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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역, 타임슬립

기차에서 이런 풍경이... 입이 딱 벌어지는 여긴 어디?

 

 

 

기차에서 이런 풍경이... 입이 딱 벌어지는 여긴 어디?

  - 새벽 첫 기차로 백두대간을 넘다 -

 

동해역은 한산했다. 도시라기보다는 시골 소읍처럼 느껴질 정도로 거리는 한산했고 휑하기까지 했다. 역 주위 허름한 모텔에 짐을 풀고 거리로 나왔다. 이따금 보이는 식당들에는 손님들이 넘쳐났다. 인근 시멘트 공장에서 막 일을 끝낸 노동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소주 한잔을 곁들이며 저녁을 먹고 있었다. 뿌연 담배 연기와 부딪히는 소주잔에 몇 번 식당 안을 기웃거리다 조금은 조용한 어느 식당의 문을 열었다.

 

 

메뉴는 육개장. 김치와 깍두기가 찬의 전부였지만 육개장의 맛은 기대 이상이었다. 아까부터 40대 정도로 보이는 사내와 인생 이야기를 걸쭉하게 나누고 있던 주인인 듯한 사내가 조심스럽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놀랍게도 동향사람이었다. 자신을 학원장이라고 소개했던 40대쯤 보이는 사내도 역시 동향사람이었다. 여행 중에, 그것도 강원도의 외딴 도시에서 고향이 같은 사람을 만나기는 흔치 않은 일이었다. 예전 청소년국가대표를 지낸 축구선수이기도 했던 식당 주인인 사내는 경남 FC 최진한 감독과는 피가 섞인 형제라고 했다. 이 기막힌 만남에 밤새 술이라도 퍼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다음날 백두대간을 넘어야 하는 일정 때문에 훗날 영동선 취재 때 보기로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새벽 첫 기차를 타고 백두대간을 넘다

 

새벽 6시 58분, 백두대간을 넘을 기차가 동해역으로 들어왔다. 역 주위에는 무릉도원과 추암 일출 사진이 동해의 상징마냥 곳곳에 붙어져 있다. 승강장에는 이른 아침인데도 첫 기차를 타려는 이들로 꽤나 붐볐다. 선로마다 길게 늘어선 화물열차가 이곳이 백두대간의 중요한 자원의 보고임을 묵직하게 말해주고 있는 듯했다.

 

 

동해역을 출발한 기차는 미로․신기․마차리․고사리 등 폐역이 된 간이역들을 지나 도계역에서 잠시 멈췄다. 영동선답게 골짜기로 철길은 길게 이어졌다. 도계는 산중의 마을이지만 제법 집들이 빼곡하고 옛 탄광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광부들로 들썩였을 옛 영화는 잿빛 그림자 속에 묻힌 듯했다. 도계에서 다시 기차는 가픈 숨을 토해내며 동백산․백산을 지난다.

 

 

'고원관광 석탄의 고장 철암역'이라고 검게 새긴 나무 푯말이 문득 시야로 들어온다. 철암이다. 주변이 온통 검다. 순식간에 모든 것이 잿빛에서 흑색으로 바뀌었다. 온통 벌건 속살을 드러내던 산은 이내 검은 재에 제빛을 잃고 온전히 타버린 검은 몸뚱어리만 남긴다.

 

 

영동선의 백미, 백두대간 협곡을 달리다

 

철암에서 본격적인 백두대간 협곡을 기차는 달리기 시작했다. 여태까지의 풍경은 서막에 불과했다. 철암․동점․석포․승부․양원․분천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 협곡 철도는 영동선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전형적인 산간마을을 달리던 기차가 석포역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강원도를 떠난 기차가 경북 봉화에 들어서는 순간이다. 이곳에는 낙동강을 따라 승부역까지는 12km 정도의 트레킹 길이 있다. 이 깊은 산중에 공장들이 더러 보인다. 사람의 흔적이라고 찾기 힘든 오지지만 땅속에 묻어둔 엄청난 보물이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으리라.

 

 

 

협곡의 절경은 잠시도 쉬지 않는다. 위태위태할 정도로 굽이치는 협곡과 천길 낭떠러지를 기차는 아랑곳하지 않고 '칙칙폭폭' 거친 숨을 토하며 내달렸다. 기차를 달리게 하는 힘은 오로지 이 기막힌 풍경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기차가 지나는 자리가 곧 풍경이 되고 그 풍경이 차창에 액자처럼 그대로 담긴다.

 

 

 

 

“하늘도 세 평이요 / 꽃밭도 세 평이니 / 영동의 심장이요 / 수송의 동맥이다” 기차가 승부역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보이는 글귀다. 얼마나 험준했으면 하늘도 땅도 세 평이었을까. 석포와 양원 사이에 있는 승부역은 하늘과 가장 가까운 역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의 아련한 추억을 일으킨다.

 

 

승부에서도 절경은 멈추지 않는다.

 

 

 

아무리 끊어내려 해도 멈추지 않는 협곡의 비경은 양원역이라는 작은 간이역에서 잠시 곁을 둔다. 손바닥만 한 밭뙈기와 산 아래 조용히 들어앉은 몇몇 집들이 이곳이 깊은 산골임을 말하고 있었다. 이 깊은 산중마을에 철길이 놓이고 그 길을 따라 사람들은 세상 밖으로 출입을 시작했다. 이 철도야말로 세상과 이곳을 잇는 유일한 끈인 셈이다.

 

 

양원역은 주민들의 요청에 의해 기차가 서기 시작했고 작고 소박한 역사는 마을 주민들의 힘으로 지었다. 철도여행자들의 마지막 은둔처로 알려진 양원역은 이제 제법 입소문이 나면서 찾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다. 엉덩이를 들썩들썩, 여행자만 그런 게 아니다. 기차가 내어주는 풍경에 따라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옮겨 다닌다.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들은 주민이고 이쪽 창으로 저쪽 창으로 움직이는 이들은 외지인들이다.

 

 

협곡 풍경이 절정을 향해 치닫는다. 계곡을 건너기도 하고 산비탈을 가로질러 절벽을 뚫고 지나가기도 한다. 깊은 산중에서 역까지 나오는 유일한 길이기도 한 계곡에 걸친 잠수다리들도 이곳에선 멋진 풍경이 된다.

 

 

 

분천에 이르자 협곡도 조금은 완만해진다. 그렇다고 절경이 멈춘 것은 아니다. 다만 아주 느리게 눈치껏 대단원의 막을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차창 너머로 분홍색으로 단장한 협곡열차 'V-train'이 보인다. 둥근 'O-train' 녹색 표지판도 서 있다.

 

 

지난 4월에 첫 운행을 한 백두대간 협곡열차 'V-train'과 'O-train'도 이곳을 출발하거나 거쳐 가거나 멈춘다.

 

 

‘억지춘양’을 지나 영동선의 종착역, 영주역에 도착하다

 

현동을 지난 기차는 임기를 지나자 춘양목으로 유명한 춘양으로 들어섰다.

 

 

절벽과 계곡만 보이던 풍경에 들판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더니 제법 우람한 소나무들이 차창을 스쳐 지나간다. 물길은 더욱 깊어지고 넓어진다. 빨리 흐르는 대신 크게 감아 돌고 깊이 나아간다. ‘억지춘양’의 말이 이곳에서 나왔다지. 크게 곡선을 그어 달리던 기차는 법전․봉성․거촌․봉화를 지난다.

 

 

 

기와집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다. 산중에선 볼 수 없었던 고택들이 봉화 닭실마을에 이르자 대촌의 모습을 보여준다. 협곡의 척박한 것들이 이곳에 이르러 내를 이루고 들판을 만들어 제법 사람이 살기 좋은 땅으로 바뀐 것일 게다.

 

 

봉화에서 문단이라는 작은 간이역을 지나니 드디어 영동선의 종착역, 영주역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전 9시하고도 47분을 넘긴 시각이었다.  

 

 

영주역에서 다시 중앙선으로 선로를 바꾼 기차는 문수․평은․옹천․마사․이하를 거쳐 안동을 향해 달렸다. ‘동쪽이 편안한 땅’ 안동 시내를 낙동강이 가로지른다. 낙강과 동강이 합류하여 700리 유장한 물길을 이루고 있다. 무릉․운산․단촌․의성에 이르자 드넓은 들판이 펼쳐진다. 온통 마늘밭이다. 수 킬로미터에 걸쳐 펼쳐졌던 마늘밭 풍경은 어린이공원에 온 듯한 탑리의 특이한 역사가 눈에 들어오자 끝이 났다.

 

 

우보․화본․봉림․신녕․화산․북영천․영천․봉정․하양․청천․금강을 지난 기차가 동대구역에서 멈췄다. 동대구역에서 다시 수많은 경부선의 역들을 지나 밀양 삼랑진역에서 기차는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경전선으로 들어섰다. 새벽 여섯 시에 출발한 영동선 여행은 오후 4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 전날 영동선의 출발역 강릉에서 출발한 시각을 따지자면 꼬박 하루가 걸린 셈이다. 영동선․중앙선․경부선․경전선 4개의 노선을 갈아탄 셈이기도 하다. 이로써 강원도 고성에서 경남 진주까지의 1박2일 기차와 버스여행은 끝이 났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온몸이 저려왔고 피가 멈춘 듯했다. 허리가 끊어지는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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