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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로 가는 길

가락국 일곱 왕자가 성불한 운상원, 지리산 칠불암


가락국 일곱 왕자가 성불한 운상원, 지리산 칠불암
- 옥보고의 거문고 소리를 들었다네

가락국 허황후가 아들들인 일곱 왕자의 성불하는 모습을 보았다는 '천비연' 연못

 겨울에 칡꽃이 피었다 하여 '화개동천'으로 불리던 쌍계사 계곡을 훨씬 더 올라가면 칠불암에 이른다. 계단식 논이 정겨웠던 이곳은 최근 산비탈에 녹차밭이 일구어지면서 또 다른 지리산 산골마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허황후가 입산한 일곱 왕자를 그리며 임시 궁궐을 지어 머물렀다는 범왕리 산길을 구불구불 올라가면 칠불암이다.

연못 반대편 대숲에 둘러싸인 이름모를 부도 두 기

 칠불암은 지금은 칠불사로도 불리지만 실은 쌍계사 암자 가운데 하나이다. 가락국 일곱 왕자가 지금의 칠불사 자리인 운상원에서 입산 수도하였다. 황후인 허황옥이 아들들이 보고 싶어 이곳을 찾았으나 오빠인 장유화상이 불심을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만나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장유화상이 일곱 왕자가 성불하였다며 허황후에게 만나 보라며 연못을 가리켰고 허황후는 황금빛 가사를 걸치고 승천하는 일곱 아들들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연못이 암자 입구에 잘 정비되어 있는 연못으로 '천비연'이라 불린다. 한때 매몰되어 있던 것을 근래에 다시 정비하였다.


아들들이 출가한 지 6년 만에 이곳 칠불암에서 성불하여 부처가 되자 수로왕은 크게 기뻐하여 절을 크게 짓고 '칠불암'이라 불렀다고 한다. 장유화상과 허황옥, 가락국 일곱 왕자의 칠불암 전설은 불교가 바다를 건너 전래되었다는 남방 전래설의 일종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칠불암을 깊은 침묵에 쌓인 암자로 생각하고 갔다가는 입구부터 위압적인 건물에 다소 당황스러움을 겪을 것이다. 이 깊은 산중에 고래등 같은 건물들이 즐비하다. 산사의 깊은 적막도 불심이 깊은 이들의 발길을 막을 수는 없었던가 보다.


구름 위에 떠 있는 암자를 상상한다면 그도 그럴 법하다. 지리산의 산능선이 보일 듯 말 듯 산속 깊이 자리잡고 있어 안개라도 낄라치면 내가 있는 자리조차 분간할 수 없으니 말이다. 비오는 날 처마 끝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에 옛 운상원의 모습을 상상해보는 것도 좋으리라.

신라 효공왕 때 구들도사로 불리던 담공선사가 만들었다는 '아자방'. 방 모양이 亞자 모양이다.
한 번 불을 지피면 한 달 반 동안이나 따뜻했다고 한다.


칠불암의 가장 독특한 건물은 아자방이다. 한꺼번에 50명의 스님들이 벽을 보고 참선을 할 수 있는 이 특이한 구조의 방은 한 번 불을 때면 한 달 반 동안이나 따뜻했다고 한다. 한국전쟁 때 불타 버려 최근에 복원한 이 아자방은 유리로 막혀 있어 자세히 볼 수 없어 아쉬울 뿐이다.


신라의 전설적인 거문고의 대가, 옥보고도 이곳 운상원에서 50년 동안 거문고의 기법을 닦고 30여 곡을 지어 신라에 거문고가 널리 퍼지게 하였다. 칠불암이 신라 음악의 중요한 요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화개에서 칠불암 이르는 길은 가파른 길이다. 성기와 계연이 칠불암으로 나들이를 가던 김동리의 소설 '역마' 속의 장면을 떠올리며 오르는 것도 좋으리라. 옥보고의 거문고 소리를 느껴며 호롯하게 걸어 가는 것도 좋으리라. 산문에 들어서면 일곱 왕자의 신심으로 간절이 바라는 것도 좋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