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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기행

대만에 가면 꼭 들른다는 충렬사






대만에 가면 꼭 들른다는 충렬사 


대만을 방문하는 단체여행객이라면 누구나 꼭 들른다는 충렬사.

우리로 치면 국립현충원 정도 된다고 할까.


 

대만 어디서든 마찬가지이지만 이곳을 찾는 이들은 대부분 중국인과 한국인 관광객들.


 

충렬사 좌우로 인성, 의취라고 적힌 거대한 삼문을 들어서면 베이징 자금성에서 익히 봐왔던 웅장한 건물이 멀리 보인다.


 

 

본전으로 오르는 건물 벽에는 중화민국 1년(1911) 3월 29일에 일어난 광동기의 장면이 동판에 부조되어 있다. 


 

 

웅장한 충렬사 본전, 바짝 군기가 든 위병들이 지키고 있다.


 

 

열 지어 있는 붉은 기둥과 본전 좌우로 위패들을 모신 건물이 있다.


 

대리석으로 꾸민 사당 안은 매우 엄숙하다.


 

 

이곳의 볼거리 위병 교대식. 사실 관광객들이 충렬사를 찾는 이유는 이 위병 교대식 때문이다.


 

본전 옆 위패를 모신 곳에는 사람들이 거의 찾질 않는다.


 

항일운동과 국공내전에서 숨진 이들의 유품과 위패를 찬찬히 둘러봤다.


 

회랑을 따라 건물을 돌아기니 이처럼 잘 꾸며진 공간이 나타났다.


 

 

본전을 나오면 다시 광장, 광장 좌우에는 2층탑이 있고 그 안에 두 분이 모셔져 있다.


 

오른쪽에는 육호동(1868~1895)), 왼쪽에는 사견여(1879~1900) 두 열사의 흉상이다.


 

육호동과 사견여는 둘다 청나라 말기의 인물이다.

육호동은 손문과 생사를 같이하며 부친의 유산을 팔아서 혁명을 적극적으로 돕다가 참혹하게 죽임을 당했다.

사견여는 양광총독 덕수를 살해하려다 체포되어 혹형을 당한 끝에 최후를 마쳤다.


 

육호동과 사견여는 손문과 함께 혁명에 참여했지만,

안타깝게도 20대의 젊은 나이에 희생을 다했다.

비록 짧은 생이었지만

중국 혁명에 그들이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그들은 짧게 살고도 오래 남는 이가 되었다.


잠시 묵념을 하고 충렬사를 나왔다.

빗방울이 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