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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끝에서 만난 섬진강 구담마을의 가을 풍경

 

 

 

길의 끝에서 만난 섬진강 구담마을의 가을 풍경

 

어디로 갈까? 그냥 섬진강을 따라 가자. 그렇게 한참을 갔다. 다리를 건넜다. 햇빛에 비친 섬진강은 푸르고 검었다. 가을빛이 내려앉은 강은 스스로를 무겁게 가라앉히고 있었다.

 

 

임실치즈마을에서 임실군 관광지도를 하나 달라고 했더니 계산을 하던 아주머니가 대뜸 말했다. "임실에 구경할 만한 곳은 없는데요. 남원이나 담양으로 가시는 게 나을 거요." 외지인들이 많이 찾는 임실치즈마을에서 이 정도의 관광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는데 실소를 금치 못하고 결국 지도 한 장도 없다는 말에 씁쓸하게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임실에 왜 가볼 만한 곳이 없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사는 이의 생각이 그러할진대 외지인이 오지랖 넓게 간섭할 일은 아니다 싶기도 했다. 그래, 어찌 보면 좋은 일일 수도 있다. 적어도 이곳만큼은 찾는 이들이 적어 사람들로 붐비지는 않을 테니까.

 

 

강이 문득 옆구리께 나타났을 때 크게 휘돌아가는 물도리임을 직감했다. 강 건너 마을은 숨은 듯 고즈넉했다. 다리를 건너니 산 아래로 마을이 보였다. 천담마을이었다. 아, 이곳이면….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진메마을도 멀지 않겠구나. 구담, 진메, 천담. 언젠가 오고 싶은 섬진강 강마을이었지. 사거리에서 잠시 멈추었다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섬진강을 따라 가기로 했다.

 

 

강가에는 갈대가 막 피어나고 있었다. 주렁주렁 열린 감들도 지루한 가을 햇볕에 하품을 하기 시작했고, 붉은 고추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했다. 이곳에선 이미 가을이 깊어가고 있었다. 갈대밭이 바다처럼 뒤덮던 영화의 한 장면이 문득 떠올랐다.

 

 

창문을 활짝 열자 가을 공기가 차 안을 금방 채웠다. 걸을까. 몇 번이나 망설이다 일단 길의 끝까지 가기로 했다. 강의 옆구리를 끼고 산기슭을 달리던 평평한 길은 고개를 하나 넘자 끝이 났다. 산 중턱에 몇 채의 집이 모여 있는 마을이 나타났다. 이곳에서 길은 끊겼다. 구담마을이었다.

 

 

마을회관 옆 공터에 할머니 몇 분이 나와 있다. 가끔 이곳을 찾는 이들이 있어 나물이며, 밤이며, 콩 따위를 팔고 있었다. 한쪽에는 자전거가 열 대 정도 있었는데 타이어에 바람이 죄다 빠져 있었다. 할머니는 대여비가 2천 원이라고 했지만 강변을 따라 잘 조성된 자전거 길을 달릴 수 없을 정도로 자전거는 관리가 되고 있지 않았다.

 

 

마을회관 앞길을 돌아가면 만나는 둔덕에는 섬진강이 굽어보이는 전망대가 조성되어 있었다. 당산나무와 여러 그루의 고목들이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풍경이 한갓지기 이를 데 없다. 아름드리나무 아래로 굽어 흘러가는 섬진강의 풍경은 절로 탄성이 나오는 한 폭의 그림이다.

 

 

당산나무 앞 둔덕은 이광모 감독의 영화 '아름다운 시절'의 주무대였다. 아름다운 시절 속의 아이들이 뛰어놀던 공터였다. 또 여행자가 달려온 천담마을에서 구담마을까지의 포장도로는 영화에서 미군 지프차량이 먼지를 폴폴 내며 달리던 비포장 흙길이었다. 공터 한쪽에는 한국영상자료원이 세운 비가 하나 있다. ‘아름다운 시절’ 촬영지임을 알리는 ‘영화의 고향’ 비이다. 커다란 지구의를 반쯤 잘라 놓은 것 같은 비석은 ‘고래사냥’의 강원도 남애항, ‘화엄경’의 제주 우도 등 전국에 10여 개소에 불과할 정도로 고전이나 명작이라 할 만한 곳에 세워졌다. 이광모 감독이 이 영화를 찍기 위해 7개월 동안 전국 곳곳을 뒤졌다는 소문이 사실이었음을 증명하는 듯했다.

 

 

당산나무를 내려오다 오던 길을 다시 되돌아갔다. 아무래도 풍경이 자꾸 눈에 밟혀서다. 구름 한 점 없는 시린 하늘, 크게 물도리를 만들며 유유히 흘러가는 섬진강, 허연 속살을 드러낸 강 건너 용골산과 그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의 집 몇 채, 대여섯 배미가 될까 말까한 누렇게 익어가는 논배미들의 풍경이 한가하고 또 한가하다.

 

 

깊은 고요를 깨고 강에서 재잘거리는 소리가 투명한 가을 공기를 타고 들려왔다. 징검다리가 보인다. 그리고 서너 명의 사람들이 허리를 굽힌 채 강바닥에서 무언가를 줍고 있다. 강으로 가는 길에 허름한 집 한 채가 보인다. 삼간집이다. 원래는 초가집이었을 이 흙집에서 옛 풍경을 읽는다. 집 앞 텃밭에는 속을 꽉 채운 배추가 고랑을 따라 열 지어 있고 깨를 터는 촌부의 손길이 바쁘다.

 

 

강에 이르렀을 때 세찬 물소리가 귀를 연다. 아이가 먼저 성큼성큼 징검다리를 건넜다. 징검돌 사이를 통과하며 세차게 울어대는 물소리만 요란할 뿐, 주위는 온통 고요와 침묵과 적막에 빠졌다. 강바닥에서 다슬기를 줍고 있던 사람들조차 미동도 하지 않는다.

 

 

강을 가만히 한 번 건너고 난 후 징검다리에 걸터앉았다. 그러곤 강물에 발을 담근 채 강 같은 세월을 읽었다. 가을햇살과 강물소리, 이따금 볼을 감싸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하염없는 섬진강의 오후를 보내기로 했다.

 

 

꽃이 핍니다

꽃이 집니다

꽃 피고 지는 곳

강물입니다.

강 같은 내 세월이었지요

- 김용택의 <강 같은 세월>에서

 

 

구담마을은 본래 ‘안담울’이었으나 마을 앞을 흐르는 섬진강에 자라가 많이 산다고 해서 ‘구담(龜潭)’이라 했다고 한다. 또는 이 강줄기에 아홉 군데의 소가 있어 ‘구담(九潭)’이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봄이면 구담마을엔 매화가 지천이란다. 구릉과 비탈에 듬성듬성 핀 매화가 사람을 환장하게 만든단다. 이곳의 산과 강이 한 폭의 수채화인데 거기다 꽃까지 피면 별천지가 따로 없겠다. 그래서일까. 구담마을을 한 번 찾은 이는 그 풍경을 두고두고 잊을 수 없어 마법에 걸린 듯 다시 찾곤 한단다.

 

 

새로 산 미러리스 카메라로 섬진강 풍경을 담았습니다. 무거운 DSLR장비대신 손안에 들어오는 가벼운 소니 NEX 5T로 떠난 가을여행은 정말 좋았습니다. 사진의 만족도는요? 글쎄요. 썩 만족스럽지는 않지만요. 고가의 DSLR과 가격 대비하면 어느 정도는 만족입니다. 여러분들이 직접보시고 판단해주세요.(이러니 꼭 광고 같네~, 일부는 폰으로 찍었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