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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에 머물다

석탑 하나가 주는 뭉클한 감동, 경천사 십층석탑


 

석탑 하나가 주는 뭉클한 감동, 경천사 십층석탑


 

서울에 도착하니 날씨가 여행자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애초 서울의 궁궐을 답사할 예정이었으나 피부까지 파고드는 갑작스런 추위에 아무런 방비 없이 노출된 여행자는 일정을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수년 전에 궁궐은 이미 모두 답사했었지만 사진 자료가 없어 다시 찾으려고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추위를 벗어날 수 있는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향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안 전시실을 감상하던 중 예전부터 마음속에 품어왔던 석조물이 눈앞에 나타났다. 석조물을 보는 순간 “아”하는 짧은 탄식과 함께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언제였던가. 부여의 정림사지 석탑을 보고 둔중한 무언가에 머리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경천사 십층석탑. 이 탑을 보는 순간 나는 또다시 형언할 수 없는 충격에 빠져 들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거대한 규모는 차치하더라도 대리석에 빚은 석탑의 정교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경천사는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부소산에 있던 절로, 고려시대 전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탑은 고려 충목왕 4년인 1348년에 경천사에 세워졌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탑의 재료로 대리석을 사용하여 만든 탑이다.


 

탑은 모두 10층이다. 사자, 서유기 장면 등을 조각한 3단으로 된 기단은 위에서 보면 아자 모양이고, 그 위에 십층의 탑신이 있다. 탑신 또한 3층까지는 기단과 같은 아자 모양이고 4층부터 정사각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다. 4층부터는 각 몸돌마다 난간을 돌리고, 지붕돌은 옆에서 보아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 형태의 기왓골을 표현해 놓는 등 목조건축을 연상케 한다.


 

또한 1층부터 4층까지는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석가모니’와 같은 불교에서 중요시 하는 여러 장면을 묘사한 16회상을 조각하였으며, 지붕에는 각각이 어떤 장면인지를 알 수 있는 현판이 달려 있다. 5층부터 10층까지는 다섯 분 혹은 세 분의 부처를 빈틈없이 조각하였다.


 

새로운 양식의 석탑이 많이 출현했던 고려시대에서도 보기 드문 특수한 형태의 석탑이다. 경천사 십층석탑은 건축사적으로는 고려 다포 양식 건물 가운데 유일한 것으로 당시 목조건축의 일면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며, 미술사적으로는 14세기 조각 양식 연구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불화 도상 연구에도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석탑이 홀수가 아닌 10층으로 만든 이유는 경천사가 화엄종 계통의 사찰이었기 때문이다. <화엄경華嚴經>에서는 십을 ‘화엄의 완성’, ‘완전한 수’로 여겼다.


 

이 탑은 1907년에 일본의 궁내대신 다나카 미스야키田中光顯가 일본에 밀반출하였으나 영국 언론인 E. 베델과 미국 언론인 H. 헐버트 등의 노력에 의해 1918년에 반환되어 경복궁 회랑에 보관하였다. 그러다 1959년 경복궁 내 전통공예관 앞에 시멘트를 이용해 복원하였고 1962년 12월 20일에 국보 제86호로 지정되었다. 1995년 산성비와 풍화작용에 의해 보존상의 심각한 문제점이 드러나서 해체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05년 새 박물관 개관에 맞춰 ‘역사의 길’에 이전 복원하였다.



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  (http://blog.daum.net/jong5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