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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의 풍류와 멋

붉은 백일홍 만발한 담양 '명옥헌'





 

붉은 백일홍 만발한 담양 ‘명옥헌’


 

 수년 전만 해도 명옥헌은 찾는 이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 나는 거의 매년 명옥헌을 들리면서 이곳이 세상에 알려질까 내심 노심초사하였다. 소쇄원으로 사람들이 몰려들 때 나는 소쇄원을 뒤로 하고 명옥헌을 자주 찾았었다.


 

 호수에 늘어진 고목이 마을의 오랜 역사를 말해주는 후산마을. 골목을 잠깐 돌아가면 이내 명옥헌이 시원한 전망을 드러낸다. 산언덕의 탁 트인 전망에 자리한 명옥헌은 산기슭을 타고 내리는 계류를 이용하여 섬이 있는 연못을 파고 정자를 지었다.


 

 연못 주위에는 소나무와 배롱나무가 있어 더욱 운치가 있다. 이곳의 배롱나무(백일홍)는 우리가 흔히 보는 여느 배롱나무와는 달리 키가 크고 둥치가 굵어 가지가 무성하며 꽃송이가 많이 달려 있다.




 

 이곳의 배롱나무는 적송과 목백일홍이다. 온통 붉은 배롱나무로 덮인 명옥헌 일대를 정자에서 내려다보면 일대 장관이다. 흔히 무릉도원하면 복숭아꽃을 떠올리지만 배롱나무도 사실 선계와 관련이 많다. 배롱나무의 본디 이름은 자미목紫薇木인데, 자미는 도교 선계의 하나인 자미탄과 관련이 있다. 그러하니 배롱나무 꽃들로 가득한 명옥헌은 도교의 선계이자 이상향인 셈이다.




 

 명옥헌이 있는 후산마을은 600여 년 전 순천 박씨가 처음으로 들어와 살았다. 명옥헌을 조성한 오명중의 아버지 명곡 오희도는 어머니 박씨를 따라 외가인 이곳에 정착하였다.


 

 그는 광해군 시절의 어지러운 세상을 등지고 집 옆에 망재忘齋라는 조촐한 서재를 짓고 글을 읽으며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광해군을 폐위하기 위해 동지를 규합하던 능양군(인조)이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정자 안에는 삼고三顧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삼고'는 유비가 제갈공명을 세 번 찾아갔듯이 인조가 오희도를 세 번 찾아간 것을 뜻한다고 한다. 오희도는 인조반정 후 문과에 급제하여 한림원 기주관이 되었으나 1년도 못 가 천연두로 죽고 말았다.




 

 그 후 명곡의 넷째 아들인 오명중이 아버지가 살던 터의 계류 가에 명옥헌을 짓고 아래위 두 곳에 연못을 파 정원을 꾸몄다. 선친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연못 주위에는 배롱나무를 심었다.


 

 정자 건물 뒤로 가면 자그마한 연못이 있고 주위 둔덕에도 배롱나무 고목들로 빼곡하다. 이 연못으로 흘러드는 계류의 물 흐르는 소리가 옥이 부딪치는 소리와 같다 하여 명옥헌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연못 위쪽의 바위에는 '명옥헌계축鳴玉軒癸丑'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우암 송시열의 글씨라고 전해지고 있으며, 명옥헌의 현판은 이 글씨를 모각하였다고 한다.


 

 명옥헌에서 후산마을 골목 안쪽으로 200여 미터 가면 인조대왕이 말을 맨 큰 은행나무가 있다. 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세력을 모으기 위해 호남 지방을 두루 다니던 중 이 마을에 살던 오희도를 만나러 왔다. 그때 타고 온 말을 이 나무에 매어 두었다고 한다.


 

 명옥헌은 지난 6월 국가명승으로 지정되었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만발한 백일홍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한적하니 거닐기 좋던 명옥헌은 이미 옛 말이 되어 버렸다.


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http://blog.daum.net/jong5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