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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로 가는 길

눈쌓인 오대산의 유일한 비구니 암자 '남대 지장암'

눈쌓인 오대산의 유일한 비구니 암자 '남대 지장암'
- 암자에서 소통을 생각하다.
 


 오대산의 주봉은 1, 500m 가 넘는 비로봉이다. 비로봉(북대)을 위시하여 호령봉(중대), 상왕봉(서대), 두로봉(남대), 동대산(동대) 등 다섯 봉우리가 누대를 이루고 있어 오대산이라 부른다. 그 봉우리들에 중대 사자암(적멸보궁), 동대  관음암, 서대 수정암, 남대 지장암, 북대 미륵암의 다섯 암자가  있다.


 원래 문수보살이 머문다는 중국의 오대산(청량산) 신앙을 자장율사가 우리나라에 소개하여 강원도 오대산이 성지로 추앙을 받게 되었다. 이후 신라의 보천태자에 이르러 오대의 각 대마다 다섯 진성眞聖이 거주하고 있다는 신앙으로 신비화되었다.


 신라 효소왕 때 신문왕의 아들 보천과 효명 두 태자가 오대산으로 들어갔다. 각기 암자를 짓고 수행하다가 오대로 참배를 가게 되었다. 이때 동대에서는 1만 관세음보살이, 서대에서는 1만 대세지보살이, 남대에서는 1만 지장보살이, 북대에서는 1만 미륵보살이, 중대에서는 1만 문수보살이 나타나서 5만 진신에게 일일이 참배를 하였다고 한다.


 자장율사가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강원도 오대산에 1만의 문수보살이 머물고 있다는 깨우침을 듣고 왔다는 이야기나 보천태자의 이야기에서 신라인의 불국토 사상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신라가 북방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일념으로 오대산을 전략적인 근거지로 삼을 필요가 있지 않았나 싶다.



 월정사에서 바람이 불면 날리던 눈이 떨어질 정도의 거리에 남대 지장암이 있다. 내가 간 날 눈은 내리지 않았지만 암자에 흰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한 낮인데도 영화 10도가 넘는 추운 날씨였다. 월정사에서 하나 둘 보이던 사람도 암자에 이르자 아무도 없었다.
 


 남대 지장암. 오대산에서 유일한 비구니 암자이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비구니 선방을 연 곳이라고 하니 법문이 깊은 비구니 스님은 이곳을 죄다 거쳐 갔으리라.


 암자마당에는 스님들이 지나간 발자국만 이따금 눈을 어지럽힐 뿐이었다. 소복소복 내린 그대로 눈은 쌓여 있었다. 빈마당을 채우는 건 눈, 눈이었다. 그것도 하얀 눈.


 비구니암자답게 해우소가 정갈하다. 너무 깨끗하여 사용하기가 민망할 지경이다. 해우소 안을 들어갈려면 암자에서 준비한 신발을 갈아 신어야 한다. 완전무장한 신발을 벗어야하는 수고로움은 있지만 윤기마저 흐르는 꺠끗한 바닥에 무장해제야 당연한 것이 아닐까.


 해우소 옆의 공중전화가 생경스럽다. 다소 엉뚱하다는 생각이 일면서도 세상과의 유일한 소통선이다 생각하니 되려 마음이 훈훈해진다. 소통을 할 수 있는 길이 많은데도 그 길을 찾지 못하고 아집만 부리는 이들이 나라꼴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는 생각에 분통이 치민다. 오늘따라 해우소 옆 전화기가 나는 그립다.



 지장암에서 상원사로 가는 계곡에 섶다리가 놓여 있다. 소통에는 많은 비용이 필요하지 않다. 소소하지만 그 간절함을 아는 자는 다리를 놓으리라. 강바닥을 긁어 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지금 우리에겐 무엇보다 소통의 다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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