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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땅, 제주도

아늑하고 소박한 제주 두모악 무인찻집


 

아늑하고 소박한 제주 두모악 무인찻집

 

바람의 예술가 김영갑을 그리며 제주 중산간을 달렸다.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리 437-5번지에 두모악은 있었다. 평소 번질나게 드나들었던 제주 중산간의 끝머리에 그는 잠들어 있었다. 그는 말했다. 모든 삿된 욕망과 껍데기뿐인 허울은 벗어던지고 제주의 진정성을, 제주의 진짜 아름다움을 받아들일 넉넉한 마음이 있는 이라면 족하다고.

 

폐교였던 삼달분교를 개조하여 만든 갤러리 두모악은 2002년 여름에 문을 열었다. 1957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김영갑은 1982년부터 제주도를 오르내리며 사진작업을 하던 중 그곳에 매료되어 1985년 아예 섬에 정착하였다. 그가 사진으로 찍지 않은 것은 제주도에 없는 것이라는 말처럼 제주도에 김영갑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은 없었다.


창고에 켜켜이 쌓인 사진들을 위한 갤러리를 마련하기 위해 초등학교를 구하여 작업을 하던 중 그는 손이 떨리기 시작하였고 이유 없이 허리에 통증이 왔다. 루게릭병이었다. 그는 일주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누웠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점점 퇴화하는 근육을 놀리지 않으려고 몸을 움직여 사진 갤러리 만들기에 열중하였다.

 

이렇게 하여 ‘김영갑 두모악 갤러리’가 2002년 여름에 문을 열었다. 2005년 5월 29일 투병 생활을 한지 6년 만에 그는 고이 잠들었다. 그의 뼈는 두모악 갤러리 마당에 뿌려졌다.


전시실을 둘러보는 내내 깊은 애절함이 있었다. 한동안 멍해지는 감정을 억제할 길이 없어 전시장 뒷마당을 거닐었다. 왠지 모를 그리움, 가슴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가 울컥 치밀고 올라왔다.

 

찻집이 있었다. 두모악 무인찻집. 학교의 옛 건물을 개조한 허름한 집이었다. 미닫이문을 여니 밖에서와는 달리 안은 아늑하였다. 긴 탁자 하나에 등받이 없는 의자 몇이 눈에 보였다. 먼저 온 커플이 마신 커피향이 허공을 맴돈다.

 

처음 본 이들이지만 밝은 눈웃음을 하고 자연스레 합석을 하였다. 창틀에는 예술가가 평소 즐겨 찍었던 억새가 소담하게 꽂혀 있었다. 커피 한 잔에 3,000원. 여행자도 향을 느끼고 싶었다.

 

커피 외에도 다양한 차와 팥빙수 등도 메뉴에 있었다. 커피 한 잔을 하며 찬찬히 찻집을 둘러보았다. 깨끗하다. 찻잔은 윤기가 난다. 뒤에도 작은 공간이 하나 있었다. 아직은 봄이 어색한지 난로의 열기가 따뜻하다.

 

갤러리에서 주최한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흔적을 남겼다. 용눈이오름과 지척에 있는 손자봉의 사진이다. 그 옆의 빨간 우체통이 인상적이다. “소중한 분들에게 따스한 마음을 전하세요. 두모악에서 배달해 드립니다.” <두모악에서 띄우는 편지>였다.

 

무인찻집은 말 그대로 사람이 없다. 간혹 관리인이 부족한 게 없나 싶어 들리는 것 외에는 계산도 설거지도 스스로 해야 한다. 차 한 잔의 여유로 치열했던 예술가를 가만히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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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  (http://blog.daum.net/jong5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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