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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로 가는 길

전기도 없는 스님의 공양간, 깜놀!

 

 

 

 

살림 100단인 주부도 놀랄 스님의 공양간

 

                           ▲ 도솔암 가는 길

 

스님에게서 카톡이 왔다. 어쩐 일이지, 하다가 이내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이럴 수가! 스님이 계신 곳은 해발 1200고지 지리산 오지암자. 게다가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곳인데 카톡이라니. 잠시 어리둥절해서 메시지를 살피고 있다가 일단 본능적으로 안부를 먼저 전했다.

 

                           ▲ 도솔암 가는 길

 

그러곤 잊고 있었는데, 며칠 뒤 스님은 한밤중 지리산의 달 사진을 보내왔다. 지리산의 기운이 가득한 사진에는 사방이 캄캄했고 쟁반처럼 큰 달이 떠 있었다. 어떻게 카톡을 보낸 걸까. 스마트폰을 장만한 걸까. 스님이 갖고 있는 건, 전화만 간신히 되는 2G폰이었다. 작은 태양열충전기로 겨우 휴대폰 배터리를 충전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여쭤볼까 하다가 이내 생각을 접었다. 안 뵌 지도 오래되었으니 조만간에 찾아뵙고 직접 여쭤야겠다고 생각했다.

 

 

“거, 과일이나 좀 사오시오.”

암자로 가던 날 아침, 스님께 전화를 했다. 뭐 산중에 별스럽게 필요한 게 있겠느냐며 마지막에 지나는 말로 툭 던졌다. 사과 일곱 개, 배 다섯 개를 넣은 배낭은 제법 묵직했다. 스님 과일 드시게 하려다 나 죽게 생겼군, 하는 엄살이 나중 암자를 오를 때 순간 들 정도로 무겁긴 했다.

 

 ▲ 도솔암 가는 길

 

온산이 가을이다. 단풍이 20일쯤에 좋을 거라 스님이 귀띔을 했건만 아직 산 전체가 붉지는 않았다. 산속은 이미 초겨울의 쌀랑한 날씨였지만 가을은 더디 오고 있었다. 도솔암 가는 길은 이번이 두 번째, 당연히 스님을 뵙는 것도 두 번째인데 마치 오랜 벗을 만나러 가는 것처럼 설렜다.

 

   ▲ 도솔암 가는 길

 

                           ▲ 도솔암 가는 길

 

그러나 암자엔 스님은 없었다. 스님, 스님, 몇 번을 불렀지만 대답이 없다. 삼소굴에도 법당에도 인기척이 없다. 짐을 풀고 법당 문을 열려는 찰나, 전화벨이 울렸다.

 

 ▲ 도솔암

 

“나 여기 마천이요. 손님이 와서 급히 산을 내려왔는데, 어쩔까요. 늦을 것 같으니 마천에서 한 번 봅시다. 좀 쉬었다가 내려오시오. 꼭요. 얼굴이나 한번 봅시다.”

 

  ▲ 도솔암

 

바람 같다. 언제 산을 내려갔단 말인가. 배낭을 내려놓고 요기할 걸 꺼냈다. 허기가 져서 과일이나 깎아 먹을 요량으로 공양간으로 갔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공양간은 장작을 때느라 사방 벽과 천장에 그을음이 시커멓게 붙어 있었다.

 

 

땅에서 허리께 내려가는 공양간은 정갈했다. 잘 닦여 반들반들 윤기가 나는 무쇠 솥은 깨끗하게 빤 행주에 덮여 있었다. 오래된 냄비와 주전자 등 각종 식기구들이 하나같이 깨끗하니 잘 정돈되어 있다. 찬장과 수납공간에도 빈틈이 없다. 음식을 해주는 공양주 보살도 없이 비구 스님 혼자 공양을 해결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부뚜막과 선반, 바닥에도 티끌 하나 없다.

 

  ▲ 스님의 공양간

 

살림 100단인 주부가 봐도 혀를 내두를 정도겠다. 잘 정리된 공양간을 보니 투박한 외모와는 다른 평소 스님의 성정을 알 것 같다. 나중에 청매암에서 만났을 때 정견 스님은 지저분한 건 못 보는 성격이라고 했다. 하나같이 오래되어 낡았음에도 전혀 비루하지 않고,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은 정갈함을 공양간에서 읽을 수 있었다.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다루지 않는 그야말로 담박한 스님의 삶이 공양간에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사과 하나와 공양간에서 들고 나온 과도를 들고 암자 마당 끝의 바위에 걸터앉았다. 천왕봉을 위시한 지리능선이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이다. 이곳에서 과일을 먹으니 선과가 따로 없다.

 

 

마당을 거닐었다. 산속이라 해는 금방 떨어지기 시작했다. 암자 뜰에 산 그림자가 냉큼 들어왔다. 어둠 속에서 하늘은 더 파랬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가을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다. 이곳 도솔암에 머물렀던 청매 인오 스님의 시 한 수를 떠올렸다.

 

 

구름 다한 가을 하늘 둥근 거울이여 / 외기러기 날아가며 흔적을 남기는구나 / 남양의 저 노인네 이 소식을 알았으니 / 천 리 동풍에 말없이 통하네

 

                           ▲ 도솔암에서는 천왕봉과 지리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 삼소굴 방안에서 본 천왕봉과 지리능선

 

  ▲ 해발 1200고지 도솔암에서는 파노라맢처럼 펼쳐진 천왕봉과 장쾌한 지리능선을 볼 수 있다.

 

남양의 노인은 혜충 선사를 이름이다. 중국의 유명한 선승 마조 도일 선사가 하루는 동그라미(일원상)를 그려 경산 도흠 선사에게 보냈다. 이를 받아본 도흠은 동그라미 가운데에 점을 하나 찍어 마조에게 되돌려 보냈다. 남양 혜충이 이 이야기를 듣고 “음, 도흠이 마조의 속임수에 그만 넘어갔구나.” 하였다. 구름 한 점 없는 가을 하늘을 보고 그 옛날 당대를 주름잡던 선승 마조, 도흠, 혜충 선사들의 일화를 읊은 것이리라. 둥근 거울은 마조가 그린 일원상이고 외기러기는 도흠이 찍은 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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