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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역, 타임슬립

꽃이 피고 지는 자리, 경전선 옥곡역의 봄

 

 

 

 

꽃이 피고 지는 자리, 경전선 옥곡역의 봄

 

 

10시 36분, 경전선 순천행 기차를 탔다. 바람이 드셌다. 4월인데도 아직 봄은 멀게만 느껴졌다. 날씨 탓인지 기차엔 승객들도 뜸했다.

 

양보역 풍경

 

하동 양보역에서 기차가 잠시 멈췄다. 이미 지기 시작한 벚꽃 너머로 꽃샘추위에 화들짝 놀란 철로 변 집들은 대문이 꼭 닫힌 채였다. 하늘은 높고 푸르렀으며 바람은 여전히 나무를 격렬하게 흔들어댔다.

 

하동역 풍경

 

하동역은 벚꽃이 필 때면 가장 아름답다. 이곳도 벚꽃이 지기는 마찬가지, 잠시 승강장에 내려 벚꽃이 지는 모습을 담았다. 벚꽃 지다. 무슨 성스런 의식이라도 치르듯 기차는 소리 없이 승강장을 떠났다.

 

 

섬진강을 건넌 기차는 좁은 협곡을 가로지르더니 이내 어두운 터널로 들어간다. 강을 건너도 풍경은 별반 차이가 없다. 진상에 이르러서야 제법 너른 들판이 나타나고 이곳이 전라도 땅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진상역 다음은 옥곡역. 옥곡(玉谷), 이름 그대로 보배로운 땅이다. 예부터 땅이 비옥하여 사람이 살기 좋은 땅으로 전해진다. 지금의 옥곡면 신금리에 '옥곡소'가 있어서 마을 이름으로 사용됐다고 전해진다. '소(所)'란 각종 조세나 노역이 면제되는 대신 특산품의 생산과 공납에 종사했던 특수행정구역으로 당시 이곳이 토지가 비옥하고 다양한 물산이 생산되었음을 알 수 있다. 1760년경에 편찬된 <여지도서>에 옥곡면이라는 행정구역상 지명이 처음으로 기록되어 있고 1896년 돌산군이 신설되면서 태인동과 금호동이 옥곡면에서 분리됐다.

 

 

1968년 2월 7일 경전선 광양 진주 구간이 개통되면서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한 옥곡역은 진상역과 골약역 사이에 있다. 역사는 이듬해인 1968년 3월 2일에 준공됐다. 하루 열 번 무궁화호가 이 역을 지나간다.

 

 

기차가 떠난 승강장에 혼자 남았다. 역무원도 혼자였다.

 

 

철로변의 복사꽃이 붉다. 기차를 배웅하는 유일한 승객이다.

 

 

기차가 떠난 자리에 꽃은 피고 텅 빈 승강장엔 빈 바람만 분다.

 

 

승강장을 하릴없이 왔다 갔다 하다 역사로 들어섰다.

 

 

50여 년이 다 되어가는 역사는 말쑥했다.

 

 

손님이 없어서인지 안은 휑했다. 역무원도 역무실 깊숙이 모습을 감추었다.

 

 

벽면에 붙은 버스시간표를 유심히 살피다 밖으로 나왔다.

 

 

역 광장에 덩그러니 놓인 빨간 우체통 하나.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 반가우면서도 쓸쓸하다.

 

 

포구로 가는 버스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도로를 건너 동네슈퍼에서 버스 시간을 물었다. 휴일이라 버스가 대중없다고 했다.

 

 

 

모자를 뒤집어쓰고 추위에 떨길 삼십여 분, 결국 걸음을 옮겼다. 소재지로 가서 택시라도 잡아탈 요량이었다. 언덕 위 초등학교 정문에 벚꽃이 후드득 지기 시작했다.

 

 

'옥곡역 버스정류소' 간판은 이미 낡을 대로 낡아 버스 노선을 적은 글씨조차 보이지 않는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대자 묵직한 옥곡역 간판도 시소를 탄다.

 

 

칼바람을 맞으며 도착한 옥곡면 소재지. 잠시 머뭇거리는데 거짓말처럼 버스가 눈앞에 나타났다. 17번 버스는 포구로 간다고 했다. 외망행 버스를 타고 30여 분을 달려 포구에 도착했을 땐, 벚꽃은 이미 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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