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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에 머물다

강화도 전등사의 깊어가는 가을

 

 

 

 

 

 

강화도 전등사의 깊어가는 가을

- 원숭이인가 싶었는데, 벌거벗은 여인이... 

 

오랜만에 강화도에 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한 20년 되었네요. 처음 강화도에 와서 놀랐던 건 남도의 섬과는 너무나 다른 땅의 생김새였습니다. 흔히 섬 하면 평지라고는 눈 씻고도 찾을 수 없는 첩첩 산중에 겨우 손바닥만 한 평평한 땅이 전부인데, 강화도는 교과서에서나 볼 법한 광활한 평야가 드넓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고려가 강화도에서 몽고군에 맞서 그렇게 오랫동안 버틸 수 있었던 것도 그 비옥한 농토 덕분이 아니었을까 하고 처음으로 현실감 있는 생각을 갖게 되었지요. 척박하리라 여겼던 섬에 대한 선입견은 이후에 진도에 갔을 때에도 그 기름진 땅을 보고 확실히 깨어져 나갔습니다.

 

 

이번에는 전등사만 들렀습니다. 전등사에 대한 기억은 그리 선명하지가 않군요. 정족산성이 있었다는 것과 조금은 휑한 듯 한갓지던 절 마당만 어렴풋이 떠올랐을 뿐이죠. 만추였습니다. 기억은 붉디붉은 단풍에 물들어 버렸고 절로 가는 마음도 그랬습니다.

 

 

입구부터 어수선했지요. 이곳에선 산성의 문이 절의 산문을 대신했습니다. 종해루라는 현판을 단 남문은 한창 수리 중이었습니다. 정족산성은 단군이 세 아들에게 성을 쌓게 하여 삼랑성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립니다. 성에 올라 성문 좌우로 산으로 달음질하는 구불구불한 성벽에 한참이나 눈길을 주었습니다. 자로 잰 듯한 반듯한 돌이 아닌 그냥 막 생긴 대로 쓴 성벽 돌이 너무나 친근하게 다가와서 말이지요.

 

 

전등사. 법을 전하는 절이라는 뜻이겠지요. 그 옛날 아도 화상이 전한 진리의 등불이 시공에 구애됨 없이 꺼지지 않고 전해지는 것이겠지요. 붓다는 ‘자등명 법등명’이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게 됩니다. 결국 자신을 등불 삼아 밝히고 법을 등불 삼아 밝히는 것이 불가의 뜻이니 절 이름의 유래야 무슨 상관이 있을까 하고 한 생각 쉬어 봅니다. 결국 바깥이 아닌 안에서 찾는 것, 바로 그것이겠지요.

 

 

산사라고 하기에는 무색하리만치 전등사는 몸살을 앓고 있는 듯했습니다. 사세도 제법 커진 것 같고요. 그러다 보니 예전에 없던 건물들이 이곳저곳에 생겨나서 산사의 고요함은 옛이야기에만 남은 듯합니다. 서울이 지척이니 이곳 또한 서울처럼 번잡하게 되어가는 것이겠지요.

 

 

대조루 누각 층계 아래서 한참이나 기다려서야 깊은 침묵을 담았습니다. 침묵은 이제 이런 산사에서조차도 쉬이 존재하지 않는 그 무엇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나부상

문득 대웅전 처마 밑을 보다 벌거벗은 여인을 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원숭이인가 했는데, ‘나부상裸婦像’이라는군요. 대웅전 네 귀퉁이에 각기 다른 손 모양을 하고 있어 법당을 빙 돌며 바라보다 절로 ‘까르르’ 웃게 되더군요.

 

 

시인 고은이 한때 이 절의 주지로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는 시에서 이 나부상을 이렇게 읊고 있습니다.

 

‘강화도 전등사는 거기 잘 있사옵니다./ 옛날 도편수께서/ 딴 사내와 달아난/ 온수리 술집 애인을 새겨/ 냅다 대웅전 추녀 끝에 새겨놓고/ 네 이년 세세생생/ 이렇게 벌 받으라고 한/ 그 저주가/ 어느덧 하이얀 사랑으로 바뀌어/ 흐드러진 갈대꽃 바람 가운데/ 까르르/ 까르르/ 서로 웃어대는 사랑으로 바뀌어/ 거기 잘 있사옵니다.’

 

 

여인이 어쩌다 목수를 배반하고 도망을 쳤는지는 모르겠으나 도망친 여인을 저렇게 벌거벗겨 무거운 추녀를 받치게 한 건 조금은 가혹하지 않나 싶습니다. 요즈음이라면 난리가 나겠지요. 물론 이 또한 해학으로 웃어넘기면 그만이겠지만요.

 

 

하여튼 대웅전은 그 고졸한 맛이 으뜸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사실 여행자의 눈길을 끈 건 번듯한 법당 건물도, 화려한 법당 내부의 불단과 닫집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기둥과 주춧돌이었습니다. 자연석인 주춧돌은 울퉁불퉁 제멋대로입니다. 그 못난 주춧돌을 전혀 다듬지 않고 대신 기둥을 주춧돌 모양에 맞추어 세웠습니다. 이것을 ‘그랭이’라 하는데요. 참으로 천연덕스럽고 자연스런 우리의 건축술이지요.

 

 

 

마침 사시마지라서 스님들이 분주하게 법당으로 향합니다. 사시인 오전 아홉시에서 열한 시 사이에 부처님께 밥을 올리는 예식이랍니다. 뜰에 서서 예불소리를 듣습니다. 마침 하늘이 개이고 날이 하도 청명하여 예불의 울림소리가 퍽이나 좋습니다. 어수선한 절집과는 달리 이곳이 정토임을 알겠습니다. 귀를 활짝 열어 반깁니다.

 

 

 

전등사에 오면 빠뜨릴 수 없는 정족사고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조선의 5대 사고라는 그 명성에다, 사고로 가는 오솔길과 장하게 자란 나무와 그 너머에 고즈넉이 자리하고 있는 전각과 전각에서 내려다보이는 강화도 앞바다 푸른 물결의 아름다움에 절로 감탄이 나오는 풍경입니다. 그 아름답고 서늘한 풍경에는 역시나 목은 이색의 시가 제격이다 싶습니다.

 

“ (…) 창틈으로 보인 산은 하늘에 닿았고/ 누각 아래 부는 바람 물결로 여울지네 (…)”

 

 

 

다시 대조루 주련에 달린 이색의 시를 마저 읽으며 깊어가는 전등사의 가을을 읊어 봅니다.

 

‘백 길 폭포 자락/ 엷은 구름은 바위 사이로 피어나고/ 외로운 달은 파도에 일렁인다/ 옷소매 자락에 동쪽 바다가 있고/ 영마루에 흰 구름도 가득하여라/ 푸른 산은 티끌 밖의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