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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에 머물다

숨이 멎을 듯한 아름다움에 놀라고 또 놀라다

 

 

 

 

 

놀라고 또 놀라고, 숨이 멎을 듯한 아름다움, 쌍봉사철감선사탑

 

 

 

북적대는 법당을 벗어나 철감선사 승탑 가는 길로 들어섰다. 우거진 대밭에선 초의선사의 선바람이 불어왔다.

 

 

산비탈에 담장을 두른 승탑에는 오랜 감나무 한 그루가 초입을 지키고 있었다. 노승을 시중드는 동자승처럼 오랜 세월 속에 나무도 속절없이 고목이 되었다. 철감선사는 798년(원성왕 14)에 태어나 18세에 출가했고 868년(경문왕 8)에 쌍봉사에서 입적했다.

 

쌍봉사라는 이름도 철감선사의 호에서 비롯된 것이다. 국보 제57호로 지정된 이 승탑은 8각 원당형의 기본형이다. 전체를 대강 눈대중으로 보고 각 부분을 살펴보느라 눈길이 절로 바빠진다.

 

 

아래부터 눈길을 두어 찬찬히 살펴보았다. 각이 없는 둥근 밑돌(하대석) 하단에는 구름무늬가 가득하고, 그 사이로 꿈틀거리는 용의 모습이 언뜻언뜻 보인다. 팔각인 밑돌(하대석) 상단은 엎드리거나 고개를 젖혀 뒤를 돌아보거나 뒷발을 물고 있는 다양한 사자 상들이 생생하게 새겨져 있다.

 

 

가운데돌(중대석)도 역시 팔각인데 각 모서리를 연잎으로 기둥을 조각하고 그 사이 면에 안상을 새긴 후 그 가운데에 얼굴이 매우 큰 가릉빈가(극락정토에 살며 사람의 얼굴과 팔에 새의 몸을 가진 불경에 나오는 상상의 새)를 새겨 넣었다. 둥근 연화대와 팔각의 몸돌받침인 윗돌(상대석)은 훌쩍 높다. 16장의 연꽃잎이 금방이라도 바람에 날릴 듯 사실적인데 화려한 꽃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몸돌받침에는 상다리 모양의 기둥이 새겨졌고 그 사이에 안상을 깊게 판 후 비파, 나팔, 바라 등의 악기를 연주하는 가릉빈가를 하나씩 새겼다. 상대석과 몸돌 사이도 그냥 두지 않고 가느다란 선 무늬를 넣거나 연꽃잎을 새기는 등 세밀하기 그지없다.

 

 

팔각의 몸돌(탑신)에는 배흘림기둥을 세웠다. 목조건축의 짜임이 뚜렷한 몸돌 윗부분도 그러하거니와 앞뒤로 자물통이 달린 문이 나 있고 그 좌우에 사천왕상이 있으며 옷자락을 휘날리는 비천상이 한 쌍씩 두 면에 새겨져 있다. 지붕돌 또한 팔각인데 금방이라도 빗물이 자르르 흘러내릴 것 같은 낙수면과 기왓골의 정연함에 절로 감탄이 나온다. 지붕돌에 이르러 조각 솜씨는 유감없이 발휘되어 절정에 달한다.

 

 

동전보다 작은 지름 2cm의 수막새기와 안에 연꽃무늬를 새기고 처마 밑에 연목과 부연의 서까래를 아주 섬세하게 새겨 넣고 그것도 부족했는지 처마 아랫면에 비천상, 향로, 꽃무늬를 빈틈없이 새겨 넣은 걸 보고 있노라면 장인의 경지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마치 목조 건축물의 추녀를 그대로 보는 듯하다.

 

 

 

필생의 작업으로 신앙적 발원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경지를 보여주는 걸작이다. 석조물임에도 목조건물의 형식까지 하나하나 표현된 조각술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 정교하고 아름다운 걸작을 보고 있노라니 숨이 멎는 듯했다. 어느 것 하나 허투로 내버려두지 않고 새긴 세부는 지극히 화려하지만 전체는 장중한 느낌을 준다. 다만 상륜부가 없어지고 어느 때인가 상했을 지붕돌 추녀의 깨짐에 감동 이상의 아픔이 무겁게 저려온다.

 

 

이 승탑에는 온갖 찬사가 아낌없이 쏟아진다. 신라의 여러 승탑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최대의 걸작이라는데 누구든 쉽게 동의를 하게 된다. 아니 우리나라 전시대에 걸쳐 첫손에 꼽히는 걸작 중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쩜 이리도 아름답다 말인가. 국보란 이름이 결코 아깝지 않은, 아니 그 아름다움은 국보라는 도식의 너머에 있었다. 연곡사의 동승탑을 처음 봤을 때의 그 전율이 다시 온몸에 느껴진다. 십 수 년 전 분명 이 승탑을 분명 보았음에도 다시 전율이 오는 건 무슨 이유일까.

 

 

바로 곁에 있는 철감선사탑비(보물 제170호)는 또한 어떠한가. 그 능청스러운 표정하며 왼발은 땅에 붙은 채로 막 걸음을 떼려 세 발가락을 살짝 든 오른발을 보면 금방이라도 뚜벅뚜벅 걸어 나올 태세다. 아주 생동감 있고 사실적인 조각이다.

 

 

사각의 바닥돌 위에 용의 머리를 한 거북은 여의주를 물고 있다. 정수리에는 뿔을 나타낸 듯한 돌기가 있고 등껍질에는 두 겹으로 된 귀갑문이 정연하게 배치되어 있다. 이 모든 것들은 마치 귀부의 전체가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이수에는 여의주를 다투는 용조각과 구름무늬가 현란하게 새겨져 있다. 앞면 가운데에 “쌍봉산철감선사탑비”라는 명문이 두 줄로 새겨져 있다. 비신은 일제강점기에 잃어버렸다고 한다. 철감선사탑비는 보물 제170호로 ‘철감’은 시호이며 탑의 이름은 ‘징소’라 하였다. 다시 승탑을 살피기 시작했다. 행여나 미처 보지 못한 것이 있을 수 있겠다 싶어서다. 보고 또 봐도 놀랍고 놀라울 뿐이다.

 

 

이따금 오가던 사람들의 발길도 뚝 끊겼다. 할아버지 한 분이 느릿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안내문을 한참이나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승탑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리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 그 긴 한숨소리에 여행자는 얼어붙는 듯했다. 천 년이 넘은 승탑과 할아버지는 이미 둘이 아닌 하나로 된 듯했다.

 

 

 

할아버지가 승탑을 떠나고 난 후에도 여행자는 한동안 발길을 돌리지 못했다. 승탑 주위를 맴돌았다. 위에서 보고 아래서 올려보고 옆으로 뉘어 보기를 몇 차례, 자꾸 돌아봐지는 고개를 애써 돌리며 승탑을 내려왔다.

 

 

승탑에서 내려와 너와정자에 홀로 앉았다. 앞산에서 몰려온 바람이 잠시 길을 잃고 정자에서 멈췄다. 구름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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