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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집 기행

이야, 갈대로 만든 이런 집도 있었네! 장방리 갈대집

 

 

 

이야, 갈대로 만든 이런 집도 있었네! 장방리 갈대집

- 화포천에서 만난 특이한 집, 장방리 갈대집 -

 

 

 

“아, 여기였네. 하하!”

 

여행자의 탄성에 아내가 더 신난 듯했다. 사실 진영역에서 내려 봉하마을로 와서 한림정역까지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여행일정을 잡았었는데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장방리 갈대집’이었다.

 

 

손에 쥔 지도에는 한림면으로 나와 있는데 정확히 어딘지는 알 수 없었다. 다른 날을 잡아 따로 찾아야 할 지 아니면 한 번 오기 힘드니 다소 무리를 하더라도 오늘 찾아야 할 지 갈등이 생겼다. 마침 화포천 주변 안내문을 보던 아내가 ‘갈집(영강사)’이라는 글귀를 발견했고 “바로 저기네” 하며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게 아닌가.

 

 

철길 아래 굴다리를 건너자 산기슭에 스머프의 집처럼 생긴 갈집이 보였다. 얼핏 보면 무슨 버섯 같기도 하다. 절벽 아래에 지어진 영강사라는 절의 요사채로 사용하고 있는 장방리 갈집은 안채, 사랑채, 아래채로 구성된 모두 3채의 건물이었다.

 

 

 

두 채는 곳곳에 일부 고쳐지은 흔적들이 더러 있다. 켜켜이 쌓인 갈대지붕은 그 두께만 50cm가 넘는다. 대개 갈대지붕은 한 세대에 한 번꼴로 지붕을 갈 정도로 오래 가는데, 지붕 제일 아랫단은 영강사 법성 스님의 고조할아버지 때 얹은 갈대라고 하니 녹록치 않은 세월이 흘렀음을 알 수 있다.

 

 

 

지붕을 갈 때는 초가를 일 때와 마찬가지로 이전의 낡은 갈대를 다 헐어내지 않아 처마 끝으로 갈대가 여러 층을 이룬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나저나 지붕을 얹는 방식이 초가와는 또 다르다고 하니 앞으로 갈대지붕을 제대로 이을 사람이 있을까 하는 걱정이 괜스레 앞선다.

 

 

장방리 갈대집(갈집이라고도 한다)은 낙동강 지류의 화포천에 있다. 낙동강 주변이라 갈대가 흔했고 이를 이용해 갈대로 지붕을 이었다. 갈대집은 ‘초막집’으로도 불리는데 주민들은 이 일대가 초막집이 많은 마을이라 하여 ‘초막골’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갈대집이 언제부터 이곳에서 생겼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임진왜란 이후부터 초막집이 생겨나서 거주했다는 설과 적어도 1900년대 이전에 처음 지어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예전에 이곳 마을 일대가 거의 갈대집이었다고 하나 1970년대 초가지붕이 사라졌던 새마을운동과 더불어 갈집들도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방 2칸에 마루 1칸, ‘초가 3칸’의 오막살이집의 구성이지만 내부는 의외로 넓고 서까래는 튼실했다. 벽에는 이 집에서 살았던 갓 쓴 옛 분들의 사진이 걸려 있어 이 집이 오래되었음을 넌지시 말하고 있다. 사랑채와 아래채 외벽에는 이곳을 방문한 노 대통령부부의 사진들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보존상태가 양호한 장방리 갈대집은 2007년 3월 15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21호로 지정되었다. 영강정이라는 현판이 있는 안채는 1945년에 건축되었고, 아래채와 사랑채는 192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남 김해시 한림면 장방리 279-1번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