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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로 가는 길

이곳에 오니, 해우소도 그림 같구나!

 

 

 

 

이곳에 오니, 해우소도 그림 같구나!

[김천령의 지리산 오지암자 기행⑤] 칠암자 순례길, 삼불사

 

‘이곳은 삼불사.’ 스님의 글씨일까? 하얗게 쓴 글씨. 돌층계 입구 나무둥치에 올려 둔 작은 푯말. 그 옆으로는 문수암과 약수암, 마을길을 가리키는 작은 푯말들이 아무렇지 않게 널브러져 있다. 무심한 자연에 무심히 남긴 흔적이다.

 

 

기다란 돌층계, 산중에 이런 수고로운 돌길이 놓이다니. 한 층 한 층 쌓아 올린 돌층계는 이곳이 암자가 아니라 절이라는 걸 애써 강조하는 것일까. 오랜 감나무 한 그루가 사천왕상인 양 위엄 있게 절을 지키고 있다. 절 마당 가득 봄빛이 넘치고 넘쳤다. 마당 끝으론 평상 하나를 두어 나그네의 여로를 풀어준다.

 

 

 

해우소마저 그림이 되는 곳

적막했다. 바람도 숨을 멈췄다. 삼불사는 지나온 상무주암, 문수암과는 달리 조금은 큰 규모다. 법당을 중심으로 뒤로는 산신각이, 앞으로는 탑과 석등이 놓여 있다. 조금 떨어진 아래에는 요사채로 보이는 건물이 한 채 있고, 온통 녹색 칠을 한 함석으로 지은 해우소가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볼썽사나울 수도 있는 건물이 이곳에선 그마저도 그림이 된다. 작은 텃밭의 푸성귀도 녹색을 닮았다.

 

 

 

인기척이 없다. 법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안을 흘깃 보니 비구니 스님 한 분이 마루에 앉아 가만히 나물을 다듬고 계신다. 그 무심함을 깨뜨릴 수 없어 한참을 서성거렸다. 모든 것은 멈췄고, 그 정적 속으로 봄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아주 느리게 침묵을 지키며. 그러기를 한참, 조심스럽게 스님에게 길을 물었다. 그제야 무거운 침묵을 깨고 스님이 차를 한 잔 건넸다. 다듬는 나물은 제피(초피)이고 차는 약식혜란다. 약간 싸한 맛이 입안을 감돌더니 목덜미를 시원하게 훑고 내려갔다. 초파일에 남은 밥에다 약재를 넣어 만든 것이라고 했다.

 

 

법당 외벽에는 아주 작은 메모가 붙어 있었다. ‘쌀, 밑반찬, 소금 주고 가시면 고맙겠습니다.’ 배낭을 뒤졌으나 텅텅 비어 있었다. ‘쌀이라도 가져올 걸 그랬나?’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스님이 이를 듣고 지금은 하안거 중이라 양식은 이미 다 마련했노라며 무덤덤하게 말했다. 법명을 여쭙자 다음에 두세 번 인연이 닿으면 그때 자연스레 알 일이라며 부드러운 미소만 짓는다. 삼불사의 이름이 궁금하여 또한 여쭈었더니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며 다만 삼정 마을, 삼정산 등의 ‘삼’에서 이름을 따온 게 아닌가 했다.

 

 

“저기 보이는 곳이 천왕봉이지요.”

자리에서 막 일어서려는데 스님이 말을 건넸다. 아예, 그렇군요. 짧은 숨을 내쉬었다 도로 툇마루에 걸터앉았다. 다시 침묵이 흘렀다. 스님은 여전히 나물을 매만졌고 나그네는 하염없이 천왕봉을 바라보았다.

 

 

마당 끝 석등 하나. 천왕봉을 바라보다 문득 눈길이 간다. 저 멀리 아득한 어딘가에 있을 거라 믿었던 피안의 세계가 바로 석등이 비추는 이곳임을 깨닫는다. 산신각에 오르니 삼불사와 주변이 한눈에 들어온다. 희미한 형체의 오랜 석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스님이 이곳에 온 지는 삼년, 비구니 스님 혼자 있기가 쉽지 않을 터. 전기는 들어오지만 난방은 나무를 땔감으로 해서 방을 데운단다. 발아래 산마을이 고요했다. 평온히 앉은 스님께 깊게 합장을 하고 돌층계를 내려섰다. 견성골로 내려서는 돌길은 몸이 앞으로 고꾸라질 정도로 심한 경사길이다. 이 가파른 내리막길은 골짜기로 끝없이 이어져 비록 삼불사가 절의 모양새는 하고 있으나 역시 깊은 산중의 암자와 별반 차이가 없음을 절로 깨닫게 한다.

 

 

마을이 지척인 줄 알았는데, 가파른 비탈길은 끝이 없다. 내리막인데도 땀이 비 오듯 했다. 얼마나 내려갔을까. 너덜해진 무릎이 땅에 닿을 무렵 계곡 물소리가 나더니 돌길이 흙길로 바뀌었다. 계곡으로 다가섰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물에 소스라치듯 놀라 서늘한 마음이 일었다. 순간 물소리에 모든 것이 내려앉았다.

 

 

견성골, 무슨 뜻일까. 하필 골짜기 이름이 왜 ‘견성’일까. 그럼, 삼불사의 ‘삼불’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계곡 바위에 걸터앉았다. ‘견성, 삼불, 견성, 삼불….’ 어느덧 물소리가 잦아들고 머리가 맑아졌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

견성. 견성성불이라 했다. ‘견성’은 달마를 초조로 하는 선종에서 근본 취지로 한다. 9세기 초 당나라 때에 편찬된 선의 역사서 <보림전>에 처음 등장한다. 문자에 있지 않아서(不立文字) 교설을 따로 전하니(敎外別傳), 인간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켜(直指人心) 그 성품을 보고 깨달음을 이룬다(見性成佛)에서 ‘견성’을 말한다. 인간의 본성이 곧 불성이라는 것, 참된 자기를 깨닫고 앎으로써 깨달은 자인 부처가 된다는 말이겠다. 번뇌에 가려 드러나지 않았던 자신의 청정한 성품을 드러내어 깨달음을 이루는 것이 ’견성성불‘이다. <대승열반경>에서는 ‘일체 중생은 모두 불성을 갖추고 있다’고 했다. 누구든 열심히 수행하면 깨달음을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사고가 곧 ‘즉심시불(마음이 곧 부처, 卽心是佛)’이다. ‘본래청정심(本來淸淨心)’을 찾는 것이다.

 

 

<금강경>에서 “여래는 어디서도 오지 않고 어디로도 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세계 불교계의 대표 선승인 틱낫한 스님은 “불상을 향해 절을 할 때도, 그 상에 내 자신이 비춰져 있음을 깨닫고, 내 안에서 궁극의 완전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우리가 경배하는 대상과 우리 사이의 구별이 사라지면서, 내 안의 부처와 깊이 연결된다.”고 했다. 스님은 누구에게나 불성이 있음을 깨닫고, 이 불성의 발현을 통해 모두를 이롭게 하는 것, 누구나 부처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 <법화경>의 핵심 가르침이자 참된 종교 행위라고 말했다. 부처는 말했다. “이 썩어질 몸뚱이를 예배를 해서 어쩌자는 것이냐. 법을 보는 자는 나를 보는 사람이요. 나를 보는 사람은 법을 보아야 한다. 나를 보려거든 법을 보아라.”

 

 

춥다고 법당의 목불을 도끼로 쪼개 불태운 단하(738~824) 선사, 부처의 진리를 묻자, ‘똥 닦는 막대기(간시궐, 乾屎橛)’라고 서슴지 않고 말했던 운문(864~949) 선사, 수행승들이 찾아오면 언제나 ‘차나 들지(끽다거, 喫茶去)’라고 했던 조주(778~897) 선사, 심지어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고 외쳤던 임제(?~867) 선사… 이 선어들로 고정관념에 갇혀 있던 우리들의 꼭꼭 닫힌 눈은 번쩍 뜨인다.

 

천왕봉

그러고 보니 나 또한 너무 멀리 온 게 아닌가. 무엇을 구하러 이 지리산 오지를 헤매고 있단 말인가. 봄이 왔다고 해서 봄을 찾아 나섰다가 어디에도 없어 집으로 돌아왔더니 뜰에 핀 매화에 봄이 있더라는 어느 시인의 시처럼, 파랑새를 찾아 여기저기 헤매지만 결국 집안의 새장에서 파랑새를 찾게 된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파랑새>에서처럼, 깨닫고 보니 길을 떠난 바로 그 자리였다는 선재동자처럼… 결국 모든 것은 ‘저기’가 아닌 ‘여기’ 자신에게 있다.

 

 

자신 속의 삼신불을 보라

그렇다면 삼불은 무엇인가. 삼불사의 삼불은 혹여 ‘삼신불(三身佛)’이 아닐까. 천왕봉, 제석봉을 거쳐 도솔암, 영원사, 상무주암, 문수암, 이곳 삼불사, 견성골까지 모두 불교의 세계이다. 견성하여 자신 속의 부처(삼불)를 보라는 것 아닐까. 삼불은 곧 삼신불이다. 법신불(法身佛), 보신불(報身佛), 화신불(응신불, 應身佛)이 그것이다.

 

결국 이 삼신불 또한 자신 속에 있다는 것. <임제록>에서는 “자신 속의 삼신불을 찾고 순간순간 밖에서 찾는 마음을 다스린다면, 부처나 조사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고 했다. 육조 혜능은 형식적인 일체의 형상과 의례를 배척하고 오로지 자신의 청정한 본성에 갖추어져 있는 삼신불에 귀의하는 무상계를 설했다.

“육신(색신)은 집과 같다. 삼신으로 돌아간다고 말할 수 없는 까닭은 그것이 자성(자신의 성품) 속에 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다 있으나 어리석어 보지 못하고 밖에서 삼신불을 찾는다. 그래서 자신의 육신 속에 있는 삼신불을 보지 못한다. <돈황본 육조단경>

 

 

자신의 육신 속에 있는 청정한 ‘법신’에 따라 생각하는 작용이 ‘화신’이고, 생각마다 선하면 ‘보신’이다. 이 도리를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닦는 게 귀의이다. 자성이 깨달으면 부처이고, 자성이 미혹되면 부처가 중생이다. 어리석은 부처가 중생이며, 지혜로운 중생이 부처라는 말과 다름 아니다. 결국 중생의 자성이 부처이고, 부처란 자신의 자성을 깨우친 중생인 것이다. 부처는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자기 자신이 부처임을 깨닫고, 그것을 믿는 것이 불교의 핵심이다. 여기서 부처란 바로 진리 그 자체를 발견하는 일이다.

 

견성골 계곡, 바위에 부서지는 물소리가 세차다. 당송 8대가의 한 사람이자 북송 제일의 문장가였던 소동파(1036~1101)가 상총(1025~1091) 선사를 찾아 법문을 청했다. 상총 선사는 사람이 설해 주는 말만이 법문이 아니라 우주만상이 모두 법을 설하고 있으니 그 법을 들을 줄 알아야 된다고 말했다. 마침 소동파는 절을 나서 골짜기 계곡을 지나는데 전날 밤 내린 비로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세차게 들렸다. 순간 소동파는 무언가 크게 깨닫는 바가 있어 오도송(悟道頌)을 지었다.

 

시냇물 소리가 부처님 설법이니 溪聲便是廣長舌계성변시광장설

산빛이 어찌 청정한 법신이 아니랴 山色豈非淸情身산색기비청정신

밤새 내린 물소리 법문(팔만사천게송)을 夜來八萬四千偈야래팔만사천게

뒷날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해줄 수 있을까 他日如何擧仰人타일여하거앙인

 

 

 

 

 

 삼불사와 삼신불

삼불사는 조선 초에 지어졌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를 뒷받침할 만한 유물과 기록은 없다. 지금은 비구니의 참선도량이다. 칠암자 순례길의 여느 암자와는 달리 이곳은 삼불사라는 절 이름을 갖고 있다. 그래서일까. 앞선 상무주암과 문수암과 사세에 있어서는 별반 차이가 없으나 왠지 세상에 조금은 가까워 산속 깊은 암자의 그윽한 맛은 덜한 편이다. 다만 천왕봉이 보이고 금대산과 백운산이 병풍을 두른 듯이 펼쳐져 있어 전망이 매우 좋다.

 

 

흔히 여러 부처를 법신불(法身佛), 보신불(報身佛), 응신불(화신불, 應身佛)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법신불은 진리 그 자체, 진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 우주 그 자체를 부처로 사유한 것으로, 비로자나불(대일여래)이 여기에 해당한다. 보신불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서원을 세우고 거듭 수행하여 깨달음을 성취한 부처로, 아미타불과 약사여래가 여기에 해당한다. 응신불은 중생과 같은 몸으로 이 세상에 출현해서 그들의 능력이나 소질에 따라 설법하여 구제하는 부처로, 석가모니불을 포함한 과거불과 미륵불이 여기에 해당한다. 삼신불을 달에 비유해서 설명하기도 한다. 법신불은 하늘에 늘 떠 있는 달이고, 화신불은 물에 비친 달을 말하며, 보신불은 달빛을 말한다. 진리 그 자체인 법신은 영원한 존재이지만, ‘보화비진報化非眞’인 보신과 화신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인연 따라 나타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