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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기행

동트는 아침 하회마을 골목길 산책

 

 

 

동트는 아침 하회마을 골목길 산책

 

안동 하회마을에서 하룻밤을 잤습니다. 몇 번을 들른 적이 있는 하회마을이지만 제대로 본 적은 없다 여겨집니다. 다행히도 이번에 하회마을에서 1박을 하게 되어 여태 봐왔던 관광객으로 북적대던 하회마을과는 전혀 다른 풍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염행당(남촌댁) 옆 민가에서 1박을 했습니다. 그 흔한 텔레비전도 없어 오순도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밤이 늦어서야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러다 문틈을 비집고 들어온 늦가을의 찬바람에 잠이 깼습니다. 전날 늦게 잤는데도 동이 트기 전에 일어났습니다. 그럼에도 머리는 한층 맑았습니다.

 

 

대충 세안을 하고 마을로 나갔습니다. 교회가 있는 언덕을 올려다보니 해가 막 솟아오르고 있었지요. 산 능선을 살짝 넘은 햇살이 마을 이곳저곳을 고루 비추어 온통 붉은 기운이 땅에 가득했습니다.

 

 

강둑을 따라 걸었습니다. 마을의 외곽을 두른 둑길을 걸으며 지형과 지세를 살피고 난 뒤에 마을 안으로 들어서서 골목골목을 살필 요량이었습니다. 하회마을을 제대로 보는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강바람이 제법 매서워 손이 금세 시렸습니다. 제 몸을 떨군 낙엽들이 길 위를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바람 부는 대로 고요하기 그지없는 마을을 그렇게 타박타박 혼자 걸었습니다. 인적 하나 없는 하회마을은 여태 알고 있었던 하회마을과는 완전 딴판이었습니다. 마치 조선시대로 다시 거슬러 올라온 느낌이었습니다.

 

 

작천고택 못 미친 강가에는 우람한 고목 세 그루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잎이 다 떨어져 검은 가지만 남겼지만 여름이면 넉넉한 그늘을 만들어내는 오랜 나무입니다. 길모퉁이에 있는 족히 수백 년은 되었을 고목 한 그루는 이미 죽은 지 오래, 마을의 안녕을 비는 거무튀튀한 자태가 신성함을 넘어 거룩하기까지 보였습니다.

 

 

만송정 솔숲으로 갔습니다. 강을 사이에 두고 부용대와 마주하고 있는 솔숲은 강가를 빙 둘러 싸고 있습니다. 쭉쭉 뻗은 소나무들이 햇볕 한 줌 겨우 드나들 정도로 꽤 우거져 있습니다. 솔숲에서 바라보는 강 건너 부용대의 수려함은 이루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아침 햇살이 절벽을 비추니 그 유명한 적벽이 바로 여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방수, 방풍, 방사를 위해 심은 솔숲은 풍수지리를 모른다 할지라도 보드라운 강줄기와 함께 마을을 안온하게 감싸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만송정에서 나루터를 지나 둑길에 올라섰습니다. 예전에는 이곳도 차량들로 넘쳤었는데, 다행히 바깥에 주차장을 두는 바람에 이제는 사람들이 걸어오는 길로만 이용됩니다.

 

 

골목 안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이제 마을의 형세는 대충 보았으니 골목을 누빌 차례입니다. 하동고택을 지나 곧장 숙소가 있는 염행당으로 가야겠지만 아직 시간이 이른 것 같아 오른쪽으로 길을 틀었습니다.

 

 

북촌댁으로 잘 알려진 화경당을 지나 삼신당 골목길로 들어섰습니다. 삼신당은 하회마을의 중앙 높은 곳에 있습니다. 류종혜가 입향할 때 심은 것으로 전해지는 느티나무는 수령 600년이 넘었습니다. 하당으로도 불리며, 화산 중턱의 상당 서낭당, 중당 국사당과 더불어 마을 주민들의 소망을 비는 삼당을 이룬다고 합니다. 정월 대보름 밤에 마을의 안녕을 비는 동제를 상당과 중당에서 지내고, 그 다음날 아침에 여기서 제를 올린답니다. 하회별신굿탈놀이가 이곳에서 시작된답니다.

 

 

하회마을의 집들은 삼신당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강을 향해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집이 향하는 방향이 제각기입니다. 우리나라의 마을 집들이 대개 정남향 혹은 동남향을 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이곳의 집들은 하나같이 강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또한 큰 기와집을 중심으로 주변에 초가집들이 원형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는 것도 특징입니다.

 

 

이는 길이 방사상으로 나 있는 데다, 집들이 서로 마주보는 것을 피하고, 집의 한쪽이 낮아야 배수가 쉽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길에서 대문이 잘 보이지 않고 골목을 에돌아야 대문에 이를 수 있는 집들이 많습니다.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따라 누비는 재미 또한 쏠쏠합니다. 아스라이 멀어지는 골목길의 선이 소박하면서도 살갑다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여행자의 눈길을 끈 건 이곳의 담장입니다. 하회마을의 담장은 대개 흙담인 데 비해 이곳은 흙담과 돌담이 좌우에 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흙담을 쌓는 방법이 특이한데 널빤지로 틀을 만들고 그 사이에 진흙․돌․지푸라기․석회 등을 넣어서 굳힌 다음 판장을 떼어내어 담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를 ‘판담’이라고도 합니다.

 

 

 

또는 흙뭉치를 일정한 크기로 다듬어 굳힌 흙벽돌을 차곡차곡 쌓은 흙벽토담도 있습니다. 물론 비가 올 때 젖거나 쓸려 내려가지 않도록 기와지붕을 잇지요. 근데 하회마을엔 본시 돌담이 없었다고 합니다. 마을이 연화부수형이라 돌담을 쌓으면 가라앉는다 하여 돌담 대신 흙담을 쌓은 것인데 근래에 대대적으로 보수를 하면서 돌담을 쌓았다고 합니다. 잘 몰랐거나 알았다 하더라도 애써 무시한 것이 아닌가 싶어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이제 양진당, 충효당의 위치를 가늠해보고 골목을 돌아 숙소로 향했습니다. 이때 앞치마를 두르고 한복을 입은 할머니들이 골목길에 나타났습니다. 마을 누군가의 집에서 도울 일이 생긴 모양입니다. 이어서 남녀 커플이 골목 저쪽으로 보입니다. 날이 밝아지자 골목으로 사람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오늘 새벽은 길에 주안점을 두고 걸었습니다. 마을의 길, 담장으로 둘러쳐진 하회마을의 골목길을 걷는 것이야말로 하회마을을 가장 몸으로 느끼는 것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남촌댁(염행당)에서 출발하여 작천고택, 북촌댁(화경당), 삼신당, 양진당, 충효당 순으로 찾아갔습니다. 이제는 이 고택의 안을 샅샅이 살필 일만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