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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담다

땅끝에서 만난 해바라기와 코스모스




 

땅끝에서 만난 해바라기와 코스모스

 

 혼자 길을 떠났습니다. 아무런 계획 없이 떠났습니다. 더는 갈 곳 없는 땅끝에 이르러 나의 길은 끝났습니다.


땅끝 전망대와 모노레일


 

 중리바닷가에서 해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땅끝의 한 모텔을 찾았습니다. 딱히 정한 숙소도 없는 터라 바로 숙박비를 지불하고 마을을 돌았습니다.


 

 어둑어둑한 땅끝의 골목길에서 영화 ‘초록물고기’와 같은 이름의 식당을 만났습니다. 조선족처럼 보이는 식당아가씨가 미소를 머금으며 인사를 하였습니다.


 

 혼자서 밥을 먹을 거라며 괜찮은지를 물어 보자 자리를 내어 줍니다. 여행길에서 제일 곤혹스러운 것이 혼자 식사를 하는 것입니다. 익숙해질 법도 한데 매번 처음인 것처럼 주저하게 됩니다. 혼자 먹기에는 많은 반찬이 항상 문제입니다. 음식을 턱없이 남기게 되니 미안한 감정이 생기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요.




 

 식사를 하고나서 어둡고 쓸쓸한 모텔에 곧장 들어가기 싫어 마을을 한 바퀴 돌아봅니다. 혼자 다니는 데는 이골이 났는지라 사람들의 시선을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간혹 커플이라도 만나면 사진 한 장 찍어주면 그만입니다.



 

 항구에 불이 하나 둘 꺼지기 시작합니다. 더는 버틸 수 없어 모텔에 들어와 잠을 청하였습니다. 내일 아침의 일출 시간은 5시 20분이라고 모텔의 사내가 말하였습니다. 타고난 게으름으로 인하여 일출을 볼 수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지만 행여나 하는 마음에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음날 당연히 일출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늦잠을 잔 이유로 땡볕에 마을을 다시 돌아야 했습니다. 마을 곳곳의 텃밭에는 꽃들이 심겨져 있었습니다.


 

땅끝 일출 포인트


 

 그중 단연 눈에 띄는 건 일찍 핀 해바라기와 코스모스였습니다. 해바라기야 조금 일찍 피어 염치없어 보일 뿐이지만 가을의 코스모스가 지금 핀 것은 정말 생뚱맞습니다.


 

 뜨거운 여름의 코스모스는 왠지 힘들어 보입니다. 작열하는 태양을 견디지 못하여 코스모스의 연약한 잎은 조금씩 시들기 시작합니다. 괜히 미안해지는 건 인간이면 가지는 보편적인 감정이겠지요. 우리가 가해자일 수도 있으니까요.


 

 해바라기도 이른 감이 없지 않습니다. 팔월이 되어야 만개를 하는데 벌써 꽃 치장을 하고 있습니다. 나에게는 활짝 핀 해바라기들이 땅끝의 일출을 수십 번 본 것이나 매한가지였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를 생각해 봅니다. 그는 유독 노란색을 좋아하였습니다. 이글거리는 태양처럼 격정적이었던 고흐는 ‘해바라기’라는 작품을 통하여 그의 희망과 기쁨, 설렘을 표현하였습니다.


 

 그에게 ‘해바라기’는 영혼의 꽃이었습니다. 고갱을 위해 해바라기를 그린 고흐는 역설적이게도 이 작품을 완성한 후 고갱과 불화를 겪게 됩니다. 그 충격으로 귀를 자르고 그들의 짧은 만남은 끝을 보게 됩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땅끝(갈두마을) 전경


 

 ‘땅끝에 서서/더는 갈 곳 없는 땅끝에 서서/....’ 해바라기를 보았습니다. 혼자 서서 해바라기와 코스모스를 뚫어지게 바라보았습니다. 태양은 이글거리고 나는 현기증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http://blog.daum.net/jong5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