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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역, 타임슬립

화순역 1980년 5월의 흔적, 밤새 뒤척이다

 

 

 

화순역 1980년 5월의 흔적, 밤새 뒤척이다

 

 

 

화순하면 으레 고인돌이나 운주사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왠지 벽지산촌일 것 같은 화순에 대한 기억은 이 땅에 들어서는 순간 반신반의하게 된다. 골짜기로 들어가는 길이 궁벽한 곳으로 이어지면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이내 곳곳에 산재해 있는 수많은 유적들을 보고 있노라면 겉핥기로는 세상의 어떤 곳도 제대로 알 수 없음을 화순 땅에서 실감하게 된다.

 

 

처음 예상보다 여행이 속도를 내고 있었다. 능주에서 하룻밤을 자려는 계획은 수정해야 했고 광주행 마지막 기차에 올랐다. 능주를 떠난 기차는 10분 만인 7시 17분에 화순역에 도착했다. 어스름이 내리기 시작한 하늘에 붉은 노을이 구름 속을 물들이고 있을 즈음이었다. 막차여서 그런지 승객들은 다소 늘어진 자세로 느릿느릿 걸음을 옮겼지만 역사에서 나온 역무원들은 마감을 위해 부산스러웠다.

 

 

내일 다시 이곳에서 남쪽으로 가는 기차를 탈 것이지만 늘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역사 이곳저곳을 사진에 담았다. 해가 소나무에 가리웠을 즈음, 등에 무언가 다가왔다는 느낌이 들어 고개를 돌렸다. 역무원이었다. 중년인 그는 손사래를 치며 사진을 계속 찍으라고 했지만 어차피 어둠도 내리기 시작해서 읍내로 가서 빨리 숙소를 잡아야 했기에 역사를 빠져나왔다.

 

 

대합실에서 읍내 가는 버스시간을 물어 광장 끝으로 이어지는 찻길로 향했다. 번듯한 역사와는 달리 골목은 아직 시간의 지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다시 역 건물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광장 구석으로 비석 같은 게 눈에 들어왔다.

 

 

 

5․18민중항쟁 사적비였다. “여기 화순역 광장은 1980년 5․18민중항쟁 당시 화순군민들이 분연히 일어섰던 곳이며 5월 21일 계엄군의 발포 이후 우리도 더 이상 당할 수 없다면서 화순역전파출소에서 총기 750여 정, 실탄 600여 발이 최초로 시민들의 손에 들어간 곳이며 화순 군민들이 이들에게 빵과 음료수 등 식량을 제공한 현장이다”고 적고 있었다.

 

 

 

까만 대리석 비석에는 <화순 그대 영원한 참세상의 고향이여>라는 김준태의 시와 지도, 그림이 새겨져 그날을 기리고 있었다. 아, 그랬었지. 한동안 잊고 있었다는 부끄러운 그 무엇이 가슴 저 밑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일이 5․18이었군. 참 무심도 하지.

 

 

역에서 읍내로 가는 길, 차가 막힌다. 계엄 상황이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이대론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다. 이렇게 답답한 건 운동장에서 벌어진 행사 때문이라는 걸 나중에 알고 나서야 안도를 할 수 있었다.

 

 

버스 기사에게 모텔이 가까이 있는 정류장 아무 곳에나 내려달라고 했다. 딱히 정한 곳도 없어 기사의 말대로 버스를 내려서 모텔을 찾았다. 겉보기에는 제법 근사한 모텔이었다. 방을 잡고 모텔 앞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대충 해결하고 침대에 비스듬히 기댔다.

 

 

깊은 적막이 감돌았다. 그래, 여행 동선을 바꾸어야겠지. 화순탄광, 5․18, 노동자, 학살, 너릿재... 온갖 단어들이 영상으로 겹치면서 이리저리 밤새 뒤척이다 다음날 일정을 5․18 현장을 답사하기로 마음을 먹으면서 잠에 빠져든 모양이다. 다음날 너릿재와 화순경찰서, 터미널 등에서 5․18의 현장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