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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기행

진해의 참모습은 벚꽃 너머 골목길에 있더라

 

 

 

 

 

 

진해의 참모습은 벚꽃 너머 골목길에 있더라

벚꽃 너머 골목길을 걸으니 진해의 참모습이 보인다

 

 

▲ 장옥거리

 

관광객들로 미어터지던 여좌천을 빠져나와 진해역으로 돌아왔더니 거리는 한산해졌다. 진해역에서 중원로터리를 거쳐 남원로터리 방면으로 걸었다. 예전 일제강점기 때에는 진해역에서 남원로터리까지의 이 길을 '귤통(橘通)'이라 불렀다. 일제에 의해 철저하게 계획된 진해 시가지는 진해역에서 중원로터리, 남원로터리, 북원로터리로 이어진다. 지금도 일제강점기 때의 거리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 일본식 가옥들을 여기저기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 장옥거리

 

요항부(해군) 병원장 관사였던 선학곰탕(일본식 근대유산에서 먹는 곰탕 한 그릇, 기가 막히네!)에서 곰탕 한 그릇을 먹고 다시 중원로터리로 향했다. 로터리 못 미쳐 오래된 긴 가옥이 보인다. 예사롭지 않은 이 건물은 길게 생긴 그 모양대로 "장옥(長屋)'으로 불리는 일본식 건물의 전형이다. 

 

 

▲ 1920년대의 진해 시가지 사진 중 장옥거리 일대 사진( 진해군항마을역사관), 지금과 예전의 모습이 별반 차이가 없다.

 

이 ‘장옥’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일본식 가옥을 찾아 나섰다. 진해에 본격적으로 시가지가 형성된 시점은 1931년 진해면에서 진해읍으로 승격될 때였다. 일제강점기 동안 진해 읍내에는 한국인들이 살 수 없었다. 한국인들에게는 주거권이 주어지지 않아 경화동 등 외곽에서 살았다. 이곳의 2층 장옥들은 1층은 상점, 2층은 살림집으로 당시 도로변의 건물들은 2층 이상이 되어야 허가를 내주었던 것에 기인한다.

 

▲ 진해우체국(사적 제1291호, 1912년 준공)

 

중원로터리에서 눈에 띄는 건 깔끔한 하얀 외벽에 유난히 붉은 간판을 단 진해우체국이다. Y자 형의 도로변에 지은 단층의 목조건물인 우체국은 1912년에 지어졌다. 2000년까지 진해 우체국 청사로 이용되었을 정도로 건물은 튼실했다. 중원로터리 쪽으로 나 있는 입구는 좁아 보이나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점차 넓어지는 구조로 되어 있다.

 

▲ 팔각정

 

▲ 팔각정

 

로터리를 반쯤 돌면 특이한 건물 한 채가 보인다. 축제를 하루 앞두고 거리는 온통 먹자골목으로 변신했다. 천막 끝으로 우뚝 솟은 빨간 지붕의 이 특이한 집은 일명 ‘뾰족집’이라고 불리는 팔각정이다. 지금은 수양회관이라는 식당이 들어서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초소로 활용됐다가 이후에는 요정이 있었단다. 원래 길 건너에 같은 건물이 하나 더 있었다고 한다.

 

▲ 원해루

 

그 옆으로 오래된 중국집인 원해루가 있다. 원해루는 '영해루'로 불렸다. 한국전쟁 당시 UN군포로가 된 중공군 출신 장철현 씨가 1956년에 '영해루'라는 상호로 문을 연 중국집이다. 이후 1980년대 초반에 서울에서 중국집을 운영하던 화교 진금재 씨가 인수한 후 지금까지 중국집으로 운영되고 있다. 예전 이승만 대통령이 진해에 오면 이 집에서 만두를 즐겨 먹기도 했고 대만의 장제스 총통이 다녀갈 정도로 유명세를 떨었다. 임권택 감독의 '장군의 아들'도 이곳에서 촬영됐다. 간판이 두 개인데 위의 것은 1950년대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 1930년대 상생통의 모습, 왼쪽의 뾰족지붕이 팔각정이다.

 

 

▲▼ 제황산공원 진해탑 전망대에서 봉 중원로터리 일대(위)와 1920년대의 진해 시가지 사진(아래 사진, 진해군항마을역사관), 지금과 예전의 모습이 별반 차이가 없다.

 

 

원해루(옛 영해루)와 수양회관(옛 팔각정)이 있는 이곳은 예전에 '상생통(相生通)'으로 불렸다. 일제강점기 때 도시를 계획하면서 지금의 중앙시장에서 공설운동장 입구까지의 거리를 '상생통(相生通)'이라 했던 것이다.

 

▲ 문화의 거리

 

문화의 거리에서 진해의 명물 벚꽃빵을 판다기에 냉큼 달려갔더니 군항제 전이라 아직 판매를 하지 않는단다. 대신 깔끔한 외관을 한 진해군항마을역사관에 들어갔다. 해방되던 해인 1945년에 태어났다는 서원보 어르신이 잠시 안내를 자청했다. 이윽고 나타난 으뜸마을 추진위원회 위원장 권영제 위원장으로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군항마을역사관은 2011년 4월 행정안전부 희망마을 만들기에 진주, 거창과 함께 선정되어 테마거리를 조성하고 국비 2억, 도비 1억, 시비 1억을 지원받아 2012년 11월 8일에 개관식을 했다고 했다. 군항제에 맞춰 전시회 준비에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내부전시공간에 대해 친절한 설명을 해줬다. 이곳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 진해군항마을역사관

 

로터리를 돌아 골목으로 들어서니 흑백다방. 1952년 '칼멘'이라는 상호로 문을 연 고전음악다방을 1955년 서양화가 유택렬 화백과 아내였던 고미술품 수집가 이경선 씨가 인수하여 '흑백다방'으로 개명하여 2008년까지 다방으로 운영했다. 진해 일대 지식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던 흑백다방, 지금은 딸인 유경아 씨가 시민문화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1층에 소극장을 개설하여 주말에 음악 감상회와 연주회를 하고 2층은 주거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단다. 이곳도 다음에 차차 이야기하기로 하고....

 

▲ 흑백다방

 

아, 골목길 구경은 끝이 없다. 로터리 구석구석에서 진해의 오래된 향기가 마구마구 뿜어져 나온다. 부지런히 걷는 것, 그러면서도 느릿하게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로터리 주변을 샅샅이 훑으며 걸었다. 자원봉사자가 있는 공터 옆에는 옛 진해 경찰서 자리는 표지석만 남아 있었다.

 

▲ 10월 유신기념탑

 

유신기념탑을 물었다. 관광안내소 직원은 적지 않게 당황하며 모른다고 했다. 바로 이 근처인 것으로 안다고 했더니 그럴 리가 하는 표정으로 여행자를 멀뚱하니 쳐다봤다. 마침 파출소가 보여 문을 열었다. 역시 그런 것은 처음 들어본다는 표을 지으며 자신이 진해 토박이라는 경찰이라는 걸 넌지시 강조했다. 그러다 잠시 인터넷 검색을 하더니 “아, 이걸 말씀하셨군요. 바로 건물을 돌아가면 도서관 앞에 있습니다.” 하고 겸연쩍게 말을 했다. 건물을 돌자 로터리 쪽에 있는 10월 유신탑 앞면에는 한자로 '시월유신'이라고 적혀 있었다. 1972년에 일어난 시월유신을 기념하여 1973년 3월 옛 육군대학 앞 삼거리에 건립했다가 1976년 8월에 지금의 이곳 장난감 도서관으로 옮겨왔다. 진해라는 도시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얼굴을 이곳에서 보게 됐다.

 

▲ 남원로터리 김구 선생 친필 시비

 

중원로터리에서 곧장 내려가면 남원로터리, 그곳에는 백범 김구 선생의 친필 시비가 있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진해 해안경비대를 방문한 기념으로 백범 김구 선생이 친필시를 화강암에 새겨 만든 비석이다. <이충무공 전서>에 실려 있는 이순신 장군의 우국한시, '진중음'의 일부로 ‘서행어룡동 맹산초목지(誓海魚龍動 盟山草木知)’라는 글귀다. ‘바다에 맹세하니 물고기와 용이 움직이고 산에 맹세하니 초목이 아는구나’라는 뜻으로 나라에 대한 근심과 장부의 충혼을 느낄 수 있는데 김구 선생의 당시의 혼란했던 해방정국에 대한 근심을 엿볼 수 있다. 원래는 진해역 광장에 있다가 4.19 의거 이후 이충무공의 전승지인 옥포만이 바라다 보이는 이곳 남원로터리로 옮겨졌다.

 

▲ 해군의 도시답다.

 

 

남원로터리에서 북원로터리로 길을 잡았다. 거리엔 온통 벚나무다. 벚나무가 가로수다. 굳이 여좌천이나 경화역을 거들먹거리지 않더라도 진해 거리에서 벚꽃은 흔하디흔한 품목이다. 진해 인구가 18만 정도라고 하는데 벚나무가 35만 그루가 넘는다고 하니 이 정도면 1인당 벚나무 두 그루인 셈이다.

 

▲ 거리마다 흔하디흔한 벚나무

 

▲ 진해시민은 1인당 멎나무 두 그루를 갖고 있는 셈이다.

 

집집마다 벚나무가 정원수처럼 거리를 따라 심겨져 있고, 휴대폰가게에도, 고깃집에도 벚나무 한두 그루쯤은 풍경으로 삼고 있다.

 

 

 

 

북원로터리는 꽃마차가 연신 말발굽 소리를 내며 로터리를 뱅뱅 돌고 있다. 로터리로 들어가는 횡단보도도 있는데 그 가운데에 이순신 장군 동상이 늠름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순신 장군 동상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4월 28일에 세워진 것으로 우리나라에서 처음이다. 동상 건립에 연 인원 780명이 참여했고 동상 앞면에는 '충무공 이순신상 이승만 근서'라고 새겨져 있고 노산 이은상이 찬문을 썼다. 남해를 굽어보고 있는 이곳에서 군항제 기간 동안 추모제가 열린다.

 

▲ 우리나라 최초로 세워진 북원로터리 이충무공 동상

 

진해역에서 출발하여 중원로터리의 10월 유신기념탑, 진해 우체국, 장옥거리, 선학곰탕(옛 요항부 병워장 관사), 원해루(옛 영해루)와 수양회관(옛 팔각정), 진해군항마을역사관, 시민공간 흑백(옛 흑백다방), 제황산공원, 남원로터리 김구 선생의 친필 이충무공 시비, 북원로터리의 이충무공 동상을 거쳐 다시 진해역으로 돌아왔다. 느릿느릿 걸어도 두세 시간 정도 공을 들이면 그나마 벚꽃에 가려 알지 못했던 진해를 조금씩 알아가는 뿌듯함이 절로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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