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암자로 가는 길

암자에 놓인 고무신 한 켤레

 

 

 

 

암자에 놓인 고무신 한 켤레

-지리산 천은사 삼일암

 

지리산 천은사에는 모두 일곱 암자들이 있다. 종석대 아래의 유서 깊은 우번대와 상선암을 비롯하여 그 아래로 수도암, 도계암, 삼일암이 절의 오른쪽에 깃들어 있고, 사찰을 들어서서 왼쪽으로 돌아가면 감로암과 견성암이 있다. 오른쪽의 암자들이 깊은 산중이라 수행처로 제격이라면, 왼쪽의 두 암자는 산중의 여염집처럼 포근하고 편안하여 머물기에 좋다.

 

 

 

삼일암에 먼저 들르기로 했다. 그다지 길지도, 짧지도 않은 암자로 가는 길에서 ‘이야!’ 하며 짧은 탄성을 두어 번 지르게 된다. 도로 옆인데도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소나무들이 장관인 솔숲 때문에 한 번, 다음으로는 푸른 대숲 때문이다. 솔숲이 끝나자 이윽고 울울한 산죽 숲. 길은 터널처럼 뚫려 자연스레 암자로 이어진다. 처음의 솔숲이 외부로 향하는 풍경이라면 대숲은 내면의 소리를 들려준다.

 

 

 

암자는 양명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스님을 불렀으나 들려오는 건 졸졸졸 물소리뿐. 법당을 돌아 스님이 거처하는 곳을 찾으니 뒷마당에서 샘물이 쉼 없이 흘러나왔다. 다람쥐 한 마리가 인기척소리에 숲에서 뛰쳐나왔다.

 

 

 

텅 빈 암자에서 나는 또 묻는다. 지금 왜 여기에 왔는지를. 내가 암자를 찾는 것은 스님들의 말씀이나 가르침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다. 밖에서 오는 지식이 아니라 내 안에서 움트는 지혜가 필요해서다. 그저 텅 빈 암자에서 처음 한 생각을 지켜보아 마음을 살필 뿐이다.

 

 

 

빈 암자에 놓인 고무신 한 켤레를 보며 문득 법정 스님을 떠올렸다. 어느 날인가, 법정 스님은 청도 운문사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운문사를 다녀온 뒤 스님은 그곳의 섬돌 위에 놓여 있던 수백 켤레의 흰 고무신들이 인상 깊었다고 했다. 백 마디의 말보다 문 앞에 가지런히 놓인 신발 한 켤레가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것.

 

 

 

유태교 신비학파의 한 수도자가 ‘늙은 랍비를 찾아간 것은 그에게서 율법을 배우려는 것이 아니고, 다만 그가 신발 끈 매는 것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다는 고백처럼…. 죽은 경전이 아니라 살아 있는 실천된 삶을 보고자 함이었으리라.

 

 

 

산길로 도계암을 갈까 하다 이내 발길을 돌렸다. 숲이 하도 울창해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여전히 두려움이 남아 있어 완전한 자유를 얻지 못하는 미덥지 못한 자신을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