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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선, 남도 800리

억새풀마저 아름다운 이곳, 지나치면 후회해요. 경전선 800리

 

 

 

 

 

 

 

 

억새풀마저 아름다운 이곳, 지나치면 후회해요

【경전선 남도 800리, 삶의 풍경】 마지막 겨울... 철새도 떠나갈 주남저수지 풍경

 

 

 

 

 

창원역에서 주남저수지 가는 1번 버스
ⓒ 김종길

 


창원역에서 1번 마을버스를 탔다. 차창 너머로 언뜻언뜻 고분이라는 글씨가 보이는가 싶더니 금세 사라진다. 아무리 눈을 흘겨봐도 봉긋한 고분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버스는 어느새 주남저수지 정류장에 섰다. 페이스북에 주남저수지 인근 괜찮은 식당을 물었더니 페이스북 친구 중 한 분이 감자옹심이 '강원도래요'라는 식당과 오리백숙을 잘 한다는 풍경이 멋진 '호수에 그림 하나' 식당을 추천해줬다.

"그 집 억수로 맛있어예. 여기서도 알아주는 집이라예."

입구에서 옥수수며 핫도그 따위를 파는 노점의 아주머니께 감자옹심이 식당을 물었더니 대뜸 돌아온 답이었다. 이곳 사람들이 추천할 정도라면 믿을 수 있겠다는 아내의 말에 식당으로 걸어갔다. 한참을 가도 식당은 보이지 않고 아스팔트길은 오가는 차량으로 소음이 심해졌다. 가끔 도로 건너로 보이는 동판저수지의 느긋한 풍경만이 위안이 됐다. 그렇게 1km 정도 걸으니 삼거리에 '강원도래요' 식당이 보였다. 주남저수지에서 강원도 지명을 가진 식당과 옹심이라는 음식을 찾는 경상도 사람이 묘하게 어울린다 생각됐다. 식당은 손님으로 넘쳤다. 부산스러운 움직임 끝에 겨우 자리를 잡았다. 이윽고 나온 만두와 옹심이는 입에 척 감겼다.

주남저수지 감자옹심이가 맛난 식당
ⓒ 김종길

 


다호리 고분군, 덩그러니 휑한 벌판에 잡풀만 가득하고...

식당을 나오자 아까 버스에서 봤던 다호리 고분군 안내문이 다시 보였다. 람사르를 기념한 비석 무리가 도로가로 열 지어 있고 그 건너로 이곳이 고분군임을 알리는 전망대 같은 구조물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고분은 보이지 않고 잡풀 가득한 늪지와 밭뿐이었다. 이곳이 대체 고분군이 맞기는 맞는 걸까. 하는 수 없이 문화재구역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에 세운 낡은 안내문을 보고서야 이곳이 그 옛날 선사시대부터 가야시대에 이르는 수많은 고분이 밀집해 있던 다호리 고분군(사적 제327호)임을 알게 됐다. 지난 1988년 발굴조사에서 목관을 비롯해 철제 농기구·칠기·청동기·철기로 된 생활용품과 무기류 등이 원형대로 출토됐으나 그후 도로와 과수원으로 변해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다호리 고분군에는 문화재 안내문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 김종길

 


도로가 호수를 따라 걸었다. 주남저수지에 비해 유명세는 덜하지만 훨씬 운치가 있는 동판저수지다. 승용차로 가면 동판저수지는 그냥 지나치기 일쑤다. 동판저수지는 홍수 때 주남저수지의 수위를 조절해주는 배수지 역할을 하는 곳으로 주남저수지보다 규모는 작다. 광활하게 펼쳐진 주남저수지와는 달리 굴곡진 호수도 매력적이거니와 물 가운데에 둥둥 떠 있는 버드나무 군락은 신비로움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봄날이면 연둣빛 옷을 입을 버드나무군락은 상상만 해도 마음이 설렌다. 

동판저수지 풍경
ⓒ 김종길

 


 

동판저수지 풍경
ⓒ 김종길

 


 

동판저수지는 주남저수지에 비해 덜 알려져 있지만 훨씬 운치가 있다.
ⓒ 김종길

 


대개의 사람들은 승용차로 주남저수지를 가서 말 그대로 주남저수지만 보고 돌아온다. 사실 주남저수지는 세 개의 저수지로 돼 있다. 홍수 때 주남저수지의 수위를 조절해주는 동판저수지, 안쪽에 숨어 제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산남저수지와 우리가 흔히 찾는 주남저수지다.

마지막 겨울, 주남저수지 낭만 풍경

예년의 절반밖에 찾지 않았다는 주남저수지의 철새들, 그 절반마저도 이제 마지막 겨울을 보내고 떠날 채비다. 주남저수지의 간판 풍경이었던 수만 마리 가창오리 떼의 집단 비행을 벌써 몇 년째 못 봤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쯤에서 궁금해지는 것 하나, 주남저수지에는 언제부터 철새가 날아들었을까.



 

주남저수지 '호수에 그림 하나' 식당 앞의 그림 같은 풍경
ⓒ 김종길

 


 

주남저수지 둑길의 물억새
ⓒ 김종길

 


원래 동양 최대의 철새 도래지라는 명성은 낙동강 하구의 을숙도였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 잘 발달된 갯벌과 삼각주가 있어 먹이가 풍부할 뿐만 아니라 시베리아와 호주를 잇는 2만5000km의 철새 이동로의 중간 기착지로서 손색이 없었기 때문이란다.

그러다 1983년 낙동강에 2.4km의 하구언이 가로지르면서 철새들은 보금자리를 잃게 되고 새로운 둥지를 틀었는데 그것이 지금의 주남저수지다. 을숙도의 철새들이 대부분 이곳으로 날아들면서 원래 평범한 농업용수 공급지였던 주남저수지가 국내 제일의 철새 도래지로 변하게 된 것이다.

생태학습관 옥상에 설치된 탐조대
ⓒ 김종길

 


 

마지막 겨울, 이제 철새들도 떠날 때다.
ⓒ 김종길

 


 

주남저수지를 찾은 철새는 예년에 비해 절반이나 줄었다고 한다.
ⓒ 김종길

 


매년 10월 중순부터 찾아오는 철새들은 큰고니·고니 등의 고니류, 큰기러기·쇠기러기 등의 기러기류, 소오리·희비오리 등의 오리류, 왜가리, 두루미 등 수백 종에 이르고 있다. 게다가 가시연·자라풀·어리연꽃·통발 등의 수생식물과 무자치·삵·나비잠자리·각시붕어 등 다양한 생물들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사실 주남저수지에 오면 드넓은 호수에 놀라게 된다. 우포늪과는 달리 1920년대에 이곳에 농경지가 들어서면서 농업용수 공급과 홍수 조절을 위해 기존의 습지에 9km의 제방을 쌓아 만들어진 게 주남저수지다.

주남저수지에는 철새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앞서 찾았던 다호리 고분군을 비롯해 수령이 700여 년이 된 천연기념물 제164호 신방리 엄나무와 동읍의 판신마을과 대산면 주남마을을 흐르는 주천강 위의 주남돌다리(문화재자료 제225호)가 운치 있다.

주남저수지의 숨은 보물, 주남돌다리

가없이 넓은 주남저수지 끝으로 배수문이 보였다. 주남배수문은 1922년 주남저수지 설치 당시 관개와 여수토(남은 물을 흘러 보내는 통로) 역할을 겸하도록 설계됐는데 현재의 배수문은 1976년에 완공됐다.

배수문 한쪽에는 비석이 하나 있는데, 1976년에 세웠다. 1969년 9월 14일 대홍수로 물바다가 됐을 때 박정희가 이곳을 시찰해 1970년 10월 30일부터 1976년 11월 30일까지 제방 및 배수갑문 공사를 했다는 표지석이다.

1969년 박정희가 시찰을 하여 제방 및 배수갑문 공사를 했다는 표지석
ⓒ 김종길

 


이쯤에서 '주남돌다리'를 찾아야 했다. 근데 아무래도 주남돌다리 표지판을 찾을 수 없었다. 제방을 걷는 이들은 대개 관광객이라 돌다리가 있었나 하는 표정으로 모른다고 했다. 마침 마을 주민이 지나가면서 "저 짝 아래"라고 말했다. 거기에 가도 볼 것은 하나도 없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말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안내문은 제방 아래서 멀찍이 떨어진 길가에 오도카니 서 있었다.

저수지로 떨어지는 일몰이 일품이라는 낙조대 가는 길에는 이미 해가 드러눕기 시작했다. 둑길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마지막 겨울, 바람은 여전히 매서웠다. 장갑을 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고개를 숙인 채 바람을 요령껏 피해 걷고 있는데 저 아래로 돌다리가 보인다. 높은 제방 때문인지 언뜻 보기엔 너무 작은 규모다. 그러나 실망을 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돌다리는 더욱 큼직하게 다가왔다. 다만 몇 길이나 제방 아래로 푹 꺼진 강에 놓인 지금에는 돌다리가 별로 소용이 없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기는 했다.

돌다리로 막 다가서는데 마을 공터에서 사내 서넛이 차에서 우르르 내렸다. 그중 한 사내가 마침 사람이 없으니 우리가 모델이 돼 줄 수도 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잘된 일이다. 아무도 없는 다리의 규모를 사진으로 가늠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인데, 이들이 있어 다리는 원래의 구실을 하며 사진으로 그 크기까지 짐작할 수 있게 됐다.

주남돌다리
ⓒ 김종길

 


주남돌다리는 창원시 대산면 가술리 주남마을과 동읍 월잠리 판신마을을 잇는 다리다. 두 마을 사이를 흐르는 주천강에 놓인 조선 후기의 돌다리로 건립 시기와 경위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다음과 같은 얘기가 전해진다. 옛날 주천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마을 사람들은 비가 올 때마다 큰 불편을 겪어 동읍 덕산리 정병산에서 돌을 운반하여 다리를 세우기로 한다. 마을 사람들은 정병산 봉우리에 올라가서 마땅한 두 개의 돌을 발견해 한 개의 돌만 운반하고자 했으나 돌이 움직이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힘을 모아도 마찬가지더니 두 개의 돌을 한꺼번에 움직이자 쉽게 돌이 움직여 마침내 돌을 운반해 다리를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다른 기록에 따르면 이 두 개의 돌은 일종의 신앙석으로 암수바위인 자웅석(雌雄石)이며 그때가 800여 년 전의 일이라고 한다. 실제 다리에 걸친 면석(상판)을 보면 4m에 달할 정도로 그 크기가 엄청나다. 그 옛날 이 거대한 자연석을 인력으로 끌어다 다리를 놓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운 일이다. 다리 중간의 면석에는 문양인지 글자인지 알 수 없는 어떤 표식이 있는데 일부가 깨져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다리는 일정한 간격을 둬 양쪽에 돌을 쌓아 교각을 만든 뒤, 그 위로 여러 장의 평평한 돌을 걸쳐놨다. 예전에는 주천강 사이에 있는 다리라 하여 '새(間)다리'라 불렀다고도 한다. 주남돌다리는 예부터 주천강을 건너는 사람들이 교통로로 많이 이용했으나 일제강점기에 다리에서 200m 떨어진 곳에 주남교가 세워지면서 다리의 기능을 상실했다고 한다. 1967년에 집중호우로 강 중간의 면석 1기와 양쪽의 교각석만 남기고 다리가 붕괴됐으나 1996년 창원시에서 역사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자 복원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96년 3월 11일 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225호로 지정됐다.

주남돌다리는 작은 규모지만 상판 돌의 크기는 4m에 달할 정도로 엄청난 크기다.
ⓒ 김종길

 


주남돌다리는 람사르문화관에서 둑길을 따라 2km 남짓 걸어야 한다. 얼핏 작은 규모에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예사 다리가 아닌 주남의 숨은 보물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다리의 바윗돌은 제법 옹골차다.

주남저수지 옆 시간여행... '그때 그 시절에'

다시 둑길을 따라 한참이나 걸어 버스정류장으로 돌아왔다.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고 버스정류장 옆으로 작은 다리가 보였다. 주남저수지 수문에서 동판저수지로 이어지는 물길에 놓인 다리다. 다리를 건너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잠시 갔더니 창원향토자료전시관이 나왔다. 승용차로 가면 곧장 람사르문화관이나 생태학습관으로 가게 마련이어서 이곳을 쉽게 놓치곤 한다.

저수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언덕에 자리한 창원향토자료전시관은 2층 건물이다. 입구부터 옛 추억 물씬 풍기는 자료관에 들어서자마자 색소폰 소리가 들려온다.

주남저수지 창원향토자료전시관 '그때 그 시절에'
ⓒ 김종길

 


"풀잎새 따다가 엮었어요
예쁜 꽃송이도 넣었구요
그대 노을빛에 머리 곱게 물들면
예쁜 꽃모자 씌어주고파"

나른한 햇살을 뚫고 '산골 소년의 사랑이야기'가 전시관 안을 울린다. 이곳을 찾은 몇몇 사람들도 색소폰 연주에 맞춰 나지막이 노래를 따라 불렀다. 어느새 추억의 공간은 작은 음악회가 됐다.

턱을 괸 채 한참이나 음악에 빠져 있다 문득 아래를 보았다. 손가락을 끼워 번호를 돌렸던 검은 다이얼 전화기, 큼지막해서 '무전기'로도 '벽돌'로도 불렸던 초창기 휴대전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삐삐... 벌써 기억도 가물가물한 옛 추억들이 진열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사춘기 시절 한번쯤 탐독했을 <선데이 서울>도 보이고 LP판의 추억도 새록새록하다. 벽면을 가득 채운 국정 교과서는 언제 적인지 벌써 낯설고 교복과 가방은 여행자의 추억보다 더 멀리 가 있는 듯하다. '보존도 발전만큼 중요합니다'는 1970~80년대식의 촌스러운 문구가 퍽이나 잘 어울린다.

주남저수지 창원향토자료전시관 '그때 그 시절에'
ⓒ 김종길

 


십 원짜리, 백 원짜리 지폐도 있었다는 사실에 잠시 놀라고, 셔터 소리가 매력적인 아날로그 필름 카메라를 이리저리 만져보고, 손가락에 제법 힘이 들어가야 했던 아날로그 카세트와 전축들을 지그시 눌러본다. 모두 아련한 추억이다. 더 앞선 시대의 인두나 호롱불 따위도 더러 보이고 할아버지가 아궁이에 불을 지필 때 사용했던 풍구도 눈에 띈다.

요즘처럼 사진으로 찍지 않고 다소 과장되게 그린 극장 포스터는 추억 저편에 숨겨둔 이야기보따리를 우리 앞에 하나하나 풀어 놓는다. 전시관을 쭉 돌고 나면 누구든 '그때 그 시절에는...'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듯하다. 300㎡의 아담한 공간에 마련된 '그때 그 시절에'로 시작해 해방 이후부터 보릿고개를 거쳐 산업화 시대까지의 아련한 향수를 느끼며 시간여행을 떠나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창원향토자료전시관 '그때 그 시절에'는 향토사학자 양혜광씨가 제안해 2009년 건립됐다.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연중무휴 무료 개방이다. 주남저수지를 찾았다가 잠시 짬을 내 들러보기에 알맞은 장소다. 창원시 동읍 월잠리 주남저수지 입구에 있다.

람사르문화관 내부 전경
ⓒ 김종길

 


주남저수지에는 여러 가지 탐방코스가 있다. 여행자는 다호리고분군에서 창원향토자료전시관·람사르 문화관·생태학습관을 거쳐 탐방로를 따라 낙조대에 들렀다가 주남돌다리에서 발길을 돌려 버스정류장으로 돌아왔다. 대략 6km 남짓 걸은 셈이다. 주남저수지에 가면 람사르 문화관과 생태학습관은 꼭 들러볼 일이다.

주남저수지 풍경
ⓒ 김종길

 


 

주남저수지 풍경

ⓒ 김종길

 

 

 

 

※ 이 글은 '코레일'과 '오마이뉴스'에 <경전선 남도 800리, 삶의 풍경>으로 연재 중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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