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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의 풍류와 멋

경전선 최고의 풍경, 물빛 담은 영벽정

 

 

 

 

 

 

 

 

 

경전선 최고의 풍경, 물빛 담은 영벽정

 

 

 

죽수서원에서 영벽정까지 지석천 제방을 따라 걸었다. 멀리 이양으로 가는 철길이 산기슭을 돌아가고 그 아래 절벽 끝으로 삼충각이 보인다. 그곳은 나중에 들르기로 하고 냇물을 따라 걸었다. 이따금 다슬기를 줍고 천렵을 하는 이들이 소박한 천변 풍경을 만들어낸다.

 

 

아카시아향이 코를 자극한다. 햇살이 금세 얼굴을 태울 기세로 작열한다.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다 손수건을 꺼내 차양을 만든다. 잠시 빛만 가려낼 뿐 이도 소용없다. 몇 번 손수건을 펼치다 간간이 불어오는 강바람을 위안삼아 미련하게 걸었다.

 

 

풀숲 아래에 몸뚱어리를 감춘 채 졸졸 흐르던 냇물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영벽정이 가까워지자 물길은 호수처럼 넓어졌고 아름드리 버드나무가 열을 지어 푸른 강에 머리를 감는 양 저마다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나무의 나이는 200년을 훌쩍 넘겼다.

 

 

영벽정을 언제 지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양팽손과 김종직이 쓴 시 등으로 보아 16세기 후반에 관아에서 지은 것으로 추측된다.

 

 

1632년(인조 10)에 능주 목사 정윤이 아전들의 휴식처로 고쳐 지은 것으로 전한다. 1872년(고종 9)에 화재로 불타 버린 것을 이듬해인 1873년(고종 10)에 목사 한치조가 중건했다. 이후에도 보수를 거듭해오다가 1920년에 주민들이 모은 비용으로 손질하여 고쳐 지었다고 한다. 1982년과 1983년에도 두 차례 보수했으며 1988년 해체․복원했다.

 

 

정자는 앞면 3칸, 옆면 2칸의 2층 누각이다. 대개의 정자가 단층인데 비해 2층으로 지어진 것으로 보아 처음 지어질 때 관에서 지어져 보수를 거듭하면서도 그 형태가 2층을 유지해왔음을 알 수 있다. 기둥은 원래 목조였는데 1988년 해체하여 복원하면서 둥근 두리기둥으로 대체했다. 기둥 위에 마루를 깐 중층의 누각에서 강물을 내려다보는 눈맛이 시원하기 그지없다.

 

 

이 정자의 특이한 점은 지붕 처마를 3겹으로 처리한 점이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정자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큰 영벽정을 더욱 화려하고 웅장하게 보이도록 한다. 기둥머리의 익공형식 공포도 그렇거니와 마루의 둘레를 계자난간으로 장식한 점, 처마 밑에 활주를 세운 것이 그러하다. 또한 서까래가 그대로 드러나는 연등천장인데 가운데 부분만 우물천장으로 한 점도 특이하다. 정자 안에는 9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정자에 오르면 지석강과 연주산이 기둥 사이로 들어오고 병풍 두르듯 빼곡히 걸린 현판들에는 옛 사람들의 글귀가 걸려 있다. 시원한 물줄기에서 불어오는 푸른 산바람에 풍류가 절로 인다.

 

 

지석천 상류에 자리 잡은 영벽정은 연주산을 마주보고 있다. 주위의 경관이 아름답고 많은 시인묵객들이 다녀간 풍류의 산실로 ‘능주팔경’으로 꼽혀 왔다. ‘영벽’이라는 이름은 정자의 맞은편에 있는 연주산의 자태가 지석천의 맑은 물빛에 비춰지는 모습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란다. 산이 비친 강을 담은 영벽정은 운치는 계절이 바뀜에 따라 아름다움도 달라질 게다.

 

 

영벽정이 다시 세상에 알려진 건 기차가 지나면서다. 경전선 철길이 지석강을 가로질러 영벽정 바로 옆을 지나면서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낭만적인 강변 풍경이 빚어졌다

 

 

영벽정 바로 곁을 지나는 기차는 지석천을 건너 화순으로 간다. 능주의 너른 들판을 달리다 지석천에서 잠시 머뭇거린 기차는 90도에 가까운 곡선 구간으로 강을 건너게 된다.

 

 

요즈음이라면 직선으로 곧장 뻗은 철길을 만들겠지만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최소화시키기 위해 강 양쪽의 언덕으로 최대한 붙여 가장 짧은 거리의 철길을 내다보니 크게 휘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 곡선 철로로 인해 오히려 이곳은 멋진 풍경을 연출해낸 것이다.

 

 

 

 

하루에 여덟 번 지나는 여객열차와 간혹 쇳소리를 내며 달리는 화물열차가 이 곡선구간의 풍경의 주연배우다. 아니 배테랑 연기자인 영벽정과 철로는 무덤덤한 편이여서 새로이 주연으로 발탁된 기차만 분주해진다.

 

 

 

 

그럼에도 기차와 어우러진 영벽정의 멋들어진 풍경을 함께 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나마 아침 7시 26분경 능주에서 두 기차가 만나는 일이 더러 있으니 운이라도 좋은 날이면 이곳에서 두 기차가 마주보며 곡선을 돌아 강을 건너는 진풍경이 펼쳐지니 언제 한번 다시 들러야 할 풍경임에는 틀림없겠다. 경전선 최고의 풍경이라고 해도 지나치지는 않겠다.

 

 

 

 

 

영벽정은 1984년 2월 29일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67호로 지정됐다. 능주팔경의 하나로 연주산 밑 지석강의 상류 영벽강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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