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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味학

건달할머니들의 건강한 시골밥상, 농가 레스토랑 비비정

 

 

 

 

 

건달할머니들의 건강한 시골밥상, 농가 레스토랑 비비정

 

지난해에 잠시 들렀던 비비정 레스토랑을 연휴를 맞아 다시 찾았습니다.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릅 삼례리에 있는 이 레스토랑은 가까운 곳에 있는 비비정 정자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레스토랑이야 전국 어디에도 있지만 이곳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비비정 마을에선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신문화공간조성사업의 과정으로 음식, 전통가양주, 다과, 공동농작물 생산을 시도했습니다. 마을의 문화적 해석과 다양한 실험을 통해 네 개의 공동창업팀을 발굴해서 사업을 진행했답니다.

 

 

그중의 하나가 비비정 마을 부녀회가 뭉쳐 만든 마을음식문화창업팀입니다. 정도순 대표를 중심으로 60~70대 어머니들이 만든 마을레스토랑입니다. 어머니들은 자신들을 건달할머니라고 한답니다. 마을에서 생산되는 식자재를 기본으로 지역의 농산물을 이용하여 생산자와 소비자의 거리를 줄여 건강하고 신선한 음식을 제공하는 로컬 푸드 방식입니다. 물론 한정식 위주의 식단이지요.

 

이외에도 비비정 마을 청년들이 이끌어가는 작은 양조장에서는 ‘비비락주’라는 건강한 술을 빚습니다. 언덕 위에는 비비낙안이라는 카페도 있습니다.

 

 

 

비비정 레스토랑은 마을 한복판의 좁은 골목길을 따라가거나 언덕 위 카페 비비낙안에 주차를 하고 내려가면 됩니다.

 

이른 점심시간인데도 레스토랑엔 빈자리가 없습니다. 10여 분 남짓 기다려서야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식사가 나오는 동안 마을신문을 봅니다. 비비정 마을신문은 매월 무료로 배포되는 월간지입니다.

 

 

음식은 뭐 겉으로 보기엔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마을 어머니들이 늘 해 오신 그런 맛인데요. 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식자재에다 마을에서 직접 재배했거나 가까운 곳에서 조달하는 로컬 푸드라는 것이 장점입니다.

 

 

우리가 주문한 것은 1만 5천 원 상입니다. 1만 2천 원짜리 기본상과는 달리 홍어무침과 꽃게탕이 추가된 차림상입니다.

 

 

맛은 담백합니다. 입맛을 확 사로잡는 강렬한 맛은 분명 아닙니다. 은근하게 씹히는 맛에는 건강함이 넘칩니다.

 

 

살이 잔뜩 오른 조기 살은 부드럽습니다.

 

 

홍어는 특유의 톡 쏘는 맛이 없어 마니아들에게는 아쉽겠지만 누구나 거리낌 없이 먹을 수 있도록 한 홍어무침도 좋았습니다.

 

 

김치에 싸먹는 수육도 물론 건강합니다.

 

 

특히 꽃게탕은 속이 꽉 차 있어 국물도 진했지만 겨우 두서너 조각만 넣고 생색내는 여느 꽃게탕과는 달리 푸짐했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레스토랑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분리수거도 잘하고 있었습니다. 환경을 생각하는 씀씀이가 곳곳에서 보이더군요.

 

 

 

마을 한 쪽의 한갓진 곳에 있는 레스토랑을 느긋하게 거니는 것도 즐거운 일입니다.

 

 

레스토랑 앞에는 등록문화재(삼례구양수장, 제221호)가 있습니다. 삼례양수장이 그것인데요. 이 양수장은 삼례와 익산 지역의 상수원을 목적으로 지어졌답니다.

 

 

차곡차곡 포개어 쌓은 붉은 벽돌이 인상적인 건물입니다. 창에는 주방도구들을 걸어 놓아 눈길을 끕니다. 양수장은 어찌 보면 지극히 단순한 구성이지만 일제강점기 치수 사업의 상황과 기술을 엿볼 수 있는 문화재입니다.

 

 

레스토랑 옆 밭에는 자두나무 과수원이 있습니다. '추희'라고 불리는 가을자두입니다. 비비정의 명물로 완주군 로컬 푸드 사업단에 납품하기도 한답니다. 마을 주민들이 모두 함께 작업하여 수익을 창출합니다. 공동으로 경작하는 텃밭도 있습니다.

 

 

층계를 올라 카페 비비낙안으로 갑니다. 이곳에선 만경강과 일대의 너른 평야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야트막한 언덕임에도 사방이 탁 트여 절로 감탄사가 나옵니다. 완산 8경의 하나였던 ‘비비낙안’의 풍류가 지금도 전해지는 듯합니다.

 

 

카페 안에서 차 한 잔을 마셨습니다. 이곳에서 보내는 봄날의 오후는 느긋합니다. 열어 둔 창문으로 넘나드는 봄바람, 잔잔한 음악의 선율, 시큼한 차 한 잔… 모든 것이 꿈결 같군요.

 

 

고양이도 나른한 듯, 늘어지게 기지개를 켭니다. 봄날은 또 이렇게 흘러가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