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의 요새, 파사산성을 가다.
잡풀에 덮인 무너진 성벽
여주에서 남한강을 따라가면 막국수로 유명한 천서리가 나온다. 천서리에서 강을 건너면 이포나루가 있다. 지금은 번듯한 큰 다리가 놓여 옛 포구의 정취를 찾을 수 없지만 한때는 한양과 강원도를 잇는 번화한 나루였다.
세조 2년인 1456년에 폐위된 단종이 한양의 광진나루에서 뱃길을 따라 강원도 영월땅으로 유배를 가던 중 이곳 이포나루에서 잠시 내려 눈물을 흘렀다. 그때 단종이 물을 마셨다는 우물 어수정이 이곳과 가까운 대신면에 있다고 한다.
일제시대에는 여주와 양평의 엄청난 곡물들이 이포나루를 거쳐 인천으로 운반되기도 하였다. 이포나루의 옛 영화와 한스러움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지금은 나루에 대한 먼 기억만이 희미하게 남을 뿐이다.
천서리에서 보면 마을 뒤쪽으로 나지막한 야산이 하나 보인다. 해발230m에 불과한 천서리 파사산이다. 마을 이름은 남한강 서쪽에 있어 천서리라 불렀겠지만 파사산의 유래는 몇 가지로 나뉘어 진다.
다리 왼쪽이 이포나루터이다.
먼 옛날 파사국의 자리였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신라의 5대왕인 파사왕 때 성을 쌓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파사왕 때 성에 관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남녀 두 장군이 내기를 하였는데 남장군은 나막신을 신고 중국을 다녀오고, 여장군은 파사산성을 쌓기로 하였다. 여장군이 성을 채 쌓기도 전에 남장군이 중국에 다녀왔고 여장군은 개군면 석장리까지 가서 돌을 치마폭에 담아오던 중 이 소식을 듣고 놀라 치마폭이 찢어지면서 돌이 떨어져서 마을에 돌담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때문에 파사산성은 미완성상태라는 이야기이다.
복원된 동문 성벽 일대
마을에서 보면 한낱 야산에 불과한 이곳에 왜 산성을 만들었을까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마을 뒤 급경사인 산길을 오르면서 그 의문은 점점 풀리기 시작해서 성벽 위에 서면 산성이 있는 자리가 얼마나 뛰어난 요새인지를 금방 알 수가 있다.
멀리 여주가 보인다.
여주, 이천, 양평이 한눈에 들어오고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이 일대가 곡창지대인 만큼 군량의 확보도 유리했을 것이다. 강의 상류 쪽으로는 충주와 문경새재까지 이르고, 하류 쪽으로는 한양을 거쳐 서해로 빠질 수 있는 사통팔달의 요지인 셈이다.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
성의 둘레는 943m이다. 복원된 동문 일대를 제외하고는 잡풀이 무성하지만 앞으로 전 구간을 복원한다고 하니 이 지역의 명소가 될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성벽 위를 한 바퀴 걷노라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점점 펼쳐지는 산 능선과 황금벌판, 유장한 남한강 풍경은 황홀한 노을이라도 있다면 남한강 최고의 풍광이라는 찬사도 아깝지 않을 정도이다. 파사산성은 사적 제251호로 경기도 여주군 대신면 천서리에 있다.
▒ 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 (http://blog.daum.net/jong5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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