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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옆 박물관

걱정이 앞서는 진주 이성자 미술관

 

 

 

걱정이 앞서는 진주 이성자 미술관

 

지난 주말, 이성자 미술관에 다녀왔다. 지난 7월에 개관해서 한번 가봐야지 하면서도 여태 미적거리다 모처럼 시간이 나서 미술관을 찾았다. 이성자 미술관은 김시민 대교를 지나서 진주 혁신도시에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공사)로 곧장 갔다가 길을 묻고 나서야 탑마트 뒤에 있는 미술관을 찾게 되었다.

 

 

미술관은 영천강변에 있었다. 비가 내린 뒤여서 그런지 한적한 미술관에는 두 무리의 사람들 대여섯 명이 있을 뿐이었다. 미술관 옆을 잔잔히 흐르는 강물이 퍽이나 고요했다.

 

 

1층 전시실 입구는 어둑했다. 뭔가 정리되지 않은 느낌. 안내소도, 관리인도, 안내인도 보이지 않는다. 조명마저 꺼져 있어 처음에는 휴관인 줄 알았다.

 

 

1전시실 입구의 현수막에 걸린 작가의 약력과 작품 세계에 대한 설명을 읽은 후 전시실로 들어갔다.

 

 

밖의 어둑어둑한 분위기와는 달리 안은 별세상이었다. 강렬한 색채가 시선을 끌었다.

 

 

제일 처음 본 건 '구성-누드'라는 작품이었다.

 

 

다음으로는 '진주'라는 작품이다. 그녀의 눈에 비친 진주의 모습. 추상적인 그림이라 짐작으로 고개만 주억거릴 뿐이었다.

 

 

추상적인 그녀의 작품은 처음 보는 이들에게 약간의 당혹감과 망설임을 준다. 그러나 그도 잠시 강렬한 색채의 마술에 온통 시선을 빼앗기게 된다. 그건 작품에 대한 이해도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종의 본능적인 몸의 반응이다.

 

 

 

이성자 화백은 “색동무늬 변환의 화가”로 불릴 만큼 색채가 강렬하면서도 밝고 화려하다.

 

 

그녀의 작품 세계는 2층 전시실에 갔을 때 더욱 뚜렷하게 각인되었다. 미술에 문외한이 봐도 절로 '아' 하며 그 강렬함에 혼을 빼앗길 정도다.

 

 

그녀의 작품 세계에 대한 평가로는 파리시립미술관장이었던 J. 라세뉴의 말이 인상적이다.

 

“이성자 씨는 자신의 동양적인 유산에서 나온 오묘한 성격을 그대로 간직한 채 서양미술의 흐름 속에 용기 있게 합류하는 본보기이다.”

 

 

여기서 잠깐, 이성자 화백에 대해 알아보자. 이성자 화백(1918~2009)은 한국보다 프랑스에서 더 유명하다. 그의 미술관이 있는 진주에서조차 아는 사람들이 드물 정도로 국내에서는 뒤늦게 알려졌다.

 

 

그녀는 진주에서 일신여자고등보통학교(현 진주여고)를 졸업하고 일본에서 대학을 나왔다. 1951년 가족들과 헤어진 뒤 파리로 건너가면서 본격적으로 미술을 공부했다.

 

 

김환기, 이응노 등과 함께 한국미술을 세계에 알린 그녀는 1991년 프랑스 정부 문화예술공로훈장(Chevalier)을 수상했고, 2002년에는 프랑스 정부 문화예술공로훈장(Officier)을 수상했다. 그리고 2009년에는 프랑스의 BNP 파리바그룹(BNP Paribas)이 후원하는 한불문화상과 대한민국 문화관광부가 수여하는 문화훈장을 받았다.

 

 

이성자는 구상과 추상이 어우러진 초창기, 1960년대 이후의 기하학적인 상징물, 말년의 인간과 우주의 존재론적 성찰을 주제로 작업했다.

 

이성자 미술관의 <은하수, 그곳에 꿈을 꾸다>는 그녀가 고향 진주에 기증한 376점의 유화, 판화, 수채화, 소묘 등의 작품에서 엄선하여 전시하고 있다.

 

 

관리인으로 보이는 여인이 인사를 한다. 자원봉사를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고 보니 미술 관련 유경험자 위주로 자원봉사자를 꾸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전문 인력 없이 운영되는 미술관의 부실함이 여실히 드러난다.

 

 

사실 이성자 미술관은 출발부터 삐꺽거리기 시작했다. 이성자 화백으로부터 기증받은 작품으로 미술관을 설립했으나 건물은 원래 미술관의 용도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 공원관리사무소를 개조한 것이다. 그래서 미술관의 구조적, 환경적 결함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것이다.

 

또한, 관장, 큐레이터 등의 전문 인력이 확보되지 않은 점도 문제다. 이성자기념사업회와 진주시가 갈등을 겪고 있는 부분도 이러한 점들 때문이다. 다행히도 진주시에서 보완을 약속했다고 하니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

 

 

미술관이 지역 깊숙이 들어와서 지역을 알려내고 지역민들의 문화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다. 그러나 미술관이나 박물관 등의 시설은 설립하는 것보다 어떻게 제대로 운영하는가가 더 관건이다.

 

일본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말을 깊이 새겨들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공시설의 진짜 문제는 건물이 완성된 이후에 나타난다. 그 건물을 어떻게 운영하여 지역 주민들의 생활 속에 살려 나갈 것인가. 즉, 건물의 쓰임새가 문제였다.”

 

 

아직은 많이 부족해서 걱정이 앞서는 이성자 미술관. 그럼에도 개선되리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앞으로 진주시와 미술관에서는 대표성을 가진 관장과 전문성을 갖춘 큐레이터 등의 인력을 확보하고 수준 있는 전시기획으로 살아 있는 문화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또한,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기획해서 지역 주민들의 문화공간이 되고, 미술과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미술관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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