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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에 머물다

마지막 붉음을 토하는 선운사 동백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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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읍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읍니다.
                                                                    
                                                                             ---- 서정주 '선운사 동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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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창이다. 미당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이 시만큼 선운사 동백을 그립게 만든 시를 찾기는 쉽지 않다. 선운사 뒤 산길을 넘어가면 서정주 생가가 있다. 질마재마을은 '신부' 등의 아름다운 시가 수록된 시집인 '질마재신화'의 산실이기도 하다.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은 몰려든 인파에 묻혀 버린지 오래지만, 선운사 입구 한 켠에 그의 육필원고를 새긴 시비가 상기도 남아 있어 시인의 소리를 대신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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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 부도밭 삼나무숲 아래 고즈넉히 자리하고 있다.

인파에 밀린 것도 잠시 길 오른편 삼나무 숲이 우거진 곳에 부도밭이 다소곳이 자리하고 있다. 추사 김정희가 쓴 백파선사의 부도비가 지나가는 길손의 걸음을 멈추게 하는 곳이다. 남포오석이라는 검은 돌에 새겨진 이 명문은 추사체를 직접 볼 수 있어 한번쯤 들릴만하다. 백파선사비 뒤로 삼층석탑이 부도 한 기를 친구삼아 자연 암반 위에 앙증맞게 서 있다. 바위를 기단으로 삼으니 별도의 기단을 만들지 않고 탑을 세운 천연덕스러움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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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는 백제 위덕왕 24년인 577년에 검단선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혹은 진흥왕이 창건했다는 설이 있는데,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서는 진흥왕이 세웠다는 설은 그 진실성이 희박하다. 다만 신라가 삼국통일을 하고 고려 때까지도 신라중심의 사고가 지배층에 팽배했던 걸로 보아 후대에 이르러 덧칠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도솔암 가는 길에는 진흥굴이 있는데, 이도 후대에 각색된 것으로 보인다. 미당 또한 이곳 출신이면서 그의 시에는 백제보다는 오히려 신라와 진흥왕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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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루 다른 건물을 짓고 난 목재로 지었다고 한다. 단층으로 된 강당이다.

검단선사가 선운사를 창건하게 된 연유는 다음과 같다. 어느 날 선운산 앞 죽도포에 돌배가 떠내려 왔다. 마을사람들이 돌배를 끌어당길려고 하였으나 배는 바다쪽으로 멀어만 갔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검단선사가 바다에 나아가자 배가 저절로 다가왔다고 한다. 배 안에는 삼존불상 등과 함께 편지 한 통이 있었다. 돌배는 인도에서 왔고 배 안의 불상을 잘 모시면 중생을 구제하리라는 내용이 있었다고 한다. 이에 연못을 메워 지금의 터에 절을 세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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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를 세울 당시 이 인근에는 도적들이 들끓었다고 한다. 검단선사는 도적들을 교화하는 한편 소금 굽는 법을 가르쳐서 그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하였다. 교화된 이들은 보은염이라 하여 소금을 구워 선운사에 해마다 봄가을에 보냈다고 한다. 해방전까지만 하여도 선운사에 소금을 보내는 풍습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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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가 선 자리는 널찍하니 탁 트여 있어 산지의 사찰치고는 눈맛이 시원하다. 대개의 사찰 강당이 2층 누각 형태로 지어진데 반해 만세루는 땅 가까이 붙어 있는 단층 건물이다. 선운사의 다른 건물을 짓고 남은 목재로 지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건물 규모는 크지만 전체적으로 검박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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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측표지목 선운사 동백꽃 군락지의 개화시기를 관측하기 위하여 고창군과 기상청이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대웅전 뒤안길을 돌아 가면 동백군락지가 있다. 뭇사람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하고 많은 시인들의 시흥을 돋운 주인공이다. 여행자가 돌아본 동백의 으뜸으로는 단연 강진의 백련사와 거제도 지심도의 동백이다. 사실 선운사의 동백은 그렇게 웅장하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동백군락지를 처음 보는 이들에겐 놀라움을 주기에 충분하지만 기실 남쪽의 동백군락지를 보고 나면 그 자체로는 감흥이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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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선운사 동빽은 왜 뭇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가.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복잡하게 얽힌 듯 하다. 동백나무가 자생할 수 있는 최북단이 바로 선운사이다. 서울토박이들이 동백꽃을 가장 가까이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선운사이다. 수령 5백년이 된 3,000여 그루의 동백군락을 중부지방에서 보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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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그래서일까. 동백꽃 자체의 아름다움이라면 지심도와 오동도가 더 나을 수도 있겠다. 선운사 동백은 도솔천과 선운사에 얽힌 갖은 설화와 여기를 거쳐간 많은 이들의 흔적들이 상상력과 결합되어 표출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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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남도의 동백꽃이 겨울인 2월에 만개를 하는 데 비해 따뜻한 봄날인 4월 초, 중순에 만개를 하여 5월초까지 동백꽃을 볼 수 있는 여유로움도 또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봄꽃은 대개 바람에 잎들이 산산히 흩날리는 데, 동백꽃은 송이채로 후두둑 떨어진다. 마치 영화의 주인공이 슬픔에 빠져 눈물을 주루룩 흘리는 게 아니라 눈물을 한방울씩 뚝뚝 떨어뜨리면 보는 이의 마음도 더 아리게 되는 것처럼 동백꽃은 질 때가 슬프도록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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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앞 층계 위에는 수선화가 피어 있었다.
미소년인 나르시스가 연못 속에 비친 자기 얼굴에 반해서 물에 빠져 죽자 그 자리에 피어난 꽃이 수선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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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최영미 '선운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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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운사는 지난 4월 20일에 다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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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daum.net/jong5629)를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