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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여행/또 하나의 일상

여섯 살 딸의 문자, 아빠에겐 재앙




 

여섯 살 딸의 문자, 아빠에겐 재앙



 

 여섯 살 딸아이가 요즈음 무섭습니다. TV 리모컨 때문에 싸우기도 하고 컴퓨터 때문에 다투기도 합니다. 가끔씩 먹을 것 가지고도 싸우니 아내는 철없는 남편에게 혀를 끌끌 찹니다. 특히 아이스크림에 대해서는 둘 다 한 치의 양보가 없습니다.  지난 7월로 기억되네요. 아내에게서 이상한 문자가 와서 전화를 했더니 딸아이가 보냈다고 하더군요. 처음에는 대견하여 답글도 빠뜨리지 않고 꼬박꼬박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딸아이의 문자가 나에게 엄청난 재앙이 될 것이라는 걸 전혀 예상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뒤 딸아이는 수시로 문자를 보냈습니다. 한 번은 집에 들어가니 아이는 자고 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난 아이는 삐져 있더군요. 말을 붙여도 뽀로통하게 입만 내밀고 대꾸도 하지 않더군요. 아내에게 물으니 나에게 문자를 보냈는데 답장이 없어 그렇다고 하였습니다. 그제야 손 전화를 확인해보니 문자가 들어와 있었습니다. 소란한 술자리에서 미처 보지 못 했는가 봅니다. 아이는 아빠한테 답글이 올까 봐 아내의 손 전화를 손에 꼭 쥔 채 잠이 들었다고 하더군요. 하는 수 없이 미안하다고 아이를 달래고 다음부터 답글을 꼭 보내리라 약속하였습니다.



 

 한 때 아내는 술자리가 길어지면 아이를 사주하여 나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본인이 하면 알겠다고 답만 하고 자리를 뜨지 않으니 아이를 배후조종하여 전화를 합니다. “어, 지아야, 왜?”하는 순간 술자리 분위기는 숙연해집니다. 같이 마시던 이들이 걱정을 하고 나는 하는 수 없이 서둘러 집으로 향하지요. 내가 집에 들어가면 아내는 승리자의 여유로운 웃음을 띠며 꼭 한마디 합니다. “어휴 웬일로 일찍 들어 오셨을까"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딸아이는 유치원 간다며 밥을 먹으면서 나에게 한마디 하였습니다. “아빠” “응” “아빠는 왜 술 먹으면 이상해져” 순간 당황하였습니다. 지난 밤 기억을 아무리 더듬어 봐도 아이에게 실수한 게 없는데 무슨 말인지 몰라 다시 물었더니 “아빠, 나 지금 유치원에 가야 되거든, 나중에 밤에 이야기해” 참 어이가 없더군요. 아이는 쌩하게 가버리고 저도 서둘러 일터로 갔습니다. 일을 하는데 가끔 아이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저녁이 되어 아이를 데리러 갔습니다. 소심한 아빠는 아이에게 아침의 일을 물었습니다. “아침에 무슨 이야기였지” “아니, 아빠 술 안 먹었으면 좋겠다고” “응, 아빠가 싫어” “아니, 아빠가 싫은 게 아니라...... 아빠는 술 먹으면 나를 괴롭히잖아” 그때서야 머릿속에 무언가가 번쩍 떠올랐습니다. “나 진짜 아빠가 술 먹고 와서 뽀뽀하고 볼 만지는 게 너무 싫거든” 순간 멍해졌습니다. “지아야, 그렇게 하는 건 아빠가 좋아서 그러는 거야. 지아가 너무 예뻐서” “그래도 나는 그게 싫단 말이야” 나는 실연이라도 당한 것처럼 처절한 말투로 아이에게 재차 물었습니다. “아빠가 뽀뽀하는 게 싫어?” “아니, 뽀뽀하는 게 싫은 게 아니라 술 먹고 뽀뽀하면 술 냄새 나잖아” 아무 말도 못하고 다음부터 그러지 않겠다고 아이에게 약속하였습니다.

그 후로 저는 술 마시고 집에 들어가면 얌전한 고양이처럼 조용히 자는 척하다 아이가 잠이 들면 볼을 부비고 뽀뽀를 하고나서야 흡족한 기분으로 잠자리에 듭니다.


 

 이제 딸아이는 문자로 아빠를 통제합니다. 무차별적인 문자에 저는 집으로 질질 끌려갑니다. 어제의 문자는 저에게 묘한 공포감을 주더군요. 오랜만에 친구가 찾아와서 한 잔 하였습니다. 나라님이 돌아가신지라 술자리는 애초 간단히 하기로 했습니다. 8시가 넘은 시간에 문자 하나가 도착하였습니다. 문자를 보고 기절초풍할 뻔했습니다. 대개 “아빠, 빨리 들어와” 혹은 “아빠, 언제 들어올 거야” 정도의 문자였는데 어제의 문자는 처음에는 웃다가 나중에는 그 웃음 뒤에 비수가 있다는 걸 깨닫게 하였지요. “아빠 술 마니 머코 오지마 알계서 때치 한 대 한다(아빠 술 많이 먹고 오지마 알겠어 때치 한 대 한다)” 옆에 있던 친구가 문자를 보고 배를 잡고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나자고 하였습니다. 책은 곧잘 읽는데 글쓰기는 아직 맞춤법이 맞지 않아 간혹 웃음을 주곤 하지요. 이제 딸아이에게서 문자가 오면 나는 귀가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하고 있습니다.


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http://blog.daum.net/jong5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