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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로 가는 길

세상 어디에도 없을 기이한 모과나무 기둥

 

 

 

 

세상 어디에도 없을 기이한 모과나무 기둥

[김천령의 지리산 오지암자 기행㉑〕파격과 자연의 맛, 구층암

 

지리산의 대찰 화엄사는 늘 붐빈다. 사람들은 먼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목조건물인 각황전에 경탄하고, 별스런 사사자삼층석탑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자신의 키를 훌쩍 넘은 엄청난 크기의 석등에 감탄을 쏟아낸다. 조금 관심 있는 이라면 각황전 활주와 처마가 만들어낸 곡선에 탄성을 지르고, 대웅전 벽면의 희귀한 가새표를 보고 고개를 주억거린다. 각황전 옆 홍매화는 또 어떤가. 봄이면 붉다 못해 검은 홍매화에 잠시 정신을 잃었다가 짙은 동백 숲 붉은 송이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구층암 대숲 오솔길

 

화엄사의 풍경이 이토록 장엄해서일까. 지금이야 무슨 세트장 같은 경내가 생경스럽지만 그래도 대찰의 위용은 여전하여 사시사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화엄세계가 바로 이곳에서 펼쳐지니 저마다 작은 우주를 가진 꽃들의 축제가 벌어지는 곳이 바로 화엄사이다.

 

 구층암

 

이토록 번잡한 화엄사도 몇 발자국 벗어나면 고요함이 충만한 정토요, 신선의 땅이다. 바로 암자로 가는 길이 있어서다. 화엄사 뒤에는 구층암, 길상암, 봉천암 등이 있고, 멀리 구불구불 산 깊은 곳에 연기암을 비롯해 십여 개의 암자가 듬성듬성 피어난 봄꽃처럼 숲속에 자리하고 있다.

 

 

그중 구층암은 대웅전 뒤를 돌아가면 곧장 대숲이 길을 이끄는 곳에 있다. 예전에는 계곡가로 바짝 붙은 절집 담장을 따라가다 계곡의 징검다리를 건너면 어둑어둑한 대숲이 있었다. 대숲 사이로 난 오솔길을 고개 숙여 지그재그로 오르다 보면 어둡던 미로가 갑자가 환해지며 고즈넉한 암자가 모습을 드러내곤 했었다. 지금이야 방문객의 편리를 좇아 암자로 가는 길이 대책 없이 넓어져서 긴장미와 기대감이 없어져 걷는 재미마저 없어졌지만 말이다.

 

어쨌든 암자마당에 들어서면 이끼 낀 불완전한 석탑이 고졸한 멋을 자아낸다. 석탑의 배경이 되는 승방은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어 오래된 연륜을 보여준다. 원래 구층이었을 지도 모를 이 석탑을 보며 암자의 이름을 연상해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볕이 잘 드는 암자에 우뚝 솟은 구층의 석탑은 그 자체로 밝은 화엄의 세상이었을 것이다. 석탑과 건물이 빚어내는 묘한 앙상블. 사실 불교에서 ‘구(九’)는 그 형상의 낱낱을 세는 수가 아니라 완성이자 출발, 영원을 상징하는 숫자이다. 영원을 어떻게 셈할 수 있을까. 영원의 관념은 이미 탑의 형상을 넘어서는 상상이다.

 

 천불전

 

천불전의 토끼와 거북이

건물의 상방에는 사자가 조각되어 있다. 건물을 돌아 안마당으로 들어서서 천불전에 이르면 토끼를 엎고 있는 거북과 마주치게 된다. 거북과 토끼는 천불전 처마 아래 양 옆에 한 쌍씩 있고 기둥 사이에는 용머리가 있다. 이는 천불전이 불국정토로 가는 반야용선이자 반야귀선임을 넌지시 말하고 있다.

 

 천불전의 토끼와 거북이

 

불교에서 토끼와 거북이는 상징하는 바가 크다. 토끼와 거북은 흔히 그림이나 조각으로 법당의 문이나 평방, 벽면 등에 장식되어 있다.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는 사실 인도에 뿌리를 둔 붓다의 전생을 다룬 ‘본생담(本生譚, 자타카)’이라는 불전설화다. 다만 인도설화에서는 원숭이와 악어가 등장하고, 물에 사는 악어 아내가 원숭이의 간을 먹고 싶어 한다는 내용이다. 이 인도설화가 중국에 들어와서는 원숭이와 자라, 혹은 원숭이와 용으로 변했다가 다시 우리나라에 전해지면서 토끼와 거북이로 바뀌었다.

 

 

<삼국사기> ‘권 제41 열전 제1 김유신 상(上’)을 보면 토끼와 거북의 이야기에 대한 최초의 기록인 ‘귀토지설(龜兎之說)’이 있다. 선덕대왕 때 김춘추의 딸이 대량주(경남 합천)에서 백제군에게 희생당한 남편을 따라 죽자 김춘추는 그 원한을 갚고자 고구려에 군대를 청하러 갔다. 처음에는 김춘추를 융숭히 대접하던 고구려왕이 주위의 간언에 신라가 차지한 고구려의 옛 땅을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자 김춘추는 일언지하에 거절하게 된다. 이에 고구려왕이 대노하여 김춘추를 가두고 죽이려 하자 위험에 빠진 김춘추는 왕이 총애하는 신하인 선도해에게 푸른 베 3백 보를 은밀히 선물한다. 선도해는 술자리를 빌어 거북과 토끼의 이야기를 했고 김춘추는 간을 두고 왔다며 거북이를 속인 토끼처럼 자신이 신라로 돌아가면 왕에게 청해 고구려의 옛 땅을 돌려주겠다며 기지를 발휘하여 무사히 고구려를 탈출하게 된다.

 

 

 

설화에서 토끼와 거북이가 향하는 곳은 용궁이다. 그러니 토끼와 거북이가 있는 건물은 바로 용궁, 바다 속 불국토인 셈이다. 그럼, 용궁은 어디에 있을까. 불교에서 파도가 잠든 깊은 바다, 흔들림 없는 심연의 세계를 곧 해인이라 한다. 번뇌가 사라진 마음의 바다. 이 해인삼매의 바다 속에 불국정토 용궁이 있다.

 

이때 사바세계에서 피안의 정토 용궁으로 가는 배는 반야용선이다. 이곳 천불전에도 선수인 용머리가 있어 법당이 반야용선임을 상징한다. 이 반야용선처럼 토끼와 거북이가 타는 반야귀선도 불국토인 용궁으로 가는 인도자이자 탈 것의 상징이다. 그 이상향으로 가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이 토끼와 거북이로 표현된 것이다.

 

 모과나무 기둥

 

승방의 모과나무 기둥

구층암에서 유심히 봐야 할 승방 건물이 있다. 건물의 생김새도 여간 재미있는 게 아니다. 모두 일곱 칸인 일자의 긴 건물은 좌우로 긴 마루를 두고 문을 내었다. 즉 석탑이 있는 바깥마당에도 문과 마루가 나 있고 천불전이 있는 안마당 쪽으로도 문과 마루가 있어 어디서든 출입이 자유롭다. 가운데 방을 두고 양쪽으로 문과 마루를 낸 특이한 건물인 것이다.

 

 모과나무 기둥

 

그뿐만이 아니다. 이 승방에는 구층암을 대표하는 특이한 구조물이 있다. 모과나무 기둥이다. 직접 보고나면 그 기이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어떠한 인위적인 조작도 없이 살아 있던 모습 그대로의 나무를 기둥으로 삼고 그 위에 서까래와 지붕을 얹어 집을 지었다. 나무의 생김새대로 천연덕스러운 기둥을 삼은 것은 서산 개심사 종루나 안성 청룡사 대웅전 등 우리 옛 건축에서 종종 볼 수 있지만 기본적인 대패질조차 하지 않은 채, 최소한의 손질도 하지 않은 채 기둥으로 쓴 그 무심의 경지에 놀라지 않을 이 없을 것이다. 죽은 모과나무를 그대로 쓴 목수의 안목도 능청스럽지만 그를 허락한 스님의 안목도 얼마나 통 큰 것인가.

 

 한 프랑스인이 그린 모과나무 기둥

 

모과나무를 건드리지 않고 생긴 모양 그대로 창방과 마루턱을 맞들고, 가지가 갈라진 데는 갈라진 대로, 골과 결이 파인 곳은 파인 대로 두었다. 모과나무 기둥이 짧은 맞은편 승방 기둥은 주춧돌 위에 깎은 기둥을 세워 그 위에 모과나무 기둥을 얹어 놓았다.

 

 산 모과나무와 모과나무 기둥

 

대체 이 모과나무를 그대로 쓴 스님은 어떤 생각이었을까. 문득 경허 선사의 일화가 떠오른다. 계룡산 동학사 법회에서 당대의 학승 진암 스님이 “나무는 비뚤어지지 않고 곧아야 쓸모가 있으며, 그릇도 찌그러지지 아니하고 반듯한 그릇이라야 쓸모가 있다.”고 설법을 하자 우연히 그 자리에 들른 경허 선사가 일갈을 했다. “비뚤어진 나무는 비뚤어진 대로 쓰고, 찌그러진 그릇은 찌그러진 대로 쓰면 된다.” 모든 것에 불성이 있으니 밖으로 드러난 것은 상에 불과하리라. 어찌 보면 형태에 집착하는 걸 단박에 깨버린 것이 이 구층암 모과나무 기둥인 듯싶다.

 

                            ▲  산 모과나무와 모과나무 기둥

 

지금도 천불전 오르는 화단에는 살아 있는 모과나무가 있다. 이 나무 또한 언젠가 법당의 기둥으로 쓰이려 자신의 몸뚱이를 소신공양할 것이다. 언젠가 기둥이 될 자신의 운명을 뻔히 알면서도 모과나무는 오늘도 묵묵히 자신만의 방식으로 제 몸을 키운다. 살아서는 꽃과 열매를, 죽어서는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기둥이 되니 세상에서의 쓸모란 이처럼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젠 꽃을 피우고 잎이 나고 열매를 맺는 자연의 생명은 모과나무 기둥에서 사라졌다. 대신 모과나무는 자신의 몸을 보시하여 영원한 생명을 갖게 되었다. 여느 모과나무처럼 평범하게 조용히 생을 마감할 수 있는 길을 버리고 스스로를 불태운 등신불처럼 영원히 사는 길을 택한 것이다. 기둥감으로 별 가치가 없는 모과나무를 재목으로 쓴 것은 어찌 보면 화엄의 세계로 들어가는 시작이자 완성일 지도 모르겠다. 결국 구층암은 파격과 자연의 맛을 그대로 살린 암자인 셈이다.

 

 다향사류

 

“거기 카메라 멘 처사님도 들어오시지요.”

 

스님이 부른다. 다향사류(茶香四流). 차향이 사방으로 흐른다. 승방에는 이미 차가 끓고 있다. 앞서 길상암의 명곤 스님이 암자 뒤 차밭에 가보라고 했었다. 이미 해가 떨어져 갈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는데 다행히 차 맛을 볼 수 있는 걸 위안으로 삼는다.

 

 다향사류

 

덕제 스님은 익숙한 듯 차를 내어준다. 차손님들이 빙 둘러 앉아 차 한 잔씩을 마신다. 꽤 특이한 차 주전자에 일제히 눈길이 쏠렸다. 어디서 구했는지, 얼마나 하는지 누군가 물었고 스님은 잠잠히 차에 대한 이야기를 할 뿐이다. 차가 떫은 것은 차나무를 반듯하게 키운다고 가지치기를 해서 스트레스를 받아서이고, 지금 마시는 차는 야생 그대로 키운 거라 떫은맛이 없을 것이고, 일단 차 맛은 목 넘김이 좋아야 하고, 침이 생기면 좋지 않고, 단맛이 나야 하며, 차는 뜨거울 때 마셔야 된다는 것이었다.

 

화엄사 각황전 뒤 언덕 석탑에는 차공양상이 있다. 이 일대에 오래된 차향이 있었음이다. 구층암의 차는 죽로야생차, 대나무 그늘 아래서 이슬을 맞고 자란다. 가물어도 걱정이 없는 이곳의 차는 어느 때고 고른 차 맛을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층암

 

 ‘차나 한잔 마시게’, 끽다거(喫茶去)

 

중국의 유명한 선승 조주(778~897) 선사는 수행승들이 오면 언제나 “자네, 혹 이곳에 와 본 적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처음이라 와 본 적이 없다고 답하면 “그래, 그럼 차나 한잔 마시게(喫茶去).”하고 이미 와 본 적이 있다고 해도 “그래, 그럼 차나 한잔 마시게(喫茶去).”라고 했다.

 

이를 본 절 살림을 맡고 있던 원주 스님이 처음 왔던 수행승이나, 이미 와 봤던 수행승에게도 차나 한잔 마시라고 하는 것은 모순이 아니냐고 따졌더니 조주 선사가 원주 스님을 불렀다. 원주스님이 “예.” 하고 대답을 하니 조주 선사는 “자네도 차나 한잔 마시게.”라고 했다.

 

차를 마시는 일이 다반사인 것처럼 선 또한 일상 속에 있다는 뜻일 것이다. 아니면 ‘이곳에 와 본 적이 있는가?’라고 물었을 때 ‘있다’ 혹은 ‘없다’고 답했으니 이미 ‘유(有)’와 ‘무(無)’에 떨어졌다 보고 정신차려라는 의미에서 ‘차나 한잔 마시게.’라고 했을 것이다. 이럴 때에는 침묵이 답이 아닐까. 그냥 마음으로 차를 마실 뿐이다. 그냥 무심히 마시는 차 한 잔이야말로 깨달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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