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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역, 타임슬립

난 너무나 예쁜 능주역의 마지막 승객이었다

 

 

 

난 너무나 예쁜 능주역의 마지막 승객이었다

 

너무나 예쁜 능주역. 난 이 작은 시골역의 유일한 여행자이자 마지막 승객이었다.

 

 

영벽정에서 다시 능주로 향했다. 예정대로라면 오늘 능주에서 하룻밤을 묵어야겠지만 생각보다 일찍 여정이 끝나 화순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화순으로 가는 마지막 기차는 저녁 7시 7분에 있었다.

 

 

능주역에 다다르자 오랜 간판을 단 역전 슈퍼가 보인다. 기차역에 사람이 붐볐을 때만 해도 이 가게는 제법 많은 손님들이 들락거렸을 것이다.

 

 

역 앞 광장은 꽤나 넓었다. 광주와 화순 일대를 오가는 버스가 이곳을 거쳐 제 갈 길을 찾아가는 모양인지 공터에는 버스가 두어 대 정차해 있었다.

 

 

넓은 광장 끝에 홀로 오도카니 서 있는 능주역은 주변과는 조금은 어색한 듯 무슨 놀이공원의 건물처럼 홀로 뻘쭘하게 서 있었다.

 

 

역은 아담했다.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마저 감도는 역사엔 손님이라곤 없었다. 역무원도 잠시 자리를 비웠는지 대합실에는 다 늦은 오후 여행자의 긴 그림자만 벽에 얼른거리고 있었다.

 

 

능주역은 경전선에 있는 기차역으로 화순역과 이양역 사이에 있다. 1930년 12월 25일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1945년 10월 5일 역사가 소실되자 1957년 1월 10일에 지금의 역사를 준공했다. 이 아담하고 예쁜 역 건물이 지어진 지 50년을 훌쩍 넘긴 셈이다. 무궁화호가 하루 8회 왕복하고 있다. 작은 겉보기와는 달리 능주역은 지금은 폐역이 된 만수역, 석정리역까지 관리하고 있는 엄연한 보통역이다.

 

 

대합실은 너무나 깔끔했다. 시골의 간이역들이 대개 사람의 온기조차 느낄 수 없는 썰렁함과 버려진 듯한 황량함이 감도는데 이곳은 대합실 안이 갖은 화초로 꾸며져 있었다.

 

 

정성스레 가꾼 화분들과 한쪽에 전시된 수석들,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액자들은 사람의 손길이 하나하나 미쳤음을 엿볼 수 있다.

 

 

역사 밖으로 나와 철로에 들어서면 이 역을 가꾸느라 얼마나 역무원들이 애썼는지 알 수 있다.

 

 

대합실에서 승강장으로 가는 길 좌우에 온갖 꽃을 심은 화분들이 양옆으로 전시돼 있다. 안에서 보이지 않던 역무원이 화분에 물을 주고 있었다.

 

 

작은 대합실과는 달리 승강장은 꽤나 넓다. 능주역이 작은 간이역이 아니라 인근의 역까지 관리하는 보통역임을 알 수 있다.

 

 

역무원이 없는 작은 간이역과는 달리 능주역은 보통역이다. 역장을 포함해서 3교대로 근무하는 직원들까지 모두 네 명이 근무한다. 작은 역만 보고 간이역으로 오해할 뻔했다. 허기야 간이역이면 어떻고 보통역이면 어떠한가. 그저 추억이 오래도록 머물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인 것을.

 

 

역무원이 다가왔다. 이 역을 찾은 유일한 여행자이자 마지막 승객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배낭과 카메라를 메고 시골역을 찾은 여행자의 행색이 사뭇 궁금했는지, 요리조리 캐물었다.

 

 

해가 뉘엿뉘엿 역사 너머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역무원들은 좋은 여행이 되라며 역사 안으로 들어갔고 여행자 홀로 승강장에 남았다.

 

 

7시 7분, 어스름이 내릴 즈음 화순으로 가는 기차가 들어왔다.

 

 

 

추천은 새로운 여행의 시작, 오른쪽 '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