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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에 머물다

지리산 산사의 비밀 숲길

 

 

 

 

 

 

지리산 천은사의 숨은 길

 

지리산 천은사는 화엄사의 유명세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은 고즈넉한 사찰이었다. 번다한 화엄사에 비해 깊은 고요가 있는 천은사는 마음 한 자락 내려놓는 산사였다. ‘고요히 앉아 궁구하고 있는 내 마음이 부처가 아니고 무엇인가’라는 깨달음이 절로 생기는 곳이었다.

 

 

한때는 천 명이 넘는 스님들이 있었다는 천은사는 인도 승려인 덕운 선사가 828년에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에는 경내에 이슬처럼 맑고 차가운 샘물이 있어 감로사라고 했다. 그런데 임진왜란 때 절이 불타고 중건할 때 샘가에 큰 구렁이가 자주 나타나 잡아 죽였더니 더 이상 샘이 솟아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샘이 숨었다 하여 천은사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절 이름을 바꾼 뒤에는 원인 모를 화재가 잦았다. 사람들은 절의 수기(水氣)를 지켜주는 뱀을 죽여서 그런 것이라며 두려워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조선 4대 명필 중의 한 사람인 원교 이광사가 ‘지리산 천은사’라는 글씨를 물 흐르듯 써서 걸었더니 이후로는 불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일주문 글씨를 보고 있노라면 구불구불한 글씨가 정말로 물이 흐르는 듯하다. 아니 , 물 흐르는 소리가 은은하게 들리는 것 같다.

 

 

부도전을 지나 일주문을 지난다. 일주문에는 원교 이광사가 썼다는 ‘지리산 천은사’ 글씨가 유려하다. 구불구불 흐르는 물줄기 같은 두 줄의 세로글씨는 문외한이 봐도 예사롭지 않다. 일주문을 지나자마자 오른편 층계를 올라 오솔길로 접어든다. 생태관찰로이다.

 

 

많은 이들이 천은사를 오가지만 이 길을 아는 이는 거의 없다. 이렇게 아름다운 길이 알려지지 않은 게 여행자로선 오히려 다행이다 싶다. 혼자 호젓한 길을 탐하는 것, 지나치지는 않으리라.

 

 

숨겨진 길은 천은사를 왼편에 끼고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깊이 침잠하는 길이다. 원시 숲의 청량함이 온몸으로 파고들고 맑은 새소리와 뺨을 스치는 바람이 부드럽기 그지없다.

 

 

수령 300년이 넘은 소나무 한 그루 너머로 천은사 경내가 보인다.

 

 

선방에 잠시 들렀다. 계곡가에 있는 선방은 천은사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이다. 그림자 없는 수행자 수월 선사의 체취가 느껴진다.

 

 

최근에는 템플 스테이로 일반인들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고요한 정적이 감싸는 적요한 곳, 묵직한 법당 너머로 계곡 물소리 법문이 들리는 선방은 적막하다.

 

 

이처럼 맑고 호젓했던 천은사는 근래에 입장료 문제로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곳이 되어 버렸다. 국립공원의 입장료 징수가 없어졌음에도 이곳에는 여전히 공원문화유산지구라는 명목으로 입장료를 받고 있다. 사유지의 무단 사용에 따른 사용료를 부과할 뿐이라는 사찰과 방관하고 있는 지자체 때문에 이곳을 지나는 애먼 시민들만 ‘통행세’를 내고 있다. 대승적인 이해와 지혜로운 해결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