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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선, 남도 800리

섬진강 명물 '벚굴'을 아십니까. 경전선 800리

 

 

 

 

 

 

 

 

 

섬진강 명물 '벚굴'을 아십니까

〔경전선 남도 800리, 삶의 풍경 27〕 옥곡역에서 망덕포구를 가다 1

 

 

 

 

 

 

옥곡역은 1968년 2월 7일 경전선 광양 진주 구간이 개통되면서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 김종길

 


4월 7일 10시 36분, 경전선 순천행 기차를 탔다. 바람이 드셌다. 4월인데도 아직 봄은 멀게만 느껴졌다. 날씨 탓인지 기차엔 승객들도 뜸했다. 섬진강을 건넌 기차는 좁은 협곡을 가로지르더니 이내 어두운 터널로 들어간다. 강을 건너도 풍경은 별반 차이가 없다. 진상에 이르러서야 제법 너른 들판이 나타나고 이곳이 전라도 땅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진상역 다음은 옥곡역. 옥곡(玉谷), 이름 그대로 보배로운 땅이다. 예부터 땅이 비옥하여 사람이 살기 좋은 땅으로 전해진다. 지금의 옥곡면 신금리에 '옥곡소'가 있어서 마을 이름으로 사용됐다고 전해진다. 1968년 2월 7일 경전선 광양 진주 구간이 개통되면서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한 옥곡역은 진상역과 골약역 사이에 있다. 역사는 이듬해인 1969년 3월 2일에 준공됐다. 하루 열 번 무궁화호가 이 역을 지나간다. 기차가 떠난 승차장에 혼자 남았다. 역 광장에 덩그러니 놓인 빨간 우체통 하나.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 반가우면서도 쓸쓸하다.

옥곡역은 진상역과 골약역 사이에 있다. 역사는 1969년 3월 2일에 준공됐다.
ⓒ 김종길

 


포구로 가는 버스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도로를 건너 동네슈퍼에서 버스 시간을 물었다. 휴일이라 버스가 대중없다고 했다. 모자를 뒤집어쓰고 추위에 떨길 삼십여 분, 결국 걸음을 옮겼다. 소재지로 가서 택시라도 잡아탈 요량이었다. 언덕 위 초등학교 정문에 벚꽃이 후드득 지기 시작했다.

그리운 남쪽, 벚꽃 지는 망덕포구의 봄

50여 분을 기다린 끝에 도착한 버스는 30분이 채 지나지 않아 낯선 포구에 여행자를 내려줬다. 출발할 때 세 명이었던 승객은 내린 지 오래, 혼자 남게 됐다. 기사는 종점인 포구까지 갈 거냐고 물었다. 거센 바람에 벚꽃 잎이 이리저리 날렸고 작은 포구의 메마른 잿빛 갯벌로 어선이 두어 척 보였다. 그냥 걷겠다고 했다.

경전선 옥곡역이나 진상역에서 내려 17번 버스를 타면 망덕포구에 닿는다.
ⓒ 김종길

 


포구를 빙 둘러싼 벚나무 뒤로 봉긋하게 솟은 산이 보였다. 백두대간의 출발지이자 종착지로 알려진 망덕산이다. 그 아래에 있는 망덕포구는 그 옛날 사람들이 섬진강을 거슬러 다압, 구례, 곡성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광양만을 한눈에 파수(망)할 수 있는 곳이라 하여 '망뎅이'라 이름했는데 한자의 음을 빌려 '망덕(望德)'이라 표기했다. 혹은 왜적의 침입을 망보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도 하고 전북 덕유산을 바라보고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진남루에 올라 망덕포구를 내려다보았다. "내 고향 망덕포구 새 우는 마을/울고 웃던 그 시절이 하도 그리워/허둥지둥 봄바람에 찾아왔건만/님은 가고 강 언덕에 물새만 운다" 노래비에 적힌 강석오가 작사·작곡했다는 <내 고향 망덕포구> 노랫말을 흥얼거려본다. 바람은 여전히 매서웠고 가을이 아닌데도 갈대의 서걱거리는 소리가 귀청을 때린다.

망덕포구에는 벚꽃이 흐드러졌다.
ⓒ 김종길

 


 

망덕포구 전경, 우럭조개가 바구니에 가득하다.
ⓒ 김종길

 


말발굽모양의 포구를 한 바퀴 빙 둘러보고 짧지만, 강렬한 벚꽃 가로수길을 걸어 바다처럼 탁 트인 바깥 강의 포구로 나갔다. 강을 따라서 횟집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고 잘 정리된 나무 데크와 긴 벤치가 중간 중간 설치돼 있었다. 다소 생뚱맞다는 생각을 했다. 강은 바람에 새파랗게 질렸고 멀리 시린 하늘을 뚫고 하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광양제철소다. 바다 같은 섬진강과 호수 같은 광양만이 남해로 흘러가는 망덕포구는 민물과 바닷물이 섞여 있는 기수지역이다. 전어, 장어, 백합, 벚굴, 재첩이 유명해 사시사철 바다의 진미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전라북도, 전라남도, 경상남도 등 3개의 도를 굽이굽이 돌아 550리 물길을 내달린 섬진강이 바다와 만나는 이곳의 풍성한 어장은 전어철에 절정을 이룬다. 전어철인 가을이 되면 두 척의 배가 한 선단으로 짝을 맞춰 바다로 나가 전어를 잡는다. 지금은 금호도와 태인도를 막아 광양제철소가 들어섰지만 예전엔 이곳 망덕포구를 중심으로 겨울철 김 양식과 가을철 전어잡이가 흥흥했다.

전어잡이 배를 띄우고 만선의 기쁨을, 구성지고 흥겨운 가락의 전어잡이 노래를 불러 흥을 돋았다. 지금까지도 전어잡이소리보존회에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정작 노래가 전승되고 있는 곳은 이곳이 아니라 경남 사천 마도의 갈방아소리와, 이곳에서 섬진강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있는 진월면 신아리 신답마을의 진(느린)가래소리와 농악인 풍장소리가 전승되고 있다.

망덕포구 일대가 전어의 본고장임을 알리는 전어조형물 '망뎅이'와 망덕산
ⓒ 김종길

 


전국에서 처음으로 전어를 활어(活魚)로 개발한 곳 또한 이곳 망덕포구였다.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말이 전해져 내려올 만큼 고소한 맛을 가진 가을철 별미가 망덕포구의 대표 어종이다. 그래서 망덕포구 가운데 갯벌에는 전어의 본고장임을 알리는 거대한 전어 조형물인 '망뎅이'가 설치돼 있다. 지금도 해마다 9월이면 이곳 포구 일대에서 전어축제가 10년 넘게 성대하게 열리고 있다.

벚꽃 피고 지는 이맘 때가 가장 맛나요

포구를 따라 제법 장하게 늘어선 벚나무에서 벚꽃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절정의 흐드러진 벚꽃도 이제 며칠 후면 사라질 테고 그 자리엔 푸른 잎이 돋아나겠다. 벚꽃이 피고 지는 이맘때 이곳 섬진강 하구에는 전국의 내로라하는 식도락가들이 모여든다.

벚꽃이 필 무렵 가장 맛있다는 벚굴은 이곳의 명물이다.
ⓒ 김종길

 


바로 '벚굴' 때문이다. 섬진강이 벚꽃 향기로 가득 차면 강물 아래서도 벚꽃처럼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것이 벚굴이다. 망덕포구에 즐비한 횟집들에도 너나 할 것 없이 벚굴 현수막을 내걸었다. 바람이 드센 데다 날씨마저 제법 쌀쌀해 포구의 거리는 한산했다. 그럼에도 이따금 포구를 찾은 관광버스에서 수십 명의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횟집 안으로 사라지길 반복했다.

이곳까지 왔으니 벚굴의 맛은 봐야겠다. 용기를 내어 식당에 들어갔으나 혼자라는 말에 번번이 거절당했다. 하는 수 없이 사진이라도 담을 요량으로 배알도가 마주보이는 마지막 횟집 앞에 섰을 땐 비장하기까지 했다. 마침 젊은 총각이 벚굴을 손질하고 있었고, 촬영을 부탁했더니 사장인 형에게 안내했다. 다부진 인상을 한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악수를 청했다. '망덕배알도횟집' 강철 사장이다. 그는 물어볼 새도 없이 벚굴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550리 섬진강 물길과 남해의 푸른 바다가 만나는 섬진강 하구의 3~4m 물속 강바닥 바위에 붙어 자라는 벚굴은 잠수부들이 일일이 손으로 채취한다. 물때를 맞춰야 하고 손으로 직접 따야 하는 만큼 하루 채취량은 300~400kg 정도에 불과하단다. 하루에 4시간 정도 잠수를 하고 한 달에 대개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작업을 한다.

해마다 벚꽃이 피고 지는 이맘때쯤이면 망덕포구는 벚굴을 먹기 위해 전국의 식도락가들이 모여든다.
ⓒ 김종길

 


 

 
어른 손바닥보다 더 큰 섬진강의 명물 '벚굴'
ⓒ 김종길

 


벚굴은 원래 예전에는 '벙굴'로 불리다 1980년대 중반 이후에 어느 잠수부가 그 모양을 보고 '벚굴'이라 불렀던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강 속에서 먹이를 먹기 위해 서너 개가 한데 모여 입을 벌린 모습이 벚나무에 벚꽃이 핀 것처럼 하얗고 아름답다'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바다 굴과 대비해 강에서 난다고 해서 '강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벚꽃이 피는 계절이 제철이고, 생긴 모양도 벚꽃 같으니 이맘때가 가장 좋다고 했다.

무엇보다 산란을 앞둔 3, 4월이 영양가가 높고 맛이 좋단다. 해마다 벚꽃이 피고 지는 이맘때쯤이면 포구는 사람들로 미어터지는데 오늘은 날씨 탓인지 영 신통치 않다고 했다. 이곳 광양시 진월면 망덕포구와 간 건너 하동군 고전면 전도리 신방포구가 벚굴 자생지로 유명하다. 두 곳 다 자연산 벚굴 채취가 가능한 섬진강 하구에 있다.

이게 굴 맞아? 엄청난 크기의 섬진강 '벚굴' 아세요

주인 강씨가 팔기 위해 양은대야에 담은 벚굴 중 큰 놈을 꺼내더니 손질하기 시작했다. 손질이라고 해봐야 칼로 껍데기를 반으로 갈라 허연 알맹이를 드러내는 것이다. 우윳빛이 감도는 벚굴의 속살은 어찌 보면 징그럽다 싶을 정도로 흐물흐물해 한편으론 서름서름했다.

어른 얼굴만 한 벚굴을 보면 그 크기에 일단 놀라게 된다.
ⓒ 김종길

 


벚굴의 크기는 엄청났다. 벚굴을 처음 보는 사람은 어른 얼굴만 한 그 엄청난 크기에 압도당한다. 그 크기가 작게는 20∼30㎝에서 크게는 무려 40㎝에 이른다. 바다 굴과 비교해보면 그 크기가 5~10배 가까이 된다. 그 크기에 놀라 벚굴을 이리저리 보고 있는데 강 씨가 동생을 시키더니 초고추장을 갖고 오게 했다. 통째로 벌건 초고추장을 굴 위에 막 짜내기 시작했다.

"한번 드셔보슈? 어차피 딴 거니께."

사양할 사이도 없이 벚굴은 이미 입안에 들어가고 있었다. 한입에 먹기도 힘든 상황, 손으로 꾸역꾸역 집어넣기를 몇 번 만에 입안은 벚굴로 가득 찼다. 씹기도 힘든 상황, 어물쩍어물쩍 씹었더니 입안에서 몸으로 서서히 맛이 퍼지기 시작했다.

뜻밖에 식감은 풍부했다. 그 맛은 아주 달콤한 듯하면서도 약간 짭조름한 맛이 비쳤다. 그래도 바다의 굴보다는 짭잘한 맛이 덜했고 굴 특유의 비릿한 맛도 덜했다. 향이 옅어 굴을 싫어하는 사람일지라도 벚굴 만큼은 먹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뽀얗고 오동통하니 쌀뜨물처럼 뽀얀 벚굴은 의외로 담백하고 부드러웠다. 하나를 먹었을 뿐인데 포만감이 들 정도였다.

벚굴은 단백질과 무기질, 비타민, 아미노산 같은 영양분도 풍부해 성인병 예방과 기력 증진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곳 주민들은 우스갯소리로 벚굴을 일러 '강 속 비아그라'라든가 '살아있는 보약'으로 부르기도 한단다. 벚굴은 초고추장에 찍어 날로 먹기도 하지만 대개는 구워서 먹는다. 벚굴을 먹는 방법은 바다의 굴처럼 쪄서도 먹고 계란을 입혀서 굴전으로 부쳐 먹기도 한다. 때론 튀기기도 하고 영양죽으로도 먹는다.

이곳 포구에선 횟집마다 별도로 야외에 포장마차 같은 구조물이 있어 이곳에서 벚굴을 구워먹을 수 있다. 예전에는 강을 따라 포장마차가 죽 늘어서 있어 이곳의 명물이었는데 지금은 미관상의 문제로 안쪽으로 다 옮겼다. 글쎄다. 오염문제만 아니라면 강변 포구를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있는 포장마차도 이곳만의 장점으로 살릴 수 있지 않을까?

이쯤에서 벚굴의 가격이 궁금해진다. 이곳에선 5㎏ 기준으로 4만 원 선이다. 2~3명이 먹을 수 있는 양이다. 택배로도 주문할 수 있는데 택배를 전문으로 하는 곳에선 도매가로 10kg 한 상자에 3만8천 원~5만 원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주인 강씨의 호의가 아니었다면 이곳까지 와서 벚굴의 맛도 못 볼 뻔했다. 바닷물 역류현상과 제철소 등 여러 이유로 벚굴의 생산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했다. 종패 등으로 벚굴의 생산을 늘리려 애쓰지만 그것의 실효성도 의문이라고 강철씨는 오늘도 걱정이 태산이다.

망덕포구는 섬진강을 따라 포구가 형성돼 있다.

ⓒ 김종길

 

 

 

☞ 망덕포구(정병욱 가옥)는 옥곡역정류장이나 진상역 앞 진상정류장 혹은 항만물류고정류장에서 17번 버스를 타면 된다.

 

※ 이 글은 '코레일'과 '오마이뉴스'에 <경전선 남도 800리, 삶의 풍경>으로 연재 중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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