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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로 가는 길

비 오는 날, 암자에서 커피 내리는 스님

 

 

 

 

 

 

비 오는 날, 암자에서 커피 내리는 스님

- 커피향 가득한 암자의 은근한 오후 

 

 

지난 19일 강원도 고성에 갔다가 화진포 옆 암자,

정수암에서 하룻밤을 머물게 됐다.

정수암은 법보정사로도 불리는 산중의 작은 암자다.

이튿날 아침부터 내리던 비는 오후가 되어도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리저리 소일을 하던 스님, 커피 원두를 꺼내더니 볶기 시작했다.

 

 

커피의 원두는 약간 노란빛을 띤 회색이었다.

이 밋밋한 색감이 나중에 놀라운 변신을 하게 된다.

프라이팬에서 원두를 볶아내는 스님의 손놀림은 거의 '커피신공'이다.

 

 

참, 커피 볶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몇 번을 볶고 식히는 과정을 거쳤더니 어느새 은근한 커피향이 온 방을 채우기 시작했다.

혹시나 너무 태우지는 않았나 했더니 역시나 스님의 오랜 내공 탓인지 시간이 지나니 아주 빛깔 좋은 색이 나왔다.

 

 

달구어진 커피원두가 식는 동안 우리는 잠시 외출,

 그 유명한 산북막국수집에 들러 막국수를 맛본 후 화진포를 유람하고 암자로 다시 돌아왔다.

 

 

스님은 법당 옆 다실에서 커피를 손수 갈기 시작했다.

대개 암자하면 차를 먼저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커피 또한 넓게 보면 차와 다름없음이라.

 

 

커피든, 차든 굳이 그 종을 구분 짓기보다는 그 정성을 구분 지어야 마땅할 게다.

커피 한 잔을 내리는데도 스님은 온 신경을 집중하여 정성을 들인다.

 

 

커피를 볶고 내리는 데만 1시간 이상은 족히 걸린 듯하다.

모든 것이 느리기만 하다. 

암자 뜰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잘게 잘 부서진 진한 갈색의 커피가루는 매혹적이기까지 하다.

향이 온 다실을 가득 채운다.

 

 

뜨거운 물을 부으니

 

 

거품이 서서히 올라오고

 

 

보글보글

 

 

부풀어 오를 대로 오른 커피의 거품이 탐스럽다.

 

 

커피향이 코를 자극하고

 

 

원액이 아래로 흘러내리면

 

 

다시 뜨거운 물을 붓고

 

 

드디어 진한 원액이 각자의 소박한 컵에 담긴다.

진한 에스프레소에 각자의 취향에 따라 적당한 비율을 만든다.

 

비는 여전히 하염없이 내렸고

암자의 오후는 느리게 은근히 가고 있었다.

 

 

☞ 정수암(법보정사, 033-682-4652)은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산학리 119에 있다. 화진포가 지척이다.

 

추천은 새로운 여행의 시작, 오른쪽 '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