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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역, 타임슬립

그리움만 남은 겨울 간이역, ‘수목원역’



 

그리움만 남은 겨울 간이역, ‘수목원역’


 

간이역에 대한 기억은 누구에게나 아련하다. 간이역. 언젠가 다녀왔음에도 오랜 시간 켜켜 묻은 세월의 흔적처럼 또렷한 형상이 좀처럼 잡히지 않는 아련한 추억으로 남는 곳이다. 간이역은 짙은 향수만 불러일으켜 몹쓸 병을 도지게 한다.


 

봄날처럼 포근한 주말, 수목원을 지나다 차창 너머로 오래된 이발소를 보았다. 금방이라도 쓰러질듯 한 이발소 앞으로는 철길이 달리고 있었다. 문득 내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메라를 어설프게 둘러메고 철길로 향했다. 두리번거리기를 한참, 그냥 무작정 철길을 따라 걸었다. 다행히 바람이 불지 않아 햇볕을 몸속 깊이 들일 수 있었다. 역은 그 흔한 매표소도 없었다.


 

승무원도 없었다. 비는 피할 수 있겠으나 바람은 피할 수 없는 승강장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진주수목원역이라고 적힌 안내판 옆의 녹슨 오토바이가 정겹다. 바쁜 농사철에 발품을 줄여주며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을 것이다. 철길을 건너기로 하였다.


 

차창 너머로 보았던 이발소는 이미 문을 닫은 지 오래였다. 한때는 사람들로 붐볐을 이발소를 대신하여 작은 간이역 상회에 동네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러고 보니 ‘상회’라는 글씨도 오랜만에 보는 듯하다. 상회 옆에 있는 당산나무인듯한 고목 아래도 쉼터로 그만이겠다.


 

마침 국수집이 보여 주린 배를 채우기로 하였다. 국수집으로 가는데  웬 요란한 기계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정미소였다. 사람들이 바삐 자루를 옮기더니 이내 정미소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도 따라갔다.


 

천장에는 오랜 세월의 먼지가 마치 융단처럼 쌓여 있었다. 방아를 찧으면서 생기는 먼지가 정미소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주인은 쌓여 있는 곡식을 정미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하는 수 없이 밖에서 구경하고 있는데 마을에서는 젊은 축에 속할 사십대 후반의 사내가 다가왔다. 정미소를 찍고 있으니 나름 궁금했던 모양이다. 사내의 말에 의하면 이 정미소는 20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반성면에 가면 이보다 더 오래된 40년이나 지난 정미소가 있다고 하였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끝으로 사내와 작별하였다.


 

국수집에 들어서니 기차 시간을 적은 종이가 기둥에 붙여져 있었다. 10분 후면 기차가 올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아 면발을 씻고 있는 주인에게 확인을 하였다.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3,000원짜리 국수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철길로 향했다.


 

경적과 함께 기차가 승강장으로 들어오는가 싶더니 제법 많은 사람들이 기차에서 내렸다. 근래에 시골 간이역들은 승객이 없어 하나 둘 사라지고 있는데 이곳은 수목원으로 인해 오히려 역이 생기고 승객들의 수도 늘어나고 있었다.


 

잠시 멈추었던 기차는 승무원의 확인 절차가 끝나자 다시 철길을 서서히 달리기 시작하였다. 오랜만에 기차를 본 아이는 사라지는 기차를 쫓아 승강장 끝까지 달려갔다. 간이역은 다시 한산해졌다. 사람들도 제 갈 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사람들이 떠난 겨울 간이역에는 깊은 정적과 그리움만 바람 속에 남았다.



 

수목원역은 2007년 10월에 경상남도 수목원 이용객의 편의를 위해 임시승강장의 형태로 지어진 경전선의 철도역이다. 하루에 열 번 정도 무궁화 열차가 이 간이역을 지나간다. 경남 진주시 일반성면 개암리에 있다. 수목원까지는 도보로 5~10분 정도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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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  (http://blog.daum.net/jong5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