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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여행/또 하나의 일상

차유리에 앉은 황홀한 서리꽃


차유리에 앉은 황홀한
서리꽃



오대산 월정사 민박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아침에 일어나 마당을 나서니 입이 금방이라도 얼어붙을 듯한 차가운 날씨였다.

영화 20도. 차에서 본 온도계가 말해 주었다.


차유리에 앉은 서리로 인해 한 치 앞을 볼 수 없었다.
 마치 얼음집 안에 내가 들어 있는 듯
차유리에 소복이 내린 서리로 인해 바깥풍경은 막혀 버렸다.

 하는 수 없이 차유리에 맺힌 서리와 얼음이 녹을 동안을 기다렸다.



차유리에 번득거리는 햇빛을 보는 순간 묘한 호기심이 일었다.
햇빛에 반짝이는 서리꽃이 보석처럼 아름답지 않은가.



망설일 필요도 없이 카메라를 들이대었다. 
차 안팎을 부지런히 드나들며 사진을 찍었다.



빛과 그림자 그리고 서리꽃이 만들어내는 작품은 가히 황홀경이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렌즈였다. 광각에 가까운 렌즈이다 보니 서리꽃을 섬세하게 담을 수 없었다.
꽃의 결정체는 아예 기대조차 할 수 없었다.


아쉬우면 아쉬운대로......
그래야 내일이 있으니까......


자연의 빛이 서리꽃을 더욱 아름답게 하고
사람이 만든 차가 색과 어둠을 만들어낸다.


난 가끔 생각한다.

인간이 만들어 낸 편리함의 대표. 자동차.
난 그 편리함 대신 종종 다른 용도로 차를 이용한다.


차의 썬틴 농도와 색상에 따라 각종 필터 대용으로,
때론 삼각대를 대신하기도 하고,
차몸에 비친 각종 사물들의 변형을 즐겨보곤 한다.


추위가 매섭다.
10여 분 지났을까. 손가락이 나를 떠났다.
나도 길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