 영역을 침범한 여행자는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철로가 끝나는 지점에 대형할인매장 이마트가 보인다. 트럭 한 대가 철로를 막고 있어 기차가 멈춘 지 오래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쇠락한 철도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한때 이곳을 관광명소로 만든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군산시 문화진흥과에 확인해보니 지금은 어떠한 계획도 없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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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  (http://blog.daum.net/jong5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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