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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여행/길 위의 사람들

바람처럼 살고픈 여행자들의 집, <언제나 봄날>


바람처럼 살고픈 여행자들의 집, <언제나 봄날>
- 여행자들의 특이한 인사법


 

봄은 왔어도 봄이 아니었다. 무주를 들어서자마자 한치 앞을 볼 수가 없었다. 하늘을 가린 황사는 무주의 아름다운 산수조차 삼켜버렸다. 여행자가 만날 사람도 시간의 저편으로 자꾸 멀어지는 듯했다.

 의병장 장지현장군의 묘지에 있는 수령 420년의 소나무와 눌산님이 운영하는 <언제나 봄날> 펜션

집 마당에 들어서니 눌산님이 반갑게 맞이하였다.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터라 잠시 환담을 나누다 무주 인근을 둘러보고 해가 지면 다시 만나기로 하였다. 한적한 무주의 시골길을 유람하는 여행자를 시샘이라도 하듯 날씨는 길을 방해하였다. 더 이상 다닐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언제나 봄날>은 무주 적상산에 있다

어스름이 내리자 여행자들이 속속 도착하였다. 안주인님이 정성껏 준비한 저녁식사를 하며 황사로 칼칼한 목을 막걸리로 씻어 내렸다. 경기도, 대전시, 전남, 경남, 전북 등 전국 각지에서 10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각자 인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대개 서로 인사를 하게 되면 먼저 통성명을 하고 난 후 명함을 주고받고 직업 등의 말들을 건네게 된다. 그러나 여행자들은 달랐다. 처음 보는 이에게 가볍게 목례를 할 뿐이다. 여기서 끝이다. 성함이 무엇인지 직업이 무엇인지 등 구체적인 자기소개는 하지 않는다. 물론 사람들도 굳이 묻지도 않는다. 다만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갈 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길 위에서 만나는 인연은 애써 서둘러 매듭지으려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적상산의 너도바람꽃을 찾아 헤매는 여행자들

사실 현대사회에서 이런 인사법은 흔하지 않다. 대개 자신을 구체적으로 드러내어야만 상대방에게 각인되고 인정받을 수 있다는 고정관념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교육을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경험하게 되다보니 자신을 드러내고 상대방이 인정해주는 인사법이 정석으로 된 셈이다. 이런 인사법은 여행자들에게 거추장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함께하다 보면 차츰 알게 되는데 첫 모임 때부터 자신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말하려 하고 남에 대해 서둘러 알려고 한다. 빠른 사회가 나은 빠른 인사법이다.

                                                          너도바람꽃


술이 한 순배 돌고 나서 간단한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다. 여기서도 자신에 대한 구체적인 소개를 하지 않을 뿐더러 애써 묻는 이들도 없다. 자신이 사회에서 무엇을 하고 어떤 사람인지는 오늘의 모임과는 전혀 관련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여행이 좋아 모인 사람이라 옛길․ 마을․ 환경․ 여행․ 사진에 대한 이야기가 주가 된다. 이때도 개인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다. 어느 사람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개인의 관심거리와 공통된 소재를 통해 그 사람을 알아가는 방식이다. 그 사람을 아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오히려 더 정확히 알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디지털시대의 아날로그 인사법인 셈이다. <느리게 느리게>

 <언제나 봄날> 뒤에는 수령 520년이 넘은 당산나무가 있어 길손들의 쉼터 구실을 한다
 

일백 번을 만나도 일이 아니라면 다시 만나지 않는 사람이 있는 반면 단 한 번을 만나도 그리운 이가 있다. 바람을 잡을 수 없듯 내 사람을 억지로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강한 바람은 한순간 나무를 흔들 수 있지만 오래 머물지 않는다. 오직 잔잔한 바람만이 나무 곁에 오래 머문다. 때가 되면 떠나고 인연이 되면 다시 만나지 않을까?

적상산 야생화 트레킹을 하면서...

저는 아직도 저를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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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  (http://blog.daum.net/jong5629) ▒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풍경이 있는 한국기행]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