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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여행/길 위의 사람들

여행, 아흔 살 할머니의 수줍은 미소

 

 

여행, 아흔 살 할머니의 수줍은 미소

 

 

화순여행 이튿날, 화순군내버스터미널을 찾았다. 남평으로 가려면 광주로 나가야 했는데 버스노선을 정확히 몰라 일단은 터미널에서 길을 묻기로 했다.

 

 

조금은 궁벽해 보이는 터미널에서 매표소를 찾고 있는데 곱게 비녀를 찌른 할머니 한 분이 눈에 들어왔다.

 

 

가만히 앉아 버스를 기다리는 할머니의 고운 모습에 끌려 다가갔다. 가까이서 보니 머리에 비녀를 찌르고 있었다. 요즈음 보기 드문 모습이다.

 

 

 

천궁리 2구에 사신다는 조귀순 할머니는 올해 아흔이었다. 천궁리는 화순군 동면에 있는 마을이다.

 

 

사진촬영 허락을 구했다. 여행길에서 노인 분들에게 사진 촬영 허락을 구하면 늘 돌아오는 답은 한결같다. "다 늙은 거 찍으면 뭐 할꼬." 아니나 다를까. 할머니도 똑같은 말을 하신다.

 

  

그러면서도 촬영을 시작하자 이내 한껏 웃으신다. 그 표정이 너무나 해맑아 주위 사람들도 다 같이 웃는다.

 

 

할머니의 맑은 웃음에 수줍음까지 더해 아흔이라는 연세는 금세 잊히고 만다.

 

 

할머니는 유독 수줍음이 많았다. 사진을 찍는 동안 할머니는 수십 년 전 소녀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입을 가려 웃는 모습은 영락없는 새색시다.

 

 

양쪽으로 가르마를 타고 곱게 빗어 넘긴 머리에 비녀를 꽂은 모습. “참말로 고우시다!” 사진을 찍자 사람들이 몰려든다. 할머니는 더욱 부끄러워하시고...

 

 

사진 몇 컷을 더 찍고 할머니께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화순공공도서관 입구에서 벽나리 가는 버스를 탔다.

 

 

 

 

벽나리 들판 가운데에 있는 대리석불입상을 찾았다. 석불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깜짝 놀랐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얼굴이었다. 아! 석불의 얼굴은 바로 아까 터미널에서 본 할머니의 얼굴이었다.

 

 

대리석불입상은 보성과 화순을 지나는 길목에 있다. 사찰에서만 볼 수 있는 불상이 개인의 기복과 마을의 안녕을 비는 길거리에서 쉽게 대하는 불상이 되면서 ‘민불(民佛)’로 불리었다. 그 얼굴도 부처의 엄숙함에서 벗어나 민초들의 소박한 표정이 담겨 있다. 불교와 민간신앙이 섞인 형태로 그 생김새가 매우 친근하다. 석불과 할머니의 얼굴이 닮은 것은 어찌 보면 우연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