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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로 가는 길

영축산의 아름다운 암자, 극락암

영축산의 아름다운 암자, 극락암
- 극락에는 길이 없는데 어디로 왔는가

영축산(취서산)과 극락암

바람이 매섭다. 겨울바람이 으레 그러하지만 온몸을 감싸고도 찬기운을 막을 수 없었다. 카메라를 든 손이 시리다 못해 아프기까지 하다. 겨울여행은 암자와 섬이 제격이라고 늘상 말하면서도 오늘같이 추운 날에는 서서히 무너지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혼자가는 암자 산행길은 늘 쓸쓸하지만 얼굴까지 바람막이를 둘러치고 나니 한결 따뜻하다.

극락암 가는 길

솔숲에 우는 바람소리와 땅에 비친 햇살을 도반삼아 암자로 향했다. 이따금 오가는 등산객을 제외하곤 인적마저 없다. 숲이 만들어낸 그늘은 오래되지 않아 햇빛에 자리를 내어 주었다. 영축산의 기암 봉우리가 밝은 햇빛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긴 어둠 끝의 한 줄기 빛이 온 몸을 태워 버릴 듯 강하게 내리 비춘다.

영월루와 홍교

암자 마당에는 오래된 감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가지 끝에 달린 몇 개의 홍시는 까치를 위한 보시인가보다. 수련은 겨울을 이기지 못해 꽃이 진지 오래지만 연못에 비춘 햇살이 또다른 연꽃을 만들어낸다. 무지개 다리를 건너면 예가 바로 극락인가. "나는 '이와같이 '들었다." 여시(아)문의 글발도 바람불 듯 구불구불 씌여 있다.


영축산의 봉우리가 연못에 비치는 극락영지와 무지개다리 홍교

영축산의 봉우리가 연못에 그림자를 드리운다고 하지만 빛이 강하니 그림자는 제모습을 감추었다. 달이라도 휘영청 떠오르는 달밤에 영월루에 올라 달빛 그림자를 감상하면 선계와 극락이 따로 있겠는가. 아둔한 여행자의 눈에는 모든 것이 풍경으로만 보이니 우둔하기 그지없다.

극락암 전경

바람부는 뜨락에 햇살이 내린다. 햇살마저 바람에 쫓기는가 싶더니 삼소굴 앞에 이르러 잠시 숨을 내쉰다. '세 번 웃을 수 밖에 없는 삼소굴三笑窟'은 한국불교의 대표적인 선승인 경봉스님이 주석하신 곳이다. 세 번 웃으면 극락에 이른단 말인가. 도무지 알 수 없는 범인인 나도 혹여 하는 마음에 세 번 껄껄 웃어 본다. 누군가 보면 복면강도가 세 번 웃는 꼴이니 참 가관도 그런 가관이 없으리라.

삼소굴

아무렴 어떠한가. 추위에 웃고 나니 한결 마음이 극락에 가까워진 느낌이다. '왜 사냐고 물으면 그냥 웃지요.' 어릴적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던 시. 왜 그 시가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지... 철이 든 요즈음도 여전히 어렵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지만 그래도 마음은 움직인다.

수세전

극락전의 현판 아래에는 무량수각이라는 글이 씌여 있다. 노완이라는 호로 봐서는 추사이고 필적 또한 비슷하나 글씨에 문외한이 내가 봐서는 그 진위를 알 수가 없다. 돌확 위로 샘물이 솟는다. 목을 잠시 축이고 독성각으로 향했다. 극락전 뒤 대나무가 울타리를 이룬 외진 곳에 독성각이 있다. 스님은 간데 없고 주인없는 신발 한 짝만이 바람에 팽개쳐 있다. 외롭다.

극락전 무량수각

일순 바람이 한 차례 몰아친다. 바람은 같은 것이거늘 대숲과 솔숲에 부는 소리는 다르다. 다같은 사람 행색을 하고 있어도 그 성정은 다른것과 매한가지이리라. 무엇을 깨달았는지,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그저 바람이 부니 허망함만 밀려 온다. 암자에 오는 길은 여러 갈래지만 암자에서 이는 마음은 매한가지이다.

독성각 어느 스님의 신발

경봉스님이 계셨다면 여행자에게도 한말씀 던졌을까.
"극락에는 길이 없는데 어디로 왔느냐"
고 묻는다면 
"바람이 불더이다."
나는 그저 이 말 밖에 할 수 없겠다.
아니면 크게 세 번 껄껄 소리내어 웃을까.
범인들에겐 선승의 선문답이 어렵게만 느껴진다.
어쩌면 저마다 마음의 경계만 허물어도 저마다의 극락은 이미 와 있는 게 아닐까.


경봉鏡峰(1882~1982)스님은 이곳 극락암의 작은 전각 삼소굴三笑窟에 주석하면서 전국에 선풍을 떨쳤다. 그의 사형인 구하스님과 함께 지었다는 '통도사'라는 선시가 전해지고 있다.

영축산 천연의 성지
쉬어 간 이 그 몇인가
구름은 산 너머로 흘러가고
달은 솟아 동구에 떴네
맑은 눈빛은 바다처럼 푸른데
티끌세상 한갓 헛된 꿈일세
고금의 참 면목이여
벼랑 아래 물 언제나 맑게 흐르네


극락암은 통도사 뒤 산길로 가면 된다. 암자까지 이르는 포장도로가 있으나 산길을 한번 걸어보는 것도 의미있으리라. 극락암은 고려 충혜왕 2년인 1332년에 창건되어 1758년 철흥이 중건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