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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로 가는 길

마당이 이처럼 예쁠 수 있다니... 봉정사 영산암

 

 

 

마당이 이처럼 아름다울 수 있다니… 봉정사 영산암

 

봉정사 대웅전을 돌아가면 높다란 층계 끝으로 고졸한 전각이 보인다. 원래 이 길은 계곡을 징검징검 건너 비탈로 난 오솔길로 오르는 제법 운치가 있는 길이었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라는 영화를 찍고 나서 찾는 이들이 많아지자 이 자연스런 계곡길이 없어졌다고 하니 옛 오솔길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겐 여간 아쉬운 게 아닐 것이다.

 

 

계곡을 메우고 돌층계를 만들었지만 그도 시간이 지나니 제법 자연스러워졌다. 옛 것의 그윽한 맛은 덜하지만 자연석으로 쌓은 돌층계와 울창한 숲이 허전함을 가려 암자로 가는 길은 덜 생소하게 느껴진다.

 

 

영산암. 봉정사보다 이 암자의 운치가 더 그윽하여 매번 들르게 된다. 영산암은 지조암과 함께 봉정사의 산내암자이다. 이 암자가 유독 시선을 끄는 것은 마당 때문이다.

 

 

돌층계를 오르면 넓은 공터가 나오고 왼쪽으로 중층의 우화루가 있다. 초서로 '우화루'라 썼는데, '꽃비 내리는 누각' 쯤으로 풀이해 보니 몽환적이기까지 하다. 전북 완주의 화암사에도 같은 이름의 누각이 있다. 가운데 3칸은 누마루로 뚫려 있으며 좌우에는 2칸 내지 2칸 반의 방을 두었다.

 

 

우화루 현판은 원래 봉정사 극락전 앞에 있던 것을 옮겨왔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대웅전 앞에는 문루 역할을 했던 만세루가 있던 것에 비해 또 하나의 영역인 극락전 앞이 텅 비어 있어 왠지 모를 허전함이 느껴지곤 했다. 산중 암자에 있기에는 누각이 다소 덩치가 크지 않나 하는 의구심의 단초를 이제야 찾은 것만 같다.

 

 

밖에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게 중층의 우화루가 내부를 철저하게 가리고 있다. 다만 누각의 아래를 통하여 영산암에 들어가게 함으로써 이곳 역시 묘한 긴장과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우화루 아래를 통하여 영산암에 들어서면 고졸한 맛이 있는 건물도 그러하거니와 땅의 높낮이를 이용해 3단으로 구획한 마당이 눈에 들어온다.

 

 

어쩜 이리도 예쁠 수 있을까. 사방이 건물을 둘러싸고 그 가운데의 마당도 단조로움을 피해 각기의 자리에 맞게 맞춤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 구성을 마당을 중심으로 설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마당 한 귀퉁이에 모아둔 낙엽은 하얀 도화지에 실수로 떨어뜨린 갈색 물감 한 방울 같다. 애초 가장 넒은 중간마당에 포인트를 주는 것이 석등이었는데 낙엽뭉치가 반대편에 쌓여 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응진전 앞의 동산은 아기자기하다. 특히 상단의 마당을 오르는 계단이 눈에 띈다. 왼쪽으로 바위 위에 소나무 한 그루가 운치 있고, 오른쪽으로는 갖은 수목으로 만든 동산이 앙증맞다.

 

 

중간마당에서 돌층계를 올라 상단의 삼성각에 오르면 작은 공간에 이처럼 깊은 곳이 있음에 놀라게 된다. 눈으로 얼핏 보기에는 그리 깊숙한 공간이 아님에도 세상과 단절된 깊은 고요를 이곳에선 느낄 수 있다.

 

 

삼성각 옆을 돌아 응진전 뒤를 가면 이 작은 암자가 얼마나 깊은 속내를 간직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자연석을 막 쌓은 구불구불한 돌담에 절로 눈길이 간다. 담 너머로는 울창한 숲인데, 굳이 경계를 짓지 않고 도리어 암자 깊숙이 자연을 불러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산암의 또 다른 특징을 꼽으라면 삼성각을 제외한 모든 전각에 마루를 별도로 내었다는 데 있다. 송암당만 툇마루를 두었고, 응진전, 영화실, 우화루, 관심당은 쪽마루가 설치돼 있다. 암자를 찾는 이들이 누구라도 거리낌 없이 앉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종교라는 엄밀한 격식을 차리기보다는 대중들에게 친근함으로 다가간 건축주의 배려가 돋보인다. 암자를 찾는 이라면 누구나 쪽마루에 걸터앉아 자신의 내면을 고요히 들여다 볼 수 있게 하였다.

 

 

영산암은 전체적으로 'ㅁ'자 형으로 매우 폐쇄적인 형태로 보이지만. 우화루와 송암당에 누마루를 두어 개방성이 도드라져 답답하게 느껴지기보다는 도리어 아늑함을 준다. 게다가 높낮이가 3단으로 되어 있어 위에서 내려다보면 눈길마저 시원하다.

 

 

상단에 주불전인 응진전을 중심으로 제일 안쪽에 삼성각, 영화실이 배치되어 있고, 그 앞으로 동산을 만들었다. 중간마당에는 송암당과 관심당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 하단에는 우화루가 놓여 있는 구조다.

 

 

그러니 자칫 빈 공간으로 남아 휑하게 보일 마당은 먼저 사방으로 전각을 둘러 아늑한 공간을 만든 뒤, 다시 자연 지형에 맞게 마당을 3단으로 나누어 단조로움과 폐쇄성을 피할 수 있게 하였다.

 

 

 

우화루와, 좌우의 관심당과 송암당은 좁은 통로를 통해 왕래할 수 있게 만든 점도 구석구석까지 미치는 공간 구성의 치밀함을 엿볼 수 있다.

 

 

우화루의 상층 누마루로 바깥 풍경이 들어오고 이도 모자라 송암당 끝의 누마루도 개방되어 있어 전체적으로 폐쇄성을 극복한 것이다.

 

 

삼성각과 응진전 앞의 조경도 다소 경직될 수 있는 암자 공간에서 숨통을 트여 주는 역할을 한다. 이로 인해 공간은 권위와 폐쇄성을 벗어 던지고 부드럽고 개방적으로 되었다.

 

 

자연을 내부로 끌어들여 암자의 분위기를 자연에 동화되도록 한 이곳의 공간 처리 수법이 얼마나 뛰어난 것인가를 엿볼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영산암을 평하기를 ‘불교의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보다는 마치 유가 선비들의 생활공간 가까이에 만든 정자에 있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영산암이라는 이름은 석가모니가 『법화경』 등의 경전을 설법하였던 영취산에서 유래했는데, 보통 줄여서 '영산'이라 부른다. 봉정사 영산암은 2001년 11월 1일에 경상북도민속자료 제126호로 지정되었다. 건물이 언제 세워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봉정사영산암향로전창건기>와 <봉정사영산전중수기> 등의 사료로 보아 19세기 말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