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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로 가는 길

하늘이 감춘 암자, 지리산 묘향대

 

 

 

 

 

 

선승들이 평생 꼭 한번 가보길 바랐다는 이곳!

[김천령의 지리산 오지암자 기행⑮〕하늘이 감춘 땅, 묘향대

 

금지선을 넘는다.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는 것은 무엇인가. 금해야 할 것을 금할 줄 알고 금지되지 않은 것에 묶이지 않는 바른 견해를 가지는 것이다. 금지되지 않은 것을 금지되었다 여기고 진정으로 금해야 할 것은 금하지 않는 삿된 소견에 사로잡힐 것인가.

 

 

반야봉을 넘어 중봉으로 향했다. 선승들도 일생에 꼭 한번 와보길 바랐다는 지리산 묘향대. 전설로만 들리던 그 암자를 찾아 나섰다. 몇 년을 마음에 두고 손꼽아 고대했던가. 그러나 마음만큼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도솔암 정견 스님과 훗날 가볼 것을 기약했지만 무슨 마음엔지 결국 혼자 길을 나서고 말았다. 스님은 혼자 가는 길이니 조심 또 조심하라는 말씀만 남겼다.

 

 

하늘이 감춘 땅

 

운해, 구름바다였다. 날이 새기도 전에 노고단 산장을 출발했다. 새벽 운해가 운수납자의 길을 밝힌다. 지리산이 가장 지리산다운 동틀 무렵. 흐르는 구름처럼 스승을 찾아 이곳저곳을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출가자의 마음으로 오지 암자를 찾아 나섰다. 두려움과 설렘, 만감이 교차했다.

 

 

노고단에서 능선을 따라 걷는다. 돼지평전, 임걸령을 지나 노루목에서 반야봉을 오른다. 능선에서 보이는 풍경은 온통 구름바다다. 저 구름 어딘가에는 전설 속의 암자.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아니 하늘도 감춘 땅 묘향대가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능선에서 지리산 속으로 들어갔다.

 

 

중봉까지는 예사였다. 곧이어 직벽에 가까운 낭떠러지로 길이 이어졌다. 새들만 겨우 다녔을 오솔길은 자칫 한눈팔아 헛디디면 금방 천길 아래로 꼬꾸라질 위험천만한 길이었다. 머리털이 주뼛주뼛 곤두서는 긴장감으로 몸은 이미 땀범벅이 되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번에는 무서운 정적이 흐른다. 허공을 가르는 날카로운 까마귀 울음소리. 그러곤 다시 침묵… 바람마저 숨을 죽인다. 이 광대한 원시림 속에 나 혼자 있다. 나는 왜 이곳에 왔는가. 여긴 어디일까.

 

 

길은 점점 미궁이다. 희미한 오솔길마저 풍도목이 가려버렸다. 두 눈을 부릅뜨지 않으면 길은 이내 사라지고 만다. 회색 바위와 거무튀튀한 고목에 핀 푸른 이끼들, 덩굴로 뒤섞인 원시림엔 태초의 괴기함마저 서렸다. 사람 하나 만날 수 없는 이 고립무원의 산길을 홀로 걷는다는 건, 애초 각오는 했지만, 분명 예측할 수 없는 두려운 길이었다. 오지 중의 오지라고 짐작은 했지만 이토록 외진 곳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하루 같은 한 시간이 흘렀을 무렵, 험하기만 했던 길이 다시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싱싱한 풀들이 동화 속 그림처럼 가르마 가르듯 길을 나뉜다. 바람도 멈추었다. 따스한 햇볕이 원시의 숲 깊숙이 들어왔다. 직감적으로 암자가 가까워졌음을 알았다. 아련한 꿈속인 듯 숲 사이로 집 한 채가 보였다.

 

중년의 사내가 절벽에서 외줄을 타고 있다. 족히 50미터는 될 뒤쪽 벼랑과 앞쪽에 장하게 자란 전나무에 튼실한 줄을 매달았다. 그 줄 하나에 의지해 수염을 기른 중년의 산사람이 허공을 걸어 암자의 지붕을 칠하고 있었다.

 

 

스님에게 물었다

 

“스님! 스님!”

몇 번을 불러도 대답이 없다. 지붕 위의 사내가 분명 스님이 있다고 했는데 농을 친 건가. 법당에 들어서서 예배를 올렸다. 역시 스님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암자나 둘러볼 요량으로 건물 뒤를 돌아갔더니 우물가에 스님이 있었다.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했을까. 나중에 기와불사나 해야겠다 싶어 법당 마루에 앉아 날짜를 적다 혼잣말로 ‘오늘이 며칠이지’ 중얼거렸을 뿐인데, 저 멀리 마당 끝에 있던 스님이 “25일요.” 하고 외치는 게 아닌가.

 

 

호림 스님은 2004년 묘향대에 왔다. 올해로 꼭 10년째다. 이곳에 지금의 암자가 들어선 지는 70년대 중반 도장 스님 때였다.

“예전부터 이곳은 수행처로 알려졌던 모양입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고승들이 오고가며 이곳에서 수행을 했겠지요. 정확한 건 150년 전에 개운 스님이 이곳에 머물렀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스님이 지은 <능엄경> 부록(주석서)에 보면 묘향대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어요.”

 

 

벼랑 끝으로 참선하기에 좋을 큼직한 바위가 놓여 있다. 바위 위에는 고사목을 깎아 얹어놓았다. 볕이 좋아서인지 그 위에 이불을 널었다.

“스님, 저기 좌선대 아닌가요?”

“좌선대는요, 무슨. 아닙니다.”

사람이 앉아 참선할 곳으로 보이는데, 그냥 이불을 널어 두었다. 볕이 좋으니 좌선대조차 건조대가 된다. 바람이라도 불면 벼랑 아래로 이불 한 장 떨어질 뿐, 단지 그뿐….

 

 

마당 끝 바윗돌에 잠시 앉았다. 스님도 객도 먼 허공을 바라보았다. 간간히 주고받는 몇 마디 말뿐, 모든 것은 침묵 속에 있었다. 앞쪽 봉우리가 토끼봉이다. 대개 지리산의 이름난 암자들은 천왕봉을 바라보고 있듯, 역시나 이곳에서도 늠름한 천왕봉이 저 멀리 우뚝 솟아 있다. 촛대봉, 명선봉… 능선 봉우리들이 병풍을 두르듯 동남향인 암자를 멀찍이서 둘러싸고 있다.

 

“예전에는 스님들이 이곳에 서로 오려고 했지요. 수행하기에 이만한 곳이 있었겠습니까. 근데 지금은 아무도 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먼저 씻는 것부터 불편하니까요. 예전에는 누구나 걸어 다녔으니 이곳에 오는 것도 어렵지 않은 일인데, 요즈음은 차로 편하게 다니는 세상이니 하루 꼬박 걸리는 이런 험한 오지를 누가 오려고 하겠어요.”

 

 

산중에 홀로 피는 꽃

 

몇 마디 말이 끊기자 긴 침묵이 흘렀다. 묻고 싶었다. 가장 고립된 땅, 세상과 단절된 이곳에서 스님이 이룰 것은 무엇인가. 개인의 깨달음인가. 이런 곳에서 십수 년을 버텨낸다는 것 자체로도 세인들의 눈에는 경이롭게 보이겠지만 중생을 구제한다는 대승의 입장에서도 과연 그럴까. 결국 고요한 곳에서 자연을 벗 삼아 생을 사는 자연인과 안빈낙도의 삶을 사는 유가와 도가의 도인들과 무슨 차이란 말인가. 붓다의 시대에도 이런 의문을 가졌던 이가 있었던 모양이다.

 

 

붓다가 기원정사에 있을 때 상가라바라는 바라문이 찾아왔다. 자신들은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희생을 바쳐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다함께 행복하게 하는데, 붓다의 제자들은 자기 한 몸의 행복만을 위해 도를 닦을 뿐이 아닌가 하고 질문했다. 이에 붓다는 여래가 도의 실천을 완성하여 번뇌가 사라지고 해탈을 얻고 난 후, 여래가 설한 결과 다른 사람들도 수행하여 해탈을 얻는 이가 수백․수천․수만에 이르렀다면 과연 한 사람만을 위한 행복의 길이겠는가 하고 반문했다.

 

자기에게 전념하고 자기의 깊은 내부를 들여다보는 수행방식은 얼핏 보기에 다른 이들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사람이란 자기의 내부에 깊이 침잠했을 때 비로소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대승불교에서는 먼저 ‘상구보리(上求菩提)’의 ‘자리(自利)’로 진리를 확고히 한 다음에 남을 구제하는 ‘하화중생(下化衆生)’의 ‘이타(利他)’행을 실천하는 것을 붓다의 뜻으로 보고 있다. 붓다도 처음 그 자신의 인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출가했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출가는 많은 사람들을 구제한 셈이 되었다. 결국 상구보리의 길이 하화중생의 길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산중 꽃은 저 혼자 피지만 그 꽃향기는 산 아래로 흐른다고 하지 않은가.

 

 

 

떠나야 할 시간. 스님이 해우소 옆길을 가리킨다. 화개재로 가는 길이다. 화개재와 뱀사골로 가는 길을 두고 잠시 망설였다. 화개재로 가는 길은 편하겠지만 여행자는 뱀사골로 내려가는 길을 택했다. 스님은 쉽지 않은 길, 혼자 가는 길이니 부디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한 평 남짓한 스님의 채마밭 사이로 희미하게 길이 보였다.

 

 

두 시간 남짓 절벽을 타고, 길 아닌 길을 더듬은 끝에 계곡에 이르렀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해거름이 내려앉은 건너편 산을 바라본다. 이미 잎을 떨군 앙상한 나뭇가지, 그 사이로 단풍이 보인다. 미혹한 눈으로 보니 이쪽은 무색계, 저쪽은 색계다. 색, 이 또한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 아닌가. 색은 그 자체로 색이 아니다. 마음으로 생긴 것이 색이고, 마음과 색에 모두 색이 없으니 이것이 무색계이다.

 

잠시 쉬었는데 추위가 몰려온다. 계곡 옆 희미한 길을 따라갔으나 벼랑에서 길이 끊겼다. 천지를 요동치는 폭포수 소리만 귀청을 때린다. 이쪽, 저쪽, 위, 아래, 샅샅이 뒤져도 길이 없다. 길을 잃었다. 다리가 풀린 지는 이미 오래. 한 시각을 헤맸지만 길을 찾을 수 없었다. 지리산을 번질나게 다녔지만 처음으로 겁이 덜컥 났다. 한 시각쯤 흘렀을까. 저 위에서 인기척이 났다. 산사람이었다. 날다람쥐처럼 걷는 그를 따라 겨우 원시의 숲을 벗어날 수 있었다. 뱀사골에 닿았을 때는 이미 어둑해진 지 오래였다.

 

 

 

 

묘향대와 함박골

 

지리산 묘향대는 화엄사에 속한 암자이다. 오지 중의 오지로 해발 1500미터에 있다. 1200미터에 있는 설악산 봉정암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어 우리나라 암자 중에서는 가장 높은 곳에 있다. 예부터 선승들은 북에는 묘향산 법왕대를, 남에는 지리산 묘향대를 꼽았다고 한다.

묘향(妙香)은 <아함경>에 나오는 말로 불교용어로 ‘기이한 향기(奇香)’를 말한다. 묘향에는 다문향(多聞香), 계향(戒香), 시향(施香)이 있다. 이 향은 바람을 거슬러 냄새를 풍긴다고 한다. 자신을 불태워 세상을 정화하는 보살의 정신. 세상의 논리를 거슬러 부처님의 바른 향기(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묘향대와 뱀사골 사이의 폭포수골과 함박골 일대는 빨치산이 활동했을 정도로 험지였다. 전남도당위원장 박영발과 전북도당 위원장 방준표가 이곳을 근거지로 군경과 대치했다. 박영발은 폭포수골 바위 비트에 숨어 있다 폭사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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