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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여행/TV, 영화 촬영지

‘선덕여왕’과 ‘워낭소리’의 촬영지, 봉화 청량사



 

‘선덕여왕’과 ‘워낭소리’의 촬영지, 봉화 청량사

- 바람이 소리를 만나는 산사의 가을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꽃이 필까 잎이 질까

아무도 모르는 세계의 저쪽

아득한

어느 먼 나라의 눈 소식이라도 들릴까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저녁연기 가늘게 피어오르는

청량의 산사에 밤이 올까

창호문에 그림자

고요히 어른거릴까

             청량산인-


 

바람이 소리를 만나다


처음 청량사를 찾았을 때 여행자는 바람의 소리를 만났다. 블로그 부제목을 ‘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라고 한 것도 이 글귀에서 따왔다. 광석나루에서 세상의 소리를 끊고 청량산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서야 만났던 고요한 산사. 청량사를 수년 전 찾았을 때 바람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통나무 속을 파낸 수십 개의 홈통으로 계곡물이 졸졸 흐르던 기억은 기왓장으로 바뀐 오늘에 묻혀 버렸다. 그 끝에 찻집 안심당이 있었다.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그 글귀에 빠져 한참을 바람 소리만 듣고 있었다.


 

오늘 다시 청량사에 오니 더 이상 바람을 만날 수 없었다. 몰려든 인파로 인해 바람 소리는 사라진지 이미 오래고 여행자는 바람이 내는 풍경의 소리만 겨우 들었을 뿐이었다. 청량사는 최근 ‘선덕여왕’과 ‘워낭소리’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더 이상 청량사에서 산사의 고즈넉함을 바라는 것은 여행자의 푸념 섞인 바람일 뿐이다.



 

천명공주 이곳에서 재기를 노리다-선덕여왕


선덕여왕에서 미실에 쫓긴 천명공주가 김춘추를 낳고 국선 문노를 찾아나서는 장면이 이곳을 무대로 촬영되었다. 산세가 워낙 수려한데다 산사의 정갈함과 전각들의 날렵한 배치가 드라마 선덕여왕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배경으로 손색이 없었다.



 

죽은 소의 워낭을 손에 들고 노부부가 소의 영혼을 위로하다-워낭소리


독립영화로 깊은 감동을 준 ‘워낭소리’도 이곳에서 촬영하였다. 영화의 첫 부분에서 노부부가 힘겹게 가파른 계단을 올라 워낭을 손에 들고 죽은 소의 영혼을 위로하던 장면의 배경이 된 곳이다.



 

사실 이곳에서 촬영된 데에는 유리보전 앞에 있는 늘씬한 노송 한 그루에 전해지는 이야기와 무관하지 않다. 옛날 명호면 북곡리에 남민이라는 사람의 집에 뿔이 셋 난 송아지가 태어났다. 그 송아지는 몇 달 사이에 덩치가 엄청나게 커져 힘이 셀 뿐 아니라 성질도 매우 사나웠다. 연대사 주지가 남민의 집에 시주를 부탁하여 송아지를 데리고 와서 짐을 나르는 데 썼는데 송아지는 매우 순하게 일을 해내었다. 덕분에 가파른 산등성이에 절을 짓는 대역사를 치러낼 수 있었다. 어느 날 이 송아지가 힘을 다했는지 죽어 절 앞에 묻으니 그곳에서 가지가 셋 난 소나무가 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세뿔 송아지 무덤三角牛塚’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아무리 힘 좋은 소라 하더라도 얼마나 고달팠겠는가. 사람은 소에게 필요에 의해 주지만 소는 사람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준다. 지금도 유리보전 앞 사리탑에 가지가 셋인 소나무가 청량산을 바라보며 서 있다. 가지가 셋인 소나무를 바라보고 있자니 사리탑에서 워낭을 들고 소의 영혼을 위로했던 노부부의 장면이 오버랩 된다.





공민왕의 자취를 만나다


 청량사는 663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뒤 송광사 16국사의 끝스님인 고봉선사에 의해 중창된 천년고찰이다. 연화봉 아래 가파른 산기슭의 높은 축대 위에 자리한 청량사의 유리보전은 동방유리광 세계를 다스리는 약사여래를 모신 전각이다. 유리보전의 현판 글씨는 홍건적의 난으로 안동으로 피신해온 공민왕이 썼다고 전해진다.



이날 가을 날씨는 충격적이었다. 봄날 황사가 심할 때처럼 날씨가 너무 흐리고 공기가 탁하여 아름다운 청량사를 사진에 제대로 담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쉽다.

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  (http://blog.daum.net/jong5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