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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기행

자동차가 사라진 마을, 수원 행궁동 생태교통마을 직접 가보니...

 

 

 

자동차 없는 마을, 골목길의 즐거움

 

9월 1일부터 30일까지 행궁동 일대에서 벌어진 ‘생태교통축제 2013수원’을 다녀왔다. 세계문화유산 화성이 있는 행궁동에 차 없는 거리가 생겼기 때문이다. 보도와 골목을 보행자 중심으로 바꾸고, 외곽에 별도의 주차장을 만들어 차량을 관리하여 보행자를 보호하고 있었다.

 

 

차가 없어진 거리에서 사람들은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등 무동력 이동수단으로 골목길을 오가고 있었다. 이따금 전기차가 보일 뿐 자동차가 사라진 골목에선 사람들의 웃음과 이야기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9월 한 달 동안 열린 ‘생태교통축제 2013수원’은 경기도 수원시와 ‘이클레이’가 공동 주최했다. 이클레이(ICLEI)는 84개 나라 1천여 개 도시가 참여한 기구로, ‘지속가능성을 위한 세계지방정부’다. 이클레이의 오토치머만 의장은 한 달 가까이 행궁동 이클레이 사무소에 머물면서 축제의 전 과정을 기록하고 평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가 흔히 친환경 교통수단을 말할 때 ‘녹색교통’이라는 개념을 많이 사용해 왔다. 근데 여기선 ‘생태교통’이다. 뭐가 다를까? 녹색교통이 친환경 교통수단에 초점을 둔 것이라면 2007년 처음으로 도입된 생태교통의 개념은 이동의 주체가 사람이라는 걸 강조하고 있다. 즉 보행자를 중심으로 도시교통체계를 바꾸자는 것이다.

 

 

이런 생태교통 개념을 적용한 것이 바로 이곳 수원 행궁동인 셈이다. 보행자 중심의 교통 체계는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이미지에도 걸맞고 장기적으로 지역경제의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생태교통 축제를 찾은 방문객은 80만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 얼마 전 수원시가 옛 도심에 추진하려는 트램(노면전철) 전시장에도 38만 명이 다녀갔을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처음에는 반대했던 행궁동 상점, 식당 주인들이 이제는 차 없는 거리를 즐기고 31일을 끝으로 축제는 끝나더라도 계속해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생태교통을 지속하겠다는 흐뭇한 소식도 들리고 있다. 자동차가 드나들 수 없다는 것에 불편과 불만을 처음엔 가지기도 했지만 지난 한 달 동안의 생태교통 시범운영이 주민들의 의식에 변화를 준 것이다.

 

 

‘차 없는 거리, 차 없는 동네’가 현실에서 가능한 것임을 보여준 셈이다. 차에 너무나 익숙한 현대 생활에서 차가 없다는 것은 불편하고, 일상생활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지만 지난 한 달 동안의 실험에서 ‘차가 없는 마을’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차가 없어지니 자연 자전거나 도보로 이동하게 되는데, 느린 속도로 움직이다 보니 차로 휙 지나가던 옛날과는 모든 면에서 달라졌다. 평소에는 얼굴조차 보기 힘들던 이웃들이 서로 인사를 하기 시작했고, 집과 학교, 학원만을 오가던 아이들도 자동차로 위험했던 골목길에서 마음껏 뛰어 놀게 되었다. 노인들은 골목 광장에서 무료함을 달래기도 하고, 외지에서 찾는 이들이 많아지자 상인들도 오히려 즐거운 낯빛으로 바뀌었다. 가게 앞에는 삼삼오오 모여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주민들과 방문객들의 모습이 여기저기서 목격된다.

 

 

어쩌면 이곳 행궁동 생태교통 축제는 우리가 도저히 불가능할 것이라고, 평생 보기 힘들 거라고 여겼던 도시교통에서의 작지만 큰 변화의 시작일 것이다. 이곳 생태교통 행궁동에는 45개 나라 90개 도시에서 전문가 250여 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방문한 이들은 모두 생태교통 축제에 놀라면서 자신들의 도시에서도 열고 싶다는 제안을 해오고 있어 세계적 확산도 점쳐지고 있다.

 

 

 

차가 없어지자 옛길도 선명히 드러났다. 장안문 옛길. 화서문 옛길, 나혜석 옛길. 그 옛날 도보길이 다시 재현된 것이다. 장안문 옛길은 장안문에서 신풍학교까지의 길이다. 수원화성 축성 때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며 만들어진 길이다. 화성행궁과 관아를 가기 위해 지나다니던 길과 집과 집을 잇는 구불구불한 길이 그대로 남아 있어 오랜 시간 사람들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길이다. 나혜석 옛길은 1896년 4월에 이곳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길이다. 나혜석 생가와 삼일여학교가 있었던 길로 화성행궁으로 통한다.

 

 

 

몇 백 년 세월의 여유와 깊이를 담고 있는 골목길은, 일상 속에 만들어놓은 사색의 길이기도 하다. 가만히 걷다 보면 각기 다른 사람들의 표정처럼 저마다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집과 대문, 담벼락을 보는 즐거움을 만나게 된다.

 

 

골목에서 할머니 한 분이 걸어온다. 엉거주춤 어기적거리는 모습에 힘겨움이 잔뜩 묻어 있다. 10미터가 될까 한 거리를 한참이나 걸어온 끝에 할머니는 벽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이 손바닥이 내 손바닥이요.” 그러면서 꽃 가운데에 찍혀진 손바닥 그림에 손을 갖다 대었다.

 

 

 

 

 

 

 

추억의 사진들을 길거리에 내어놓은 집도 있다. 어떤 한정식 집은 아예 식당 앞에 사진 전시회를 방불케 할 정도로 많은 사진들을 전시해 두었다. 어떤 집은 대문을 활짝 열어둔 채 마당에서 옛 추억의 사진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교복점을 운영한다는 신근필(63) 씨는 수십 년이 지난 옛 사진들을 방문객들을 위해 기꺼이 내놓았다. 행궁동 일대가 차 없는 거리가 되면서 장롱 깊숙이 숨겨두었던 추억들을 하나씩 꺼내어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서였다. 추석 때부터 이른바 ‘마당 전시회’를 열었는데 직접 교복점을 운영하는 장점을 빌려 교복으로 전시장을 한층 풍성하게 꾸며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양복점에서 일했던 젊은 시절 건장한 자신의 사진을 보며 빙그레 웃는 모습에서, 하마터면 기억에서 멀어졌거나 영영 잊혔을 옛 추억을 생태교통 덕분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어떤 자부심 같은 것을 읽을 수 있었다.

 

 

 

골목길에는 활기가 넘쳐났다. 한두 명이 자전거를 타고 오가기도 하고,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기도 하고, 수십 명의 사람들이 무리지어 다니기도 했다. 특히 학생들이 골목을 무리지어 다니면서 깔깔 웃는 모습에는 생기가 넘쳐났다.

 

 

 

 

 

 

 

 

 

 

두 발 자전거, 외발 자전거, 처음 보는 요상하게 생긴 자전거들이 골목을 달린다. 골목 전시장 같다. 이곳에선 경찰조차 낯선 자전거에 몸을 맡긴 채 순찰을 돌고 있다. 다양한 이색 자전거를 보며 장애인․노약자․어린이․빈민 등 어느 계층도 소외 받지 않는 생태교통의 참의미를 읽는다.

 

 

※ 축제가 끝난 지난 1일부터 행궁동에는 다시 차들이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동차 없는 거리를 위해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현재 논의 중에 있으며 수원시 또한 주민들의 요구가 있을 경우 조례 제정 등 적극적인 대처를 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